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출발점

by 정성균


삶에서 되풀이되는 선택의 결과는 판단이 맞았는지 틀렸는지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같은 결정을 내렸더라도 출발한 지점에 따라 전혀 다른 결말에 이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과의 좋고 나쁨에 시선을 둔다. 그 결정이 어떤 상황과 몸의 형편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돌아보는 일은 많지 않다. 선택이 어긋났을 때 많은 경우 사고의 부족이나 의지의 약함으로 이유를 정리한다. 그러나 동일한 생각도 어떤 조건에서 떠올랐는지에 따라 의미와 영향은 달라진다. 이 글은 선택이 시작되는 상태를 차분히 살펴본다.


삶을 평가할 때 사람들은 무엇을 택했는지를 먼저 묻는다. 어떤 여건에서 그 선택이 시작되었는지를 묻는 일은 상대적으로 드물다. 이 질문이 빠지면 결과는 개인의 능력이나 성향 문제로 쉽게 정리된다. 실패는 역량의 부족으로 해석되고, 망설임은 결단력의 문제로 받아들여진다. 선택은 언제나 같은 조건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생각이 시작되는 위치는 그때마다 다르다. 이 차이는 결과에 생각보다 깊은 영향을 남긴다. 선택의 흐름은 결론이 나오기 전부터 이미 일정한 방향을 띤다.


몸은 사고 이전의 조건으로 존재한다


사람들은 보통 생각이 먼저 형성되고 행동이 뒤따른다고 여긴다. 확신이 생긴 뒤 태도가 정리된다는 설명은 오랫동안 자연스러운 질서로 받아들여져 왔다. 이런 이해는 많은 장면을 설명하는 데 실제로 도움이 된다. 다만 모든 판단이 언제나 동일한 조건에서 출발하는지는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결론이 떠오르기 전 이미 형성된 상태는 결정의 방향과 속도에 영향을 준다. 그 상태는 우리가 의식하기 이전에 먼저 만들어진다.


별다른 일이 없어도 하루가 유난히 힘들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그런 시간을 되짚어보면 몸은 대체로 안쪽으로 말린 모습에 놓여 있다. 어깨는 내려앉고, 시선은 낮아지며, 숨은 짧아진다. 이런 변화는 기분의 결과로 이해되기 쉽다. 피로가 쌓이거나 기운이 가라앉아 신체가 굳었다는 설명이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그러나 이미 형성된 긴장은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의 범위를 조용히 좁힌다.


이런 상태는 뚜렷한 이유가 없어도 다시 나타나곤 한다. 잠에서 깨어난 직후의 자세, 이동 중의 걸음, 앉아 있는 동안의 시선은 의식적인 선택 없이 굳어지기 쉽다. 이렇게 누적된 몸의 형편은 판단이 시작되는 지점에 조용히 작용한다. 결론이 내려지기 전부터 선택의 방향이 일정 부분 정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몸은 사고 이전의 조건으로 기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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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현장에서 건져 올린 생각과 마음의 결을, 책 속 문장과 함께 조용히 전합니다. 스친 만남이 믿음으로 이어져 각자의 하루에 힘을 더하는 장면들을 담담히 써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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