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지 않은 순간부터

by 정성균

끄덕임 뒤에 가려진 공백


회의실의 공기가 식어 있었다. 사람들은 익숙한 몸짓으로 소지품을 챙겨 하나둘 자리를 떠났고, 나는 그 활기찬 퇴장의 소음 속에 섞이지 못한 채 조금 늦게 움직였다. 책상 위에 놓인 노트를 펼쳐 방금 적어 내려간 문장들을 천천히 읽어 내려가다, 어느 지점에서 시선이 멈췄다.


낯설었다. 분명 내 귀로 직접 들었고 내 손이 기록한 말들인데, 이 논리가 어디서 시작되어 어디로 흐르는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단어는 그대로 남아 있었고 문장은 이어져 있었지만, 그 안을 채워야 할 맥락은 빠져 있었다.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것은 논리적인 파악이 아니라, 상대의 말을 들으며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던 나의 신체적 반응뿐이었다.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모른다.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회의실의 조명 아래 홀로 남겨진 듯한 고립감이 밀려들었다. 회의 중간, 말이 잠깐 멈추는 몇 번의 틈이 있었다. 그 공백에 질문을 던질 수는 없었을까. "잠시만요, 그 부분은 다시 설명해 주시겠어요?"라는 한 마디면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입을 떼지 않았다. 흐름을 깨고 싶지 않았고, 나만 빼고 모두가 이해한 듯한 분위기 속에서 낙오자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참고 들으면 뒤에서 퍼즐 조각이 맞춰질 것이라는 막연한 낙관, 굳이 지금 확인하지 않아도 나중에 혼자 찾아보면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기만.


그 선택은 조용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지나갔다. 누구나 한 번쯤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선택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남았고, 그 위에 다음 오판이 포개졌다. 사라지지 않는 침묵 위로 잘못된 확신이 덧칠해지는 법이다.


미루어둔 대가와 벌어진 간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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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현장에서 건져 올린 생각과 마음의 결을, 책 속 문장과 함께 조용히 전합니다. 스친 만남이 믿음으로 이어져 각자의 하루에 힘을 더하는 장면들을 담담히 써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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