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21일부터 27일까지, 대한민국은 연일 계속되는 산불의 공포 속에 휩싸였다. 3월 21일 오후 3시 26분,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에서 발생한 화재를 시작으로, 불은 전국 곳곳으로 번졌다. 산불은 자연을 삼킨 뒤, 삶의 결마다 침잠해 사람들의 기억과 일상에 고요한 상흔을 남겼다.
이후 3월 22일 하루 동안에도 산불은 이어졌다. 오전 11시 24분,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에서 산불이 발생했고, 12시 12분에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운암읍에서 또다시 불길이 타올랐다. 오후 2시 39분,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에서도 불이 번지기 시작하며 이 지역은 산불 대응 3단계가 발령되는 위기에 직면했다.
3월 26일 밤 9시 22분,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에서 새로운 산불이 보고되었고, 다음 날인 3월 27일 저녁 7시 14분,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에서도 산불이 발생하며 진화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이 산불들은 현재까지도 진화 중이며, 일부 지역에는 산불 대응 3단계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산림청 실시간 정보에 따르면, 3월 25일 오후 4시 기준 전국적으로 6건의 산불이 ‘진화 중’ 상태이며, 진화 완료된 산불은 3건, 의심 종료된 건은 2건으로 집계되었다. 3월 한 달간 산불 발생 건수는 258건에 달해, 기후 변화와 사회적 경각심 부족이 초래한 재난의 심각성을 방증한다. 특히 대응단계가 3단계로 격상된 울주군, 의성군, 산청군은 주민 대피와 구조, 재산 보호를 위한 총력 대응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산불에서 목숨을 잃은 27명의 이름 없는 영혼들, 그들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은 각기 다른 사연과 가족을 품고 있었으며, 그들의 죽음은 지역 공동체 전체를 깊은 비탄에 빠뜨렸다. 27,000명이 넘는 이재민들은 삶의 기반을 잃고, 임시 대피소에서 불안정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특히 경북 의성, 안동, 청송 일대는 전통문화와 유산이 밀집된 지역으로, 이번 화재로 1,300년 이상 된 사찰과 고건축물까지 불에 타는 피해가 발생했다. 문화재와 자연유산의 손실은 지역 정체성과 역사성의 파괴로 이어지며, 재건에는 물리적 비용 그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산림은 수십 년에 걸쳐 자라난 귀중한 생명의 공간이다. 하지만 불은 몇 시간 만에 그 모든 것을 파괴했다. 인간의 손으로 가꿔온 녹음은, 고온과 강풍, 건조한 날씨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자연을 향한 태도가 근본적으로 재고되어야 하며, 산림 관리 체계 역시 기후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전면 개편되어야 한다.
산불의 직접적 원인은 다양하다. 산청군에서는 잔디깎이 기계에서 발생한 불꽃이 원인이 되었고, 의성군에서는 묘지 정리 중 부주의하게 다룬 라이터 불씨가 화근이 되었다. 그러나 일부 지역에서는 고의적인 방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수사도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 만일 방화가 확인된다면, 이는 단순한 범죄가 아닌 사회적 테러로 간주되어야 하며, 법적 책임은 철저히 물어야 한다.
근본적으로, 이러한 재난의 배경에는 기후 변화라는 세계적인 위기가 자리하고 있다. 해마다 길어지는 건조기와 불규칙한 기상 변화는 산불 발생의 위험을 상시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 위기 앞에서 정부와 정치권의 대응은 충분하지 않았다.
2024년 말 국회는 정부가 제출한 예비비 4조 8천억 원 중 절반인 2조 4천억 원을 삭감했다. 이 중 재해·재난 대응을 위한 목적예비비는 2조 6천억 원에서 1조 원이 줄어들었고, 삭감된 예산은 고교 무상교육과 5세 무상교육 등 다른 항목에 배정되었다. 이에 대해 일부 정부 관계자들은 “재해 대책에 사용해야 할 목적예비비 대부분이 교육에 전용되는 문제가 발생했다”고 밝히기도 했다¹. 이와 같은 예산 구조의 변화는 현재와 같은 산불 상황에서 초기 진화에 필요한 장비와 인력 확보에 심각한 제약으로 작용했고, 재난 대응 시스템 전반의 취약함을 드러내는 결과로 이어졌다.
¹ 인세영, 『[산불]재난에 투입할 1조 예산 삭감한 민주당 새삼 도마 위』, 경기일보, 2025.03.26.
정부 관계자들도 “당시 목적예비비 대부분이 교육 관련 항목으로 흘러가, 정작 재난 대응에 필요한 예산이 줄어들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이로 인해 헬기 출동이 지연되고, 산림청과 소방청 등 현장 기관은 장비와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일부 고립 마을은 수 시간 이상 외부 지원 없이 방치되는 일이 반복되었다. 이 같은 구조적 한계는 국민들에게 깊은 불안과 분노를 안겼다.
재난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비극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와 체계적인 대응 시스템이 필요하다. 재난 대응 예산은 더 이상 정쟁의 도구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소방 인력 충원, 장비 현대화, 실시간 통신 체계 구축 등 실질적 대응력을 높이기 위한 투자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교육과 예방은 지역 주민이 직접 참여하고 익힐 수 있는 실질적인 프로그램으로 설계되어야 하며,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체계로 정착되어야 한다. 특히 농촌과 산림 인접 지역에서는 마을 단위의 감시 체계와 자율적인 초동 대응 훈련이 필수적이다. 주민이 스스로 재난 대응 주체가 되어야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산림청은 3월 27일, 경북 북부 지역에 내린 빗방울이 산불 진화에는 제한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일부 지역에서는 1mm 미만의 강수량만 기록되었으며, 이는 불길을 잡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나 이 약한 비조차도 진화 인력에게는 일시적 안도감을 주었고, 산불 확산을 늦추는 데는 작게나마 기여했다.
이러한 와중에도 국민들은 서로를 위로하고 있다. 대피소에서 나누는 따뜻한 밥 한 그릇, 함께 걱정하며 건네는 말 한마디가 다시 살아갈 힘이 된다. 절망 속에서도 우리는 연대하고, 상처를 보듬으며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가장 먼저 불길 속으로 들어간 소방대원들의 헌신은 이번 산불 속에서 가장 빛나는 희생이었다. 위험한 상황에서도 사람을 구조하고 불길을 막아낸 그들의 노고는 국가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숭고한 기록이다. 이들의 용기와 땀은 단지 직무를 넘어서, 공동체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사명감이었다.
우리는 이제 이 참사 앞에 마주서야 한다. 슬픔을 넘어서,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정치와 행정은 국민의 생명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실질적인 개혁에 착수해야 한다. 재난은 예고 없이 오지만, 대비는 인간의 의지로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모든 이들에게 깊은 위로를 전한다. 이 고통은 쉽게 잊히지 않을 것이며, 우리는 그 기억을 기록하고, 함께 나누며, 다시는 같은 아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잿더미 위에서도 희망은 자라날 수 있다. 그 희망을 지키기 위해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는 멈추지 않고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