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둑한 병원 검사실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중이다. 커튼 안 초음파실에서 중년 남자의 신음이 들린다. 검사를 마치고 나오며 남자는 목 가운데를 알코올 솜으로 막고 있다. 기다리는 동안 마음이 영 편치 않았는데 이 모습을 보니 온몸이 오그라드는 듯하다.
종합검진에서 갑상선 결절이 발견되었다. 세침 검사가 필요했다. ‘내 목에 주삿바늘을 찌른다고? 주사 공포가 심한데 그것도 목에다…’. 검사실 침대에 누워서 눈을 감고 두 손을 꽉 쥐었다. 목에 따끔한 통증이 느껴졌다. 내 사업장과 고객 얼굴을 떠올렸다. 목의 피부를 뚫고 들어온 침이 몇 번 찔러댔지만, 뭔가가 목을 둔탁하게 툭툭 건드리는 느낌뿐이었다. 끝내고 나오자 얼굴이 창백해지며 속이 메스껍고 어지러웠다. 의자에 앉아 눈을 감았다. 목 가운데를 누르고 있던 알코올 솜을 버리고 목을 만져 봤다. 목에 바늘 한 번 찔렸다고 이토록 무서울까.
아마도 목을 찔린다는 무의식이 나의 의식을 선점한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나를 살리고자 찌른 검사인데, 그보다 내 목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였다.
맹수도 사냥할 때 본능적으로 사냥감의 목을 문다. 팔다리야 찔리거나 잘려도 죽지 않지만 목은 목숨이 오가는 길목이다. 인질극 범인은 흉기를 인질의 목에 들이댄다. 목에 대한 위협은 본능적 두려움이다.
살면서 언제 뭐가 두려울까? 직장인에게는 목이 잘릴지 모를 때이다. 혼자 산다면야 다르지만 처자식이 있는 가장에게 밥벌이는 식구들의 명줄이다. 이게 떨어져 나갈지 모르는 상황이 되면 가장 큰 두려움을 느낀다. 등에서 솟아 나온 땀이 등허리 가운데 홈으로 모여 아래로 흐를 때 느끼는 공포감이 그것이다.
나 역시 오랜 세월 직장 생활하며 여러 번 공포를 느꼈다. 마케팅 책임자로 근무할 때였다. 신제품 출시 후 한동안 매출 순항 중, 공장의 설비 개선으로 1년 치 물량을 확보해야 했고, 담당 브랜드 매니저가 작성한 생산계획 보고를 받고 내가 서류에 최종 사인을 했다. 얼마 후 여러 문제가 겹쳐 매출이 떨어졌다. 이미 입고한 재고 물량에 비상이 걸렸다. 과다 물량에 대한 책임은 내가 져야 했다. 사장에게 보고할 때 등에서 땀이 줄줄 흘렀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나도 곤경에 처하며 아내와 자식들 얼굴부터 떠올랐다. 물려받은 재산도 없고 가진 것 없는 집안의 가장으로서 어떻게 하든 매달려 있어야만 했다. 무조건 머리를 조아렸다. 등과 겨드랑이에서는 계속 땀이 솟아 속옷을 적시고 와이셔츠에까지 배고 있었다.
모 이익단체에서 회사에 찬조를 요청하였다. 실무 책임자였던 나는 그 단체장과 최소한의 금액만 지원하기로 담판을 지었다. 그러나 나의 상사는 그 단체와 공조하여 매출을 올리고, 그 대신 원래 요구하던 금액을 모두 지원하라고 지시했다. 이 방안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였으나 상사는 자신의 아이디어에 도취 되었는지, 도리어 나를 책망하였다. 돈만 날릴 게 뻔했다. 이미 벌어진 일, 최대한 성과를 내고자 뛰었으나 결과는 내 예상대로 참패였다. 그 금액이면 매출을 더 올려 직원들 성과급이라도 더 줄 수 있었을 것이다.
결과에 대해 상사는 실무 책임자였던 나를 총알받이로 삼았다. 상사의 호출이 있었다. 같은 층에서 대각선으로 바라보이는 위치이지만, 내 방과 상사의 방 사이에는 다리도 없는 계곡이 놓여 있었다. 정확한 경위를 최고경영자에게 보고할 수 없었다. 그 전에 내가 당하기 때문이었다. 인사권자인 그는 다른 건을 걸어 내 목을 칠 수도 있다. 내 식구들과 밥은 먹어야 했기에 이 건은 내 책임으로 돌렸다.
인사권자인 상사의 부당한 꾸지람 앞에서 논리적 항변은 물론 기분 상한 표정도 짓지 못하고, 두 손 모아 공손히 “예, 예”한 적이 어디 한두 번인가. 심지어 꾸지람이 끝나갈 때쯤 “잘 알겠습니다”라며 상사의 분위기를 살펴 비굴한 웃음을 짓기도 했다. 목이 달아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볼 일이 있어 새벽에 덕수궁 정문 근처를 지날 때였다. 돌담 벽에 걸린 현수막 아래 여러 물체가 있어 다가가 보니 침낭 속에서 사람들이 자고 있었다. 고등법원에서 무효판결을 내린 쌍용차 정리해고 노동자들이었다. 사람이 죽어 나가면서도 해고 노동자들이 오랫동안 외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밑바탕에는 식구들이 굶주릴까 두렵고, 식구들 입에 들어갈 밥을 지키려 한 때문이지 싶다. 십 년, 이십 년을 회사 울타리 안에서만 일하다 약육강식의 정글에 내동댕이쳐지는 것은 애완견이 깊은 산속에 내 버려지는 것과 같다.
목 잘릴 두려움은 직장에서만 느낄까? 회사 그만두고 자영업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상대적 약자인 개인 사업자에게 매상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개인 몫이다. 잘못되면 개인의 노력 부족 때문이란다. 정말 그럴까.
나도 월말 결산을 하며 매상이 줄고 지출이 늘 때면 가슴이 답답했다. 이 답답함이 한 해 다르게 늘고 있었다. 건물주가 혹시 임대계약을 해지하지는 않을지, 임대료는 얼마나 인상할지, 계약 일자가 다가오면 두려움이 고개를 들었다. 그럭저럭 장사하던 가게를 비우라는 건물주의 명에 권리금과 시설비도 제대로 건지지 못하고 길거리에 나앉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다. 나나 아내나 건물주에게 밉보이지 않아야겠기에 건물주는 물론 심지어 건물 관리인을 만나도 억지웃음을 짓곤 했다. 내 목을 쥐고 있는 ‘분’들이기 때문이었다.
장사하는 친구의 건물주가 바뀌면서 임대료가 두 배로 뛰었단다. 항의하니 나가란다. 권리금 주고 장사하던 가게를 비우라 하면 뭘 해서 먹고 살아야 하나, 이 또한 가족 생존에 대한 두려움이다. 여러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용산참사, 그 밑바탕에도 역시 삶의 목이 잘릴 두려움이 있었을 게다.
딸 아들 모두 짝지어 보내고 나니 홀가분해졌다. 건물주가 나가라 해도 크게 두렵지 않다. 이래서 남은 생이 짧아지는 게 좋을 때도 있다. 그런데 백세 시대에 노년에 뭐 해서 먹고 살지? 또다시 두려움이 고개를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