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을 '전쟁터'로 보던 시선을 '서로 기대어 선 숲'으로 바꾸는 공생의 선언문
우리는 오랫동안 스스로를 '호모 사피엔스'라 불러왔습니다. '지혜로운 인간'이라는 이 근사한 이름표를 믿고 자연을 정복하며,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발아래 두는 데 성공했다고 믿었습니다. 거대한 댐을 세워 물길을 돌리고 도시를 건설하며, 미생물조차 편의를 위해 통제했습니다. 과정 속에서 누린 풍요는 이러한 지배가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오만함의 끝에서 마주한 것은 승리의 영광이 아니었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낯설고 압도적인 두려움이었습니다. 갑작스러운 기후의 역습이나 멈추지 않는 전염병, 무너져 내리는 자연의 비명은 우리가 쌓아 올린 바벨탑이 얼마나 위태로운 기반 위에 서 있었는지를 뼈아프게 드러냅니다. 지혜가 정말 우리를 구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고개를 듭니다. 이제 이 불안은 회피할 수 없는 삶의 과제가 되었습니다.
매일 아침 오르는 엘리베이터 안의 풍경을 떠올려 보십시오. 좁은 공간 속에 대여섯 명이 모여 있지만, 시선은 약속이라도 한 듯 바닥이나 스마트폰 액정만을 향합니다. 타인은 내 공간을 침범하는 존재이거나,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배경일뿐입니다. 이런 고립은 현대인이 느끼는 불안의 실체를 드러냅니다. 서로를 믿지 못하고 경계하는 마음이 깊어질수록, 우리가 발을 딛고 선 공동체의 기반은 서서히 약해집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낯선 이웃이 건넨 짧은 목례와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는 한마디가 차갑던 공기를 깨뜨립니다. 순간 당혹스럽기도 하겠지만, 이내 마음속에 잔잔한 온기가 번집니다. 시장통에서 건네받은 덤 한 봉지, 비 오는 날 우산을 함께 쓰자며 내미는 손길 같은 사소한 다정함은 잊고 지내던 중요한 감각을 되살립니다. 나는 혼자가 아니며, 누군가의 선의 속에서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연결은 흩어진 두려움을 다루는 가장 단단한 출발점이 됩니다.
이제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의 이기적인 영리함을 내려놓고, '공생 인간(Homo Symbioticus)'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공생 인간이란 서로 돕고 기대어 함께 살아가는 존재를 뜻합니다.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온 '나만 잘 살면 된다'는 경쟁 모델은 이미 균열을 드러냈습니다. 타인을 밟고 올라서는 방식은 결국 자신이 서 있는 기반까지 허물어뜨립니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선택은 고립을 남길뿐입니다.
엘리베이터 안의 이웃을 공생의 동반자로 바라보는 순간 일상은 달라집니다. 시장 상인의 작은 정이 지역의 흐름을 살리고, 그 따스함이 다시 우리의 삶으로 돌아옵니다. 자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숲 속의 나무 한 그루가 서 있기 위해 수많은 생명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역할을 나누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나'라는 울타리를 넘어, 타인의 노동과 생명에 빚진 상호 의존의 생태계를 직시해야 합니다. 그 안에서 타인의 의미를 발견할 때 비로소 새로운 지혜가 형성됩니다.
우리는 흔히 '공생'을 도덕적인 권고처럼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공생은 생존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선택입니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함께 나아가는 방식입니다. 자연계에는 홀로 존재하는 생명이 없습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 숨 쉬는 공기 모두 수많은 생명의 작용 속에서 형성됩니다.
이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타인을 돕는 행동은 손실이 아니라, 자신이 서 있는 토대를 강화하는 행위입니다. 타인의 안정이 곧 나의 안정으로 이어진다는 흐름을 인식하는 순간, 두려움은 더 이상 통제 불가능한 감정으로 남지 않습니다.
인간이 지구의 중심이라는 생각은 착각입니다. 생명의 가계도를 펼쳐보면 인간은 수많은 가지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뿌리가 약해지면 잎은 버틸 수 없습니다. 생태계의 균형이 무너지는 현상은 우리가 기대고 있던 기반이 흔들리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공생의 길을 선택한다는 것은 이 구조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다른 존재의 자리를 존중하는 태도는 불안을 완화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입니다.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은 고립에서 비롯된 공포를 낮춥니다.
생명은 이기성만으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류는 더 오랜 생존을 위해 기꺼이 '협력'을 선택해 왔습니다. 나를 지키는 울타리를 낮추고 다른 사람과 손을 잡는 행위는, 인류가 진화의 역사 속에서 체득한 가장 영리한 공존의 질서입니다.
이제 기업은 이윤 그 이상의 사회적 책임을 고민해야 하고, 국가는 자국의 경계를 넘어 인류 전체의 지속 가능성을 바라봐야 합니다. 개인 또한 나의 선택이 타인의 삶에 어떤 물결을 남기는지 끊임없이 성찰해야 할 때입니다.
작은 친절이 모여 신뢰를 만들고, 그 신뢰는 무너져가는 공동체를 지탱하는 든든한 뿌리가 됩니다. 이타적 협력은 우리 문명이 존속하기 위한 필수적인 토대입니다.
두려움을 다루는 유일한 방법
지금 우리가 마주한 두려움은 이미 개인이 감당할 범위를 벗어났습니다. 기후 변화나 불평등은 외면한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만을 내려놓고 연결을 선택하는 순간, 두려움은 우리를 마비시키는 감정이 아니라 움직이게 하는 신호가 됩니다. 혼자의 걸음은 불안정하지만, 연결된 걸음은 지속됩니다.
우리가 서 있는 기반을 조금씩 단단하게 만드는 이 축적이 결국 다음 시간을 지탱합니다. 타자의 생존이 곧 나의 지속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순간, 두려움은 새로운 방향을 갖게 됩니다. 그렇게 두려움은 다루어지기 시작합니다. 공생이라는 질서 속에서,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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