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브러지고 포개어지고 - 3화(제주4.3 재 마지막회)

by 조성현

널브러지고 포개어지고 - 3화 (제주4.3 연재 마지막회)

제주4.3길을 따라

(격월간 에세이스트 수록)

14, 15, 16화는 필자가 제주4.3길을 걸으며 곳곳의 안내판에 적힌 내용을 참조하여 작성한 것임을 알립니다.

<국가폭력>


마지막 날에는 제주 서쪽 한림 <금악마을 4.3길>을 찾았다. 제주에서 중산간 마을 95퍼센트가 불에 타 사라졌다. 중가름, 오소록이, 윗가름 등 예쁜 이름을 지닌 이 마을도 지금껏 ‘잃어버린 마을’로 남아 있다. 내리꽂는 햇살을 받으며 시멘트 길을 따라 해발 427m의 금오름을 오른다. 꽤나 높다. 온 전신이 땀범벅이다. 정상의 거대한 분화구는 둘레가 1,200m에 달한다. 금오름에서는 제주 서부지역 전체를 볼 수 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바다를 향한 급경사면에 수많은 진지 동굴을 만들었다. 해방 후 토벌대의 학살을 피해 산으로 오른 주민들에게 이 진지 동굴은 피난처였다. 왜인들의 침략 흔적에 양민들이 몸을 숨겼으나 결국 발각되어 모두 죽임을 당했다. 무릎 위까지 차오른 수풀을 헤치고 나무 한 그루 없는 급경사를 따라 목책을 두른 동굴 입구로 내려갔다. 동굴 안으로 들어갈 수 없지만 죽음을 앞둔 이들이 이 안에서 느꼈을 공포를 상상해 보다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금오름 정상에서 날아오른 패러글라이딩이 주변 하늘에서 한가롭게 노닐고 있다.


이어 만벵듸 묘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육이오동란 직후 사상이 의심스럽거나 4.3 유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제주 전역에서 천여 명이 예비검속으로 검거되어 재판도 없이 처형되었다. 예비검속은 일제강점기 한국인 탄압을 목적으로 범죄의 개연성이 있다는 이유만 있으면 검거하던 악습 중의 악습이었다. 군경은 왜인의 만행을 답습한 것이다. 다른 곳에서 학살된 양민 62명의 유족들이 유해를 수습하여 여기 만벵듸에 묻었다. 위령비 머리인 개석蓋石 전면에 태극기가 새겨져 있다. 국가가 가족을 죽였지만 유족들은 대한민국을 버리지 않았다. 아니, 국가폭력을 경험했기에 또 다른 폭력이 두려워 그리 한 건 아닐까.


공항을 향하며 몇 곳에 더 갔다. 그중 하나, 애월읍 어음리 빌레못 동굴로 향했다. 좁은 시멘트 길을 따라서 오가는 이 없는 산속으로 들어간다. 중산간 숲속 동굴에 피신해 있던 주민 29명이 토벌대에 발각되어 집단 학살당했다. ‘또한, 남자아이의 발을 잡고 휘둘러 돌에 메쳐 죽이는 참혹한 일도 일어났으며 이 아이의 어머니와 젖먹이 여동생은 동굴 안으로 깊숙이 숨어들었다가 어둠 속에서 길을 잃어 굶어 죽은 시신도…’ 안내판에 적힌 이 내용은 여행을 마치고 난 후에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제주 4.3평화공원 위패 봉안소에는 13,903기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안에 들어가 잠들어 있는 영령들께 절을 올렸다. 제단 앞 추념광장 잔디밭에 수십 마리의 까마귀가 더러는 날기도 하다가 다시 내려앉는다. 까악 짖어대는 소리가 요란하다. 섬뜩하다. 까마귀 떼는 제주 전역에서 수없이 죽어간 이들을 쪼아 먹으며 배를 불렸다. 새까만 몸피가 일본 순사와 토벌대 순경과 닮아 유족뿐만 아니라 제주도민이면 누구나 까마귀를 보며 진저리를 쳤다는데, 저것들이 영령들께 사죄하러 모여 있을까? 아닐 것이다. 저것들은 지금도 영령들을 감시하러 하늘을 날고, 땅에 앉아 노려보고 있다. 나는 달려들어 훠이 쫓아버리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사람 고기 맛을 본 것들이라 필시 나에게도 달려들까 겁이 났던 것이다.


20180712_104739.jpg
20180712_105408.jpg
20180712_111226.jpg
20180712_112657.jpg
20180712_112717.jpg 4.3 때 피신한 주민들의 생명수
20180712_113814.jpg
20180712_113829.jpg
20180712_114828.jpg
20180712_114938.jpg 마을주민들의 피난처잉 이곳 금오름은 지금은 패러글라이더들이 하늘로 날아 오르는 놀이터가 되었다
20180712_123016.jpg
20180712_123043.jpg
20180712_124350.jpg
20180712_131319_HDR.jpg 토벌대가 쏜 총탄에 턱이 날아가 평생 턱없이 무명천으로 감싸고 고통 속에서 살다 가신 진아영 할머니


20180712_131423_HDR.jpg 할머니가 사셨던 집
20180712_131459_HDR.jpg
20180712_131633_HDR.jpg
20180712_131946.jpg
20180712_131952.jpg
20180712_132028.jpg
20180712_132040.jpg
20180712_132117.jpg
20180712_132144.jpg
20180712_132232.jpg
20180712_141222.jpg
20180712_141332.jpg
20180712_141402.jpg 일제의 망령이 이어진 예비검속으로 6.25 때 수많은 양민이 국단국의 의심에 붙들려가서 죽임을 당했다. 제주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곳에 당시 억울한 희생자들이 잠들어 있다.
20180712_151344_HDR.jpg
20180712_151417.jpg
20180712_151524_HDR.jpg 토벌대를 피해 살아남으로고 이곳 동굴로 피신한 두 아이와 엄마. 토벌대는 남자아이의 발을 잡고 돌에 메쳐 죽였다. 아이 엄마와 젖먹이 동생은 동굴 안에서 굶었다. 이러고도 사람인가
20180712_151532_HDR.jpg
20180712_151610.jpg


월, 수, 금 연재
이전 14화널브러지고 포개어지고 - 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