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는 부모님의 기대를 채우고 싶어 매 순간 애를 썼다. 남들보다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사로잡혀, 형제들과 친구들 사이에서 늘 비교의 대상이 되곤 했다. 좋은 성적을 받아 부모님이 기뻐하시면 내 존재가치가 증명되는 듯했고, 실패는 나를 무가치한 존재로 만들었다. 이렇게 스스로의 부족함을 마주할 때마다 내 마음속엔 크고 깊은 허전함이 자리 잡았다. 그 빈자리는 마치 채워지지 않는 구멍처럼 느껴졌고, 그 갈증은 언제나 내 안에 머물러 있었다.
그 무렵 책은 내게 작은 위안을 주기 시작했다. 어린 마음에 책은 단순한 이야기를 넘어선 ‘마음의 쉼터’ 같은 존재였다.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다양한 감정과 삶을 엿볼 수 있었고, 그 속에서 자신의 결핍을 조금씩 받아들이게 되었다. 책을 읽으며 다른 세계를 탐험하는 경험은 내가 채우지 못한 부분을 은유적으로 채워주었고, 마치 바다를 건너는 항해처럼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었다.
자아 형성기, 끝없는 비교와 경쟁 속에서 흔들리다
청소년 시절이 되자 학교는 내게 끝없는 경쟁의 장으로 다가왔다. 성적은 곧 사람의 가치를 매기는 척도가 되었고, 성적이 떨어질 때마다 나의 자존감은 함께 추락했다. 한 번의 실수라도 하면 그것이 내 모자람을 증명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주변 사람들과의 비교는 나를 더욱 위축되게 만들었다. 이 시기의 공허함은 나를 깊은 외로움 속으로 이끌었고, 스스로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느낌에 혼자라 느낄 때가 많았다.
그 시기에 만난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은 나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관계 속에서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알게 되었다. 그는 타인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으며, 그 가르침은 내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 자신을 수용할 수 있도록 도왔다. 마치 어두운 길에서 만난 등불처럼, 그의 책은 내게 안정감을 주었다. 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미완성의 부분이 성장의 디딤돌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목표 추구기, 완벽을 추구하며 찾아온 고통과 자각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며, 나는 ‘성공’이라는 목표를 향해 쉬지 않고 달렸다. 인정받고 싶다는 열망은 나를 더 빠르게 나아가게 했지만, 실수할 때마다 스스로를 질책하며 불안에 시달렸다. 완벽에 대한 강박감은 끊임없이 내 발목을 잡았고, 오히려 내 능력을 제한하는 족쇄가 되었다. 그러나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으며 나는 조금씩 삶의 의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기 시작했다. 그의 글은 극한 상황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그의 의지를 보여주었고, 이는 나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프랭클의 이야기는 한겨울 나리쬐는 햇살처럼 내게 희망을 주었다. 그는 나로 하여금 부족한 부분 속에서도 내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는 용기를 심어주었다. 그가 보여준 인내와 용기는, 내 삶의 빈자리가 성장의 공간이 될 수 있음을 알게 해 주었고, 이제 더 이상 완벽하지 않음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냈다. 모자람이 있는 부분을 성장의 터전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내적 평화기, 균형과 평온을 찾는 시절
오십이 넘어서며, 삶의 속도와 방향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더 높은 성취를 향해 쫓기듯 달려가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조용히 멈춰 서서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고 반추하는 여유가 생겼다. 과거의 나는 부족한 부분에 매달려 나 자신을 비난하고 채우려고 애썼지만, 지금은 그 모든 허점도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나의 모자람이 오히려 나를 풍요롭게 해주는 원천이 되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내가 지금껏 가까이해 온 책들은 나의 인생을 이끄는 지혜의 등불이 되었다. 조지 오웰의 1984는 내가 남들의 시선에 구속되지 않고, 내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을 깨닫게 해 주었다. 나는 이제 사회적 기대에 부합하는 삶을 살기보다,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려 한다. 이 책들은 마치 나침반처럼 나의 방향을 이끌어 주었고, 내 삶을 한층 더 깊고 의미 있게 만들어주었다.
주변 사람들의 부족함 역시 이제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오십이 넘어 바라본 세상은 남과 다른 점이 있기에 더욱 다채롭고 이해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나와 타인의 모자람이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만드는 힘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내 부족함을 감추려 하지 않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수용하며 주변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미흡함을 인정하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성숙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모자람이 나를 완성시킨다
나이가 들면서, 나는 점차 삶의 본질적인 가치를 발견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채워야 할 빈 공간들을 완벽하게 맞추려 애썼지만, 이제는 그 모자람 자체가 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십이 넘어서야 비로소 ‘완벽’이라는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그 과정 속에서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더 이상 남과 비교하지 않고도 내 자신을 이해하며 격려하는 힘을 얻었다.
이제 나는 남들과의 비교에서 벗어나, 나 자신을 이해하고 온전히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깨달음이, 내게 어떤 큰 해방감을 안겨주었다. 더 이상 나의 미흡함을 가리거나 감추려 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나를 완성해 가는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삶이란 언제나 미완성에서 시작되는 여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빈 공간은 그것을 채우려는 여정에서 의미를 찾고, 부족함은 그 자체로 하나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나는 이제 그 모자람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그것이 내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원동력임을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마치 성인의 지혜로운 말처럼, “참된 온전함은 그 안의 갈증과 공허함이 우리를 더 나은 길로 이끌어주는 힘이 된다는 것을 깨달을 때 시작된다.”
삶은 언제나 미완성으로부터 시작되고, 그 채워야 할 자리를 맞이하며 의미를 찾는다. 나는 이제 그 모자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그 속에서 살아가는 나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갈 것이다.
이제까지 내 삶의 여정은, 결코 완벽에 도달하려는 노력이 아닌 부족함을 통해 완전해지고자 하는 과정이었음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