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생각하는 눈, 듣는 마음》

1편 - 혼돈 속에서 나를 찾는 법

by 정성균

흐트러진 아침


햇살이 커튼 틈새로 조용히 스며들었다. 옅은 금빛 가루가 공중에 춤추는 것처럼 보였다. 새벽의 정취를 머금은 공기는 더없이 투명했고, 창문을 활짝 열자 차갑고 싱그러운 바람이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고요하고 평화로운 아침이었다. 그러나 내면은 이상하게 무거웠다. 처리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손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애써 내려놓은 휴대폰은 여전히 머릿속 화면을 끊임없이 재생했고, 눈앞에 없는 기억과 엉킨 감정의 실타래가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왔다. 몸은 제자리에 뿌리내린 나무처럼 서 있었지만, 마음은 흩어져 어딘가로 흘러가는 모래알 같았다. 삶의 중심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비로소 내면을 들여다볼 용기를 얻게 된다.


그럴 때 사람은 직감한다. 이 묵직한 침묵이 일시적인 피로나 그저 그런 기분 탓이 아니라는 것을. 흩어진 마음의 조각들을 그러모아 정리가 필요하다는 분명한 신호가 왔음을. 그러나 그 정리는 어질러진 책상을 치우거나, 쌓인 서류를 분류하거나, 켜켜이 쌓인 먼지를 털어내는 일이 아니다. 가장 먼저 다스려야 할 자리는 바로 마음의 안쪽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혼란이 시작되었으니,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그제야 비로소 우리는 밖으로 향하던 시선을 거두고 내면의 지도를 펼쳐볼 준비를 하게 된다.


감정을 제자리에 두는 법


감정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손님과 같다. 봄날의 소나기처럼 갑자기 쏟아져 내리거나, 한여름의 불볕더위처럼 뜨겁게 끓어오르기도 한다. 별것 아닌 말 한마디가 온종일 가슴에 묵직하게 머물고, 이유 모를 불안이 하루 전체를 먹물처럼 짙게 물들이기도 한다. 우리는 흔히 그런 감정을 덮어 두려 한다. 서랍 깊숙한 곳에 넣어두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사라지리라 믿는다. 그러나 감정은 덮인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단단하게 굳어지고, 응어리가 되어 숨 막히는 무게로 밀려온다. 감정을 다스린다는 것은 지우거나 덮어두는 일이 아니다. 본래 있어야 할 자리에 놓아주는 일이다. 불안은 불안의 자리에, 슬픔은 슬픔의 자리에. 혼란스러움은 혼란스러움의 자리에.


이름을 붙이고, 무게를 재며, 지금 이 시점에 왜 찾아왔는지 조용히 묻는 과정. 그것이 마음을 정리하는 첫걸음이다. 나는 몇 해 전 한밤중에 갑작스러운 불안감에 잠에서 깨어난 적이 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냥, 온몸의 세포가 곤두서는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이 나를 짓눌렀다. 조용히 불을 켜고, 낡은 노트 한 장을 꺼냈다. 그리고 연필로 천천히, 조심스럽게 썼다.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 그 짧은 기록만으로도 가슴을 짓누르던 돌덩이 같은 무게가 조금은 풀리는 것을 느꼈다. 거대한 괴물처럼 느껴지던 감정이, 손에 잡히는 단어로 바뀌는 순간. 흐릿했던 정체가 또렷이 드러나는 순간. 감정에 자리를 마련해 주는 일은 이렇게 작지만 분명한 힘을 발휘한다. 거친 파도에 휩쓸려 허우적거리다, 닻을 내리는 순간처럼.


완벽보다 반복


사람들은 정돈을 완벽한 상태로 착각하곤 한다. 한 번 정리하면 영원히 유지될 거라 믿는다. 그러나 마음은 그렇지 않다. 오늘은 더없이 안정적이어도 내일은 바람 앞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위태로울 수 있다. 어제는 쉽게 해냈던 일이 오늘은 턱없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 변화는 실패가 아니다. 실패라는 것은 없다. 그저 자연스러운 흐름일 뿐이다. 우리의 내면은 늘 새로운 감정, 새로운 생각, 새로운 과제들과 씨름하며 끊임없이 움직인다.


책상 위 먼지는 늘 내려앉는다. 아무리 깨끗이 닦아도,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다시 쌓인다. 매일 닦아야 하고, 매주 정리해야 한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정돈은 종착점이 아니라 과정이다. 끝이 있는 길이 아니라, 걷고 또 걸어야 하는 길이다. 흐트러지고, 다시 세우고, 또다시 들여다보아야 한다. 중요한 건 완벽한 상태를 유지하려는 집착이 아니라, 언제든 돌아오려는 태도다. 작은 점검이 쌓여 습관이 될 때 비로소 내면은 지켜진다. 완성을 좇는 덧없는 갈망보다 꾸준히 되돌아오는 결심이 우리를 단단하게 만든다.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그 수많은 반복 속에서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중심을 갖게 된다. 마치 굳건한 바위가 오랜 세월 파도를 견뎌내며 더욱 단단해지듯.


