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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눈, 듣는 마음》

8편 - 맞서지 않고 이해하는 마음

by 정성균

감정을 알아차리는 순간

상황은 종종 마음보다 한 발 늦게 도착한다. 기분이 먼저 이상 신호를 감지하고, 그다음에서야 생각은 그 불편함의 정체를 파악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말로는 ‘상황’이라 부르지만, 사실 대부분은 감각에서 출발한다. 미묘하게 불편한 대화, 어색하게 끊긴 시선, 반복되는 무기력. 우리는 이것들을 명확히 규정하지 못한 채 일상 속에서 조용한 균열을 통과하곤 한다.


우리는 대개 명백한 사건을 ‘상황’으로 인식하지만, 삶의 대부분은 그렇게 선명한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오히려 크고 복잡한 일이 되기 전, 조그만 이상 신호가 반복되며 삶의 감도를 흐리게 만든다. 일은 진행되고 관계는 지속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설명되지 않는 불안이 조금씩 커져간다.


그 불안은 종종 스스로를 향한다. 내가 예민한 건 아닌지, 괜한 걱정을 키우는 건 아닌지, 나 스스로 판단을 흐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이 현실보다 먼저 사람을 흔든다. 그리고 그 결과, 감지된 흐름은 더 늦게 명명되거나 아예 외면되기도 한다.


상황을 일찍 알아차리는 일은 그래서 내면의 흔들림을 이해하는 것과 닿아 있다. 무엇이 불편한지, 어떤 말이 마음에 걸렸는지, 어느 순간부터 일이 버거워졌는지를 가늠해 보는 일. 그 감각은 논리보다 빠르고 설명보다도 명확하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것을 무시한 채 살아간다. 괜찮다는 말로 덮거나, 지나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미루는 것이다.


전개가 먼저가 아니라, 감각이 먼저 흔들리고 그다음에서야 ‘상황’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그러니 흐름을 회복하는 것은 언제나 늦은 작업이고, 뒤로 물러서는 반응 역시 이미 작동 중인 대응의 한 방식이다.


숨는 것도 나를 지키는 방법

사람들은 ‘물러남’이라는 단어에 부정적인 인상을 먼저 덧붙인다. 마주하지 않는 것, 외면하는 것, 도망치는 것. 그렇게 단정된 말들은 물러서는 태도에 ‘의지 부족’이라는 낙인을 찍는다. 하지만 실제로 그것은 생존 본능에 더 가깝다. 감정이 압도될 때, 판단이 흔들릴 때, 관계가 무너질 것 같은 순간에 사람은 먼저 자신을 숨긴다. 스스로를 보호할 수단으로 거리를 둔다.


감당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잠시 물러서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임시 조치에 가깝다. 누군가는 잠시 연락을 끊고, 또 다른 이는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비운다. 그들 모두가 사정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더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한 걸음 물러나는 것이다. 마주할 여유가 없을 때, 잠시의 유예는 시간을 버는 기술이 된다.


몸이 아플 때 무조건 움직이지 않듯, 마음이 위태로울 때도 가만히 있는 것이 방법이 된다. 물러남은 미성숙한 대응이 아니라, 조절의 한 형식이다. 정면으로 맞설 여력이 없을 때, 삶은 우리에게 잠시 등을 돌릴 권리를 준다. 중요한 건 그 한걸음이 ‘관심 없음’이나 ‘책임을 포기하는 태도’로 이어지지 않도록 경계를 세우는 일이다.

지속적인 거리 두기는 관계를 멀어지게 하고, 반복되는 회전은 상황을 더욱 흐리게 만든다. 그러나 한 번의 후퇴는 반드시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오히려 성급한 직면보다 나을 수도 있다. 진심 없이 마주하는 태도는 감정을 더 꼬이게 만들 뿐이다. 준비되지 않은 말보다, 준비된 침묵이 낫다.


잠시 물러나는 선택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전략이지만, 동시에 스스로를 회복하기 위한 시간도 포함한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거리는 방어가 되기도 하고, 모든 것을 놓아버리는 태도가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 사이에서 흔들리며 균형을 찾는다.


정답이 아니라, 방향을 잡는 일

진행 중인 문제를 수습한다고 할 때, 많은 사람은 명확한 결말을 기대한다. 갈등은 사라지고, 흐름은 정리되며, 마음도 편안해질 것이라는 바람. 그러나 현실에서 조화를 회복하는 일은 그런 단순한 수순을 따르지 않는다. 어떤 일은 말로 끝나지 않고, 내면의 응어리는 정리 이후에도 남아있다. 때로는 ‘정리된 줄 알았던 일’이 다시 다른 모양으로 떠오르기도 한다.


균형을 맞추기 위해 필요한 것은 ‘맞는 답’을 찾는 능력이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려는가에 대한 감각이다. 정답을 찾는 태도는 사안을 한정 짓고 해석을 단순화한다. 하지만 방향을 정하는 태도는 현실을 유연하게 바라보게 하고, 그 안에서 적절한 거리를 조절하게 만든다.


갈등이 생겼을 때, 모든 사실을 드러내고 서로가 납득해야만 끝이 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어느 쪽도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 더 중요하다. 흐름 회복은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이후를 함께 고민하는 일로 이어진다. 감정이 크게 움직인 장면일수록, 논리보다 방향 감각이 더 필요하다.


