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15, 16화는 필자가 제주4.3길을 걸으며 곳곳의 안내판에 적힌 내용을 참조하여 작성한 것임을 알립니다.
<오십오 년 만에>
탐방 이틀째, 제주 남동쪽 <의귀마을 4.3길>을 찾았다. 전형적인 제주 중산간 마을이다. 일찍 시작된 군경의 토벌 작전에 주민 수백 명이 희생된 지역이다. 의귀초등학교 동녘밭. 이 밭에서 주민 80여 명이 학살당했다. 많은 피를 머금었던 밭에서 지금은 작물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당시 시신 수습도 허용되지 않아 흙만 대충 덮인 채 오래 방치되었다가 인근 밭으로 옮겨 마구잡이로 파묻었다. 현의합장묘 옛터다. 그 밭은 지금 잡초만 무성하다. 55년이 지난 뒤에 그날의 억울함을 토로할 수 있게 되자 유족들은 산 중턱에 터를 마련하고 옛터의 유해를 발굴하여 합장묘에 안장하였다. 산담을 두른 묘역에 세 개의 봉분과 위령비가 있다. 위령탑 앞에서 절을 올렸다. 전시관 옆에 누렁 진돗개가 줄에 매여 있다. 묘역 내에서 점심으로 삶은 달걀과 빵을 먹다가 개 생각이 나서 빵을 뚝 잘라 던져 주었다. 시골 개들은 빵이나 과자를 주면 정신없이 먹어대는데, 원혼들을 지키는 개라서 그런가, 이 개는 빵을 쳐다보지도 않고 앉아서 의연하게 봉분이 있는 앞만 바라보고 있다.
이어 제주 남서쪽 안덕 <동광마을 4.3길>로 발길을 옮겼다. 200여 호가 살던 동광마을도 토벌대의 초토화 작전을 피할 수 없었다. 정방폭포도 살육의 현장 중 하나였다. 도로 근처 우거진 수풀 속에 임문숙 일가 헛묘 7기가 있다. 시신도 없이 봉분만 세운 것이다. 정방폭포에서 학살된 시신은 바다로 떠내려갔고, 시신을 찾지 못한 유족은 이곳에 헛묘를 세웠다.
동광리 최초 학살터인 무등이왓마을을 찾아갔다. 백삼십여 호에 달하는 큰 마을이었는데 모든 것이 불타 사라진 체 오늘에 이른다. <잠복학살터>, 토벌대는 전날 근방에서 양민들을 학살한 후 가족들이 시신을 수습하러 올 것으로 예상하고 길가에 잠복한다. 이들은 지나던 일가족 십여 명을 붙잡아 짚더미와 멍석을 덮어 그대로 불을 질러 태워 죽였다. 울부짖으며 죽어간 이들은 노인과 부녀자, 아이들이었다. 안내 표지판에 적힌 이 내용을 믿어야 하나, 무더위에 가슴이 더욱 조여 왔다.
이 밭에서 군인들은 주민 80여명을 집단 학살하였다
이곳에서 아무렇게나 매장된 시신들은 오심여 년동안 뒤석여 방치되었다
토벌대는 이 고개에서 여성 노인 아이들 10여 명을 짚더니와 멍석을 덮고 불을 붙여 태워죽였다. 그렇게 했어야 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