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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e Gardner Aug 20. 2024

너희들에게 물려줄 건 없다

시부모님이 곧 아들딸들, 가족들과 한자리에서 유언장을 갱신하실 예정이다.



우리 시부모님은 대부호는 아니지만, 열심히 일하고 꾸준히 쌓아 올린 것들로 노후를 그만하면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는 정도의 넉넉한 생활을 하시는 전형적인 미국 노년층이다.



사실 더 넉넉하셨을 수도 있는 사정이었지만 시아빠가 뇌졸중과 2번의 암치료를 거치셨고, 암은 다행히 12년째 재발하지 않고 있지만 폭탄처럼 불어난 메디컬 비용을 부담하느라 지금의 생활을 유지하는 정도에 그쳤다.



유언장을 갱신한다는 이야기도 내가 가장 먼저 들었고, 대략적인 재정 사정 역시 아들딸들보다 내가 더 세세하게 안다.



그리고 시엄마는 그런 유산 분배에 관한 얘기들을 할 때마다 나에게


'물려줄 게 많이 없어서 미안하다'라고 하신다.



이 집 삼 남매 중 결혼해서 가정을 유지 중인 사람은 남편뿐이다. 시언니는 한 번도 결혼하지 않은 미혼, 남자 시동생은 20대에 결혼해 낳은 14살짜리 딸이 하나 있는데, 결혼 3년 만에 이혼한 후 지금까지 싱글이다.



커리어적인 면도 남편이 제일 안정적이고, 부자까진 아니지만 우린 안정적인 인컴에 집도 있고, 아이 둘도 이만하면 잘 크니 우리 눈에도 부모님 눈에도 우리에게 크게 부족한 것은 없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모든 것들은 남편과 내 손으로 쌓은 것 들이다. 어떤 지원도 없었다. 바라지 않았다는 말이 더 맞는 것 같다. 우리 부부는 직접 얻어낸 것들에 더 큰 가치를 두고 횡재수는 경계하는 가치관을 가졌다.



그런 우리에게 시엄마가 물려줄만한 것들이 이런 것들 뿐이다 라며 미안하다 했을 때,


나는 시엄마에게 그거 아끼지 말고 다 쓰시라고, 열심히 쓰시라고! 미안할 게 하나도 없는데?


그것들을 쌓은 사람도, 노후를 준비한 사람도 부모님인데, 왜 그걸 못 줘서 미안하다 하세요?


시부모님은 점점 큰 집을 관리하기 힘들어하신다. 작은 타운하우스 정도가 딱인데 이 지역에선 찾기 힘들고,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면 손녀들과 멀리 떨어지니 싫고, 다운사이징을 할래도 매물은 없고. 건축은 부담. 어째야 할지 모르겠다 하신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 집 건축을 준비한다 했을 때 시엄마는 '우리 방도 있어?'라고 물었고, 나는 별생각 없이 농담으로 그렇게 큰 맨션을 지을 돈은 없다고 했는데, 시엄마는 진지했던 모양이다.



남편이 부모님과 청소년기 때 사이가 좋지 않았어서 한 집에 사는 건 남편에겐 스트레스라는 걸 결혼 10년 만에 알아버린 나는, 흔쾌히 같이 살자고 제안하거나 남편을 압박할 수 없다.



그래서 생각한 방안은 에이커를 넉넉하게 사서 우리 집과는 분리된 거주형 스튜디오를 짓는 것! 남편도 좋은 생각이라고 했다.



그래서 시부모님은 우리와 같이 거주하게 되실 예정이고, 지금 거주 중인 집을 팔고 본인들이 거주할 스튜디오 건축에 보태는 쪽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엄마는 손녀들 앞으로 해놓은 소정의 신탁계좌를 제외하고는

우리 부부에게 다 주게 될 거라 했지만,


우리는 '아니요! 우리 말고 레지나한테 주는 게...'라고 했다.



바텐더로 20년 일하다 건강에 큰 문제가 생겨 그만두고 다른 직업군으로 이직,

커리어를 쌓기 시작한 시언니 레지나는 우리가 미국 생활을 시작했던 시부모님 댁 2층에서 지내는 중이다.



우린 둘이고, 물려받을 재산 같은 게 없어도 괜찮은데

혼자인 레지나는 아무래도 두 배로 힘들 테니,


(시동생은 이미 아빠가 쓰던 공구나 추억이 있는 물건들은 좋지만 돈은 안 받겠다 의사 표명을 꾸준히 하는 중)


줄 생각으로 아끼지 마시고, 최대한 다 쓰시고

혹 남는다면 레지나에게 주기.


다 모여서 이렇게 말하면 레지나는 학을 떼고 손사래를 칠 사람이지만 무튼,

우리 마음은 그렇다.


내가 쌓은 게 아니면 내가 주장할 권리는 없고

받을 기회가 생긴다면 그게 더 필요한,

사랑하는 사람에게 감사히 나누고 싶은 마음.


가족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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