정리의 과정은 절차이자 태도다. 빠르게 판단하고 결론을 내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오히려 천천히 흐름을 파악하고, 불편한 국면을 함께 붙들고 있을 수 있는 인내가 더 깊은 수습으로 이어진다. 무엇보다도, 상대와 나 사이의 온도를 고려하는 시선이 필요하다. 흐름을 회복하는 기술은 관계를 지키는 방식과 맞닿아 있다.


가끔은 상황을 수습하려고 애쓰는 것 자체가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기도 한다. 오랜 갈등, 반복되는 불만, 정리되지 않은 마음의 잔류. 이런 감정의 구조는 한 번의 말이나 행동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그럴 땐 ‘정리한다’는 목표보다는, ‘더 나아지려는 방향’을 잡는 것이 낫다. 완벽한 정리는 없지만, 조금씩 나아가는 길은 존재한다.

삶의 많은 순간은 수학처럼 풀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 흐름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마음으로 지나가는지는 충분히 조절할 수 있다. 결국 흐름 회복은 답을 찾는 일이 아니라, 버텨내는 일상 속에서 조금씩 태도를 조정해 가는 과정이다.


피하지도, 덤비지도 않는 마음

갈등을 조정한다는 건 언제나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정면으로 맞서려는 마음과 멀리 두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사람은 흔들린다. 물러남은 자책을 부르고, 무조건적인 직면은 마음을 소모시킨다. 그 사이 어디쯤에서,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태도가 가능하다면, 그것이 가장 단단한 대응일지도 모른다.


어떤 감정은 너무 가까이 다가서면 형태가 흐려지고, 너무 멀어지면 의미를 잃는다. 중요한 건 그 사이의 적절한 거리를 스스로 조절하는 일이다. 마주하되 몰입하지 않고, 알아차리되 함몰되지 않으며, 다가가되 휘말리지 않는 태도. 그것이 '피하지도, 덤비지도 않는 마음'이다.


이런 태도는 훈련이 필요한 내면의 기술이다. 감정의 파고가 커진 순간에는 거리 조절이 어렵고, 판단이 흐려지는 만큼 행동도 날카로워진다. 그러나 오래 껴안고 지나온 사람은 안다. 모든 장면에 정서적으로 즉시 반응하는 일은 결국 자기 자신을 가장 먼저 무너뜨린다는 것을.


때로는 말보다 침묵이 낫고, 설명보다 관찰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누군가의 기분이 거칠게 부딪혀올 때, 함께 맞서기보다 한 발 물러나 그 장면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 모든 것이 맞서야만 풀리는 건 아니다. 단단한 마음은 반드시 날을 세우지 않아도 된다.


특히 관계의 긴장에서 이 태도는 깊은 힘을 발휘한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감정의 반사가 쉽게 격해지고, 흐름은 반복된다. 하지만 그런 순간에도 말과 행동의 수위를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은 관계를 오래 지속시키는 힘을 가진다. 기분을 바로 표출하기보다 잠시 고요히 지켜보는 일, 반응 대신 관망을 선택하는 일. 그것은 무관심이 아니라 조심스러운 신중함이다.


피하지 않고, 덤비지도 않으면서, 조용히 중심을 바라보는 마음. 그 안에는 정서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으려는 절제와, 여전히 관계를 지키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삶은 그런 균형 위에서 조금씩 견고해진다.


말없이 지나가는 것이 답이 되는 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알게 된다. 모든 순간을 수습할 필요는 없었다는 사실을. 그때는 절실했지만 지금은 사라진 감정의 반향들. 끝내고 싶었던 갈등도, 반드시 정리하고 싶었던 이야기들도, 어느 순간 흔적처럼 멀어져 있다. 따로 정리하지 않고 흘려보낸 경험들이 오히려 마음에 덜 남는다는 것을 삶은 가르쳐준다.


사람은 때로 너무 일찍 개입하고, 너무 빨리 판단하려 든다. 불편한 기분은 곧바로 다뤄야 할 무언가로 여겨지고, 관계의 긴장은 반드시 정리되어야 할 숙제로 느껴진다. 하지만 어떤 일은 그저 흘러가야 제자리를 찾는다. 개입이 개입을 부르고, 설명이 또 다른 오해를 낳을 때, 가만히 두는 것이 최선이 되기도 한다.


마음을 지키는 데 있어 ‘미뤄두는 용기’도 필요하다. 수습이 당장 이루어지지 않아도, 기분이 한 걸음 물러나는 시간은 우리를 다른 눈으로 상황을 보게 만든다. 이해가 아니라 수용, 반응이 아니라 기다림의 시간. 한 걸음 떨어진 시선이 더 많은 걸 보여준다.


특히 감정이 얽힌 국면일수록, 시간이 해주는 일이 있다. 명확한 말보다 묵묵한 일상, 뜨거운 다짐보다 조용한 반복. 이런 것들이 관계를 어루만지고, 기분을 정리한다. 수습이 아니라 변화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반응의 결을 달리하게 된다.


인간의 삶은 모든 것을 설명하고 정리하는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풀지 못한 갈등이 관계의 균형이 되기도 하고, 말하지 않은 감정이 오히려 서로를 보호하기도 한다. 마무리되지 않았기에 서로에게 여전히 생각의 공간이 남아 있는 것. 건드리지 않고 남겨두는 것도 삶의 한 방식이 된다.


때로는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지나가는 것이 조용히 정리되는 방식이다. 그것은 포기도 아니고 방임도 아니다. 그저, 어떤 감정은 굳이 정리하지 않아도 우리를 자라게 만든다는 것을 이해하는 일이다. 말하지 않아도 정돈되는 장면들이, 마음의 결을 다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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