짧은 순간이 건네는 위로


마음의 혼란이 깊을수록 사람들은 크고 획기적인 해답을 찾으려 한다. 삶을 뒤바꿀 만큼의 긴 여행, 모든 것을 멈추는 대단한 결심, 일상을 송두리째 바꾸는 계획. 마치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해 줄 비장의 열쇠를 찾는 것처럼. 그러나 정작 우리를 지켜주는 것은 아주 짧고 사소한 순간일 때가 많다.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오는 혼란을 잠재우는 것은, 의외로 작은 돌멩이 하나일 수 있다.


출근길 복잡한 버스 창가에 앉아 눈을 감고 단 세 번만 깊은 호흡을 고르는 일. 늦은 밤, 책상에 앉아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마시며 그 온기를 오롯이 느끼는 일. 그 몇 분의 고요가 하루 전체를 바꾼다. 나 역시 예전에는 늘 거대한 방법만 찾았다. 불안을 잠재우려면 무언가 거대한 변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알았다. 십 분 남짓의 고요, 몇 줄의 글, 잠시 늦춘 발걸음이 오히려 더 깊이 나를 붙잡는다는 것을. 작은 습관은 겉보기엔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그 힘은 굵고 오래 이어진다.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이 결국 단단한 바위에 구멍을 내듯이. 큰 위로가 아니라, 작은 미동이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이다.


감각이 여는 길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독이는 가장 확실한 길 중 하나는, 바로 감각을 깨우는 일이다. 좋아하는 노래 한 곡은 생각보다 큰 힘을 발휘한다. 멜로디에 귀를 기울이고, 가사에 집중하다 보면 머릿속의 소란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걷는 일도 그렇다. 목적 없이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사고의 속도가 느려지고, 그제야 비로소 주변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빛, 골목을 스치는 바람, 이름 모를 새의 지저귐이 마음을 가볍게 한다.


책 한 장을 소리 내어 읽으면 문장의 리듬이 호흡을 바꾸고, 귀에 닿는 단어들은 내면의 소란을 진정시킨다. 글쓰기는 막연했던 감정을 밖으로 꺼내 구체적인 형태를 주고, 사진 한 장은 그 순간의 감정을 응축한다. 물건을 정리하는 사소한 행동도 효과가 있다. 설거지를 하며 접시를 씻는 동안, 따뜻한 물의 감촉과 그릇이 뽀드득거리는 소리에 집중하게 되면서 마음은 조금씩 안정된다. 화초에 물을 주는 작은 보살핌은 정서를 세밀하게 가다듬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자신에게만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이다. 자극이 사라진 15분 동안 내면은 조용히 고요를 회복한다. 수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잠시나마 자신을 건져 올리는 시간.


관계로 번져 가는 고요


내면이 흔들리면 말도 쉽게 거칠어진다. 마음이 불편하니, 언어도 덩달아 불편해진다. 사소한 일에도 목소리가 높아지고, 언어는 불필요하게 날카로워진다. 그러나 마음이 차분해지면 말은 달라진다. 억지로 꾸미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고, 서두르지 않아도 충분히 닿는다.


이 고요는 개인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돌멩이가 던져진 잔잔한 물결처럼, 그 파동은 주위로 번져 나간다. 가족과의 대화에서, 직장 동료와의 협업에서, 낯선 이와의 짧은 만남 속에서도 드러난다. 마음이 가다듬어진 사람은 상대에게 여백을 남긴다. 불필요한 소모는 줄어들고, 배려가 스며들며, 관계는 한결 유연해진다. 작은 고요가 관계로 확장되고, 그 관계는 다시 사회로 퍼져 나간다. 나는 회의 자리에서 목소리를 높인 뒤, 한참 후에야 그 말이 누군가를 상처 입혔다는 것을 깨달은 적이 있다. 그 경험 이후로 마음을 먼저 다스리지 않으면 언어도 흔들린다는 사실을 절실히 알게 되었다. 내면이 평온할 때, 말은 자연스럽게 부드러워지고 관계는 안정된다. 평화는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돌아올 수 있는 힘


내면을 다루는 일은 단번에 끝나지 않는다. 어제는 잘되던 일이 오늘은 어긋나고, 꾸준히 이어가던 습관이 멈추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실패가 아니다. 중요한 건 언제든 돌아올 수 있다는 믿음이다. 무너지더라도, 쓰러지더라도 괜찮다. 지쳐도 괜찮다.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시작하는 일이다. 작은 결심 하나가 다시 중심을 세운다. 반복되는 선택 속에서 사람은 조금씩 단단해지고, 그 결심이 내일의 평화를 준비한다.


당신에게 흔들림이 찾아올 때, 당신의 마음은 당신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르고, 자신을 돌아보라고. 그리고 그 흔들림은 당신을 더 깊은 곳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그 모든 혼란과 방황은 결국 당신이 더 단단한 사람으로 서는 과정의 한 부분일 뿐이다.


오늘을 지켜내는 한 걸음


오늘 하루가 어수선하다면 그것은 마음이 당신에게 보내는 신호일지 모른다. 감정을 다루지 못한 날이라 해도 괜찮다. 흔들림은 잠시 멈추어야 한다는 표시일 수 있다. 중요한 건 자신과의 약속을 잊지 않는 것이다.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이 우리를 붙들어 준다. 짧은 호흡, 작은 습관, 조용한 돌봄. 이 작은 것들이 모여 우리를 다시 세운다.


오늘 당신은 어떤 행동으로 내면을 다독일 것인가. 그 선택 하나가 내일을 바꾸고, 삶을 떠받치는 굳건한 힘이 될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