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갈무리

by 스칼렛

3주간의 여정이 끝났다. 이번 여행은 새로움과 익숙함이 교차했던 시간이었다. 처음 마주한 쿠알라룸푸르는 신선한 충격과 화려함으로 시선을 빼앗았고, 뒤이어 만난 발리는 익숙함으로 나를 편안하게 품어주었다.


특히 쿠알라룸푸르는 그 화려함 너머의 진짜 얼굴이 더 궁금해지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여행지가 아니라, 언젠가 다시 찾아가 골목을 걷다가 조용한 카페 한구석에 앉아 찬찬히 이 도시를 관찰하고 싶어졌다. 이 낯설고 매력적인 도시를 내게 익숙하고 편안한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세상에는 아직 내가 가보지 못한 미지의 여행지가 무수히 많다. 그 많은 곳들을 내 생에 얼마나 더 경험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끊임없이 새로운 곳을 좇기보다,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던 곳에 다시 머무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돌이켜보면 일상에서도 그랬다. 남들보다 먼저 새로 오픈한 가게를 찾아가거나, 신제품을 경험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은 아니었다. 항상 남들이 다 경험하고 난 뒤, 내 속도에 맞춰 천천히 음미하는 편이었다


누구보다 먼저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는 조바심은 내겐 없었다. 여행 또한 마찬가지다. 남들이 정해놓은 필수 코스보다는 내게 맞는 장소를 찾았고, 그곳이 좋아지면 또다시 찾아가 머물렀다. 그런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 때문인지, 아니면 '세상이 별게 있나'하는 나름의 소박한 결론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사람의 인생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특별한 존재가 되기 위해 애쓰지 않는 한, 대부분의 인생은 비슷하게 흘러간다. 특별할 것도 없고, 특별하지도 않다. 무리하게 특별해지려다 보면 때론 그에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물론 화려한 역사와 전통이 숨 쉬는 머나먼 나라들을 동경하는 마음도 한편에 있다. 한 번쯤은 경험해 보고 싶다. 하지만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할지라도 괜찮다. 나는 이미 나에게 잘 맞는 여행의 방식을 찾았으니까. 그저 조용히 내 취향이 담긴 장소를 거닐고, 틈틈이 서점을 둘러보며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앞으로의 시간들을 채워갈 것이다.


이런 축복 같은 시간이 내게 주어졌음에 깊이 감사한다.






이렇게 다음을 기약하며, 쿠알라룸푸르와 발리에서의 3주를 마무리합니다. 긴 글을 통해 이번 여정에 함께 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실 여행 중 들려온 중동 지역의 전쟁 소식에 무사히 한국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을지 내심 우려했지만, 다행히 무탈하게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숨을 고르고 다음 행선지를 그려보려 했으나, 안타깝게도 전쟁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며 유가와 항공료가 무섭게 치솟고 있습니다. 당분간은 무리해서 하늘길을 고집하기보다 국내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곳을 여행하며, 묵묵히 글을 쓰고 내 길을 걸어갈 생각입니다.


부디 하루빨리 이 불안한 전쟁이 끝나기를. 그래서 예전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라, 세계 곳곳의 낯선 공기를 마주할 수 있는 평화로운 시간이 서둘러 오기를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이야기를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