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프랑스 음악 - 세나이에 & 르클레어
바로크 클래식 음반 소개
음반명: 세대 (Generations)
- 장 마리 르클레어: 소나타 Op.3-5, Op.1-5, Op.2-2
- 장-밥티스트 세나이에: 소나타 Op.4-5, Op.1-6, Op.3-10, Op.1-5
연주자: 테오팀 랑글로와 드 스바르트(바이올린), 윌리엄 크리스티(하프시코드)
레이블: 아르모니아 문디(harmonia mundi)
이 음반에서 하프시코드를 연주한 윌리엄 크리스티(1944~ )는 '레 자르 플로리상(les arts florissants)'이라는 오케스트라를 창단해 고음악 레퍼토리 연주와 연구, 발굴에 전념한 뛰어난 지휘자이다. 테오팀 랑글로아 드 스바르트라는 긴 이름을 가진 프랑스의 청년 바이올리니스트는 크리스티의 악단에서 연주하며 독주자로도 활동하고 있는 신예 연주가이다. 바로크 음악의 거장과 젊은 예술가가 만났으니 음반 제목이 '세대'가 된 것일까? 윌리엄 크리스티는 미국 태생이지만 프랑스에 귀화한 학식 풍부한 예술가로 하버드와 예일에서 예술사와 하프시코드 연주를 공부하고, 1970년 프랑스로 건너와 음악 활동을 이어갔다. 음악학자이자 지휘자, 연주자로서 고음악 레퍼토리를 연구하고 그것을 역사적으로 고증해 연주하는 원전연주 방식을 발전시켰다. 라모, 륄리, 샤르팡티에 등 프랑스 바로크 레퍼토리에 특히 애정을 많이 기울였지만 프랑스 외에도 유럽 고음악 전반이 그의 지적 관심 분야라 할 수 있다. 드 스바르트는 내가 <Mad Lover>라는 음반을 리뷰하는 지난 글을 통해 소개한 적이 있는데 섬세하고 절제된 프랑스 바이올린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연주자다.
이 음반에서 다루는 프랑스 작곡가는 장-밥티스트 세나이에(1697-1764)와 장-마리 르클레어(1697-1730)이다. 둘 다 1697년 같은 해에 프랑스에서 태어나 같은 시대 바이올린 연주자로 활동하며 명성을 날렸다. 18세기 당시 프랑스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이탈리아의 거장 코렐리가 확립한 느리게-빠르게-느리게-빠르게의 4개 악장 구성을 기본으로 받아들였고, 악장의 성격에 따라 가보트, 미뉴엣 등 당대의 프랑스 춤곡을 믹스했다. 또한 화려한 장식음과 절제되고 세련된 연주방식, 채색된 음향과 장식음 기교를 통해 파스텔톤을 연상시키는 로코코 흥취가 특징이다. 세나이에와 르클레어는 이런 형식을 프랑스 소나타 양식의 기본으로 자리 매김했다. 이 음반에서 이 두 작곡가를 매칭한 것도 프랑스 소나타 양식을 완성한 두 명의 음악인이라는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이 둘은 모두 이탈리아에서 음악을 공부한 경험이 있고, 이탈리아 양식에 충실하되 기품있는 절제와 감성을 얹어 프랑스적 우미함으로 당대의 명성을 얻었다. 18세기 프랑스 문화를 관통했던 '페트 샹페트르(fête galante)' 즉, 전원에서 펼쳐지는 우아한 연회라는 귀족들의 목가적 감성을 음악으로 재현한다면 단연 르클레어와 세나이에의 소나타가 제격이다.
르클레어의 바이올린 음악만 들어보아도 이것이 프랑스 학파(!)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그 개성이 향기롭고 뚜렷하다. 르클레어는 루이 15세의 궁정음악가로 활동하며 18세기 프랑스 음악계를 주름잡던 음악가로 피에트로 안토니오 로카텔리 등의 이탈리아 선진 음악양식을 수용하되 단연 프랑스적인 감성으로 프랑스 바이올린 음악을 독자적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이 작품 하나만 두고 보더라도 르클레어의 선율 감각은 단연 독보적이라 평가할수 있으며 사치스럽고 달콤한 로코코 감성의 아름다움을 잘 구현하고 있다. 이 음반에는 르클레어의 소나타 3곡이 실렸는데, 그 중 1곡은 가보트 악장만 발췌해 실었다. 이 가보트 곡이 음반의 첫 트랙을 열며 음반 전체에 걸친 분위기 '안단테 그라지오소(andante grazioso)' 즉, '보통 걸음걸이로 우아하게'가 어떤 분위기인지 잘 알려주고 있는데 그 우아함을 그리는 연주자의 감성이 매우 고풍스럽다.
세나이에는 프랑스 최초로 소나타 양식을 창작했고 역시 1713년 이탈리아 모데나로 가 <샤콘느>로 유명한 토마소 비탈리를 사사하고, 파리로 돌아와 바이올린 연주로 명성을 떨쳤다. 50곡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남겼으며, 르클레어와 마찬가지로 이탈리아 양식을 바탕으로 한 프랑스 소나타 양식을 완성했다. 그의 <소나타 op. 4-no.5> 에서 보듯이 세나이에의 스타일은 르클레어의 스타일보다 좀 더 드라마틱하고 강한 감정이 담겨있어 이탈리아 스타일과 좀 더 가깝지만 춤곡의 리듬을 활용하며 애닮은 감성을 수채화처럼 엷게 그려내는 기술은 또 매우 프랑스적이다. 이 음반에는 모두 세나이에가 작곡한 3곡의