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실의 공기가 식어 있었다. 사람들은 익숙한 몸짓으로 소지품을 챙겨 하나둘 자리를 떠났고, 나는 그 활기찬 퇴장의 소음 속에 섞이지 못한 채 조금 늦게 움직였다. 책상 위에 놓인 노트를 펼쳐 방금 적어 내려간 문장들을 천천히 읽어 내려가다, 어느 지점에서 시선이 멈췄다.
낯설었다. 분명 내 귀로 직접 들었고 내 손이 기록한 말들인데, 이 논리가 어디서 시작되어 어디로 흐르는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단어는 그대로 남아 있었고 문장은 이어져 있었지만, 그 안을 채워야 할 맥락은 빠져 있었다.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것은 논리적인 파악이 아니라, 상대의 말을 들으며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던 나의 신체적 반응뿐이었다.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모른다.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회의실의 조명 아래 홀로 남겨진 듯한 고립감이 밀려들었다. 회의 중간, 말이 잠깐 멈추는 몇 번의 틈이 있었다. 그 공백에 질문을 던질 수는 없었을까. "잠시만요, 그 부분은 다시 설명해 주시겠어요?"라는 한 마디면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입을 떼지 않았다. 흐름을 깨고 싶지 않았고, 나만 빼고 모두가 이해한 듯한 분위기 속에서 낙오자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참고 들으면 뒤에서 퍼즐 조각이 맞춰질 것이라는 막연한 낙관, 굳이 지금 확인하지 않아도 나중에 혼자 찾아보면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기만.
그 선택은 조용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지나갔다. 누구나 한 번쯤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선택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남았고, 그 위에 다음 오판이 포개졌다. 사라지지 않는 침묵 위로 잘못된 확신이 덧칠해지는 법이다.
침묵의 대가는 즉각적으로 도착하지 않는다. 그것은 시간이 흘러 우리가 가장 취약해진 순간에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돌아온다. 며칠 뒤 실무에 착수했을 때 나는 거대한 벽에 부딪혔다. 첫 단추부터 어긋나 있었고, 나는 결국 가장 늦게 깨달은 이가 되고 말았다. 그때 머릿속을 스친 건 실패의 결과물이 아니라, 질문하지 않았던 그 짧은 시간이었다.
왜 이런 일은 반복되는가. '이미 알고 있다'는 오만, 혹은 '예전 방식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안일함이 확인이라는 필수 절차를 생략하게 만든다. 하지만 다른 동료가 내가 놓친 지점을 정확히 짚어낼 때, 나는 그제야 처음 듣는 이처럼 귀를 기울이게 된다.
실제로 알고 있는 것과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 사이의 간격. 그 간격은 묻지 않았던 시간만큼이나 벌어져 있었다. 이해하지 못한 채 넘어간 순간들이, 퇴적층처럼 쌓였다. 틀린 이해 위에서 내린 결정은 겉으로는 매끄러워 보이며, 때로는 무결하게 진행된다는 착각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흐름은 조금씩 빗나가고 있었다. 처음의 기준에서 벗어나 이미 몇 단계를 지나온 뒤에는 되돌아가기 어렵다. 이해하지 못한 채 이어진 선택은, 이미 다른 궤도에 올라탄 뒤였다.
사람은 틀리는 것보다 '작아 보이는 순간'을 더 불편해한다. 그래서 안다고 말한다. 이해했다는 이유를 스스로 지어낸다. 지금까지 잘해왔으니 괜찮다는 근거를 덧붙이면 묻지 않는 선택은 자연스러워진다. 이 선택은 잠깐 편하지만 삶의 기록에는 아주 길게 남는다.
이 마음속 소동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상황을 완벽히 장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말을 아끼고 적절한 순간에 고개를 끄덕이는 행동은 신뢰의 신호로 오해받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모른다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치열한 자기기만이 작동한다.
타인의 결과물과 비교하며 시선이 흔들릴 때, 내 판단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서늘한 예감이 들 때 사람은 멈추는가. 아니, 오히려 더 밀어붙인다. 더 많은 설명을 덧붙이고 논리를 이어 붙인다. 여기까지 왔으니 되돌리기 어렵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끝까지 밀고 나간다. 그래야 무너지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시야는 좁아진다. 도구여야 할 생각은, 지켜야 할 성벽이 된다. 그 순간부터 판단은 수정의 기회를 잃고 딱딱하게 굳어버린다. 그것은 이제 지혜가 아니라 지켜야 할 자존심의 덩어리가 되어버린다.
시작은 늘 비슷했다. 모른다고 말하지 못한 순간부터 이해는 멀어지고 기준은 흐려지며 생각은 굳어진다. 이 세 가지는 유기체처럼 함께 움직인다. 모른다고 말할 수 있어야 부족한 지점이 보이고, 그 지점이 보여야 다시 짚어볼 수 있으며, 다시 짚어야만 붙잡고 있던 잘못된 확신을 놓을 수 있다.
우리는 흔들리지 않기 위해 지식과 성과와 확신을 계속해서 쌓아 올린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 쌓인 것들이 오히려 시야를 가린다. 이미 알고 있다고 믿게 만들고, 더 이상 묻지 않아도 된다고 느끼게 만들며, 틀린 생각을 그대로 붙잡게 만든다.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엇인가. 무언가를 더하는 일이 아니다. 이미 쌓여 있는 것들 사이에서 무엇이 진실로 남아 있어야 하는지를 다시 보는 일이다. 덜어내는 과정은 생각보다 조용하다. 무언가를 새로 얻는 일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던 것 중에서 불필요한 것을 내려놓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질문을 조금 더 빨리 하려 한다. 망설임이 찾아올 때, 이 변명이 나를 지키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나를 그대로 두기 위한 것인지 잠깐 멈춰 생각한다. 대부분의 경우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모른다고 말하는 순간은 짧지만, 그것을 미루는 시간은 평생의 후회로 남는다.
삶의 많은 일은 나중에 잘못되는 것이 아니다. 바로 그 이전, 질문하지 않은 찰나의 순간에 이미 방향이 정해져 있는 법이다.
모든 어긋남은, 질문을 삼킨 그 짧은 순간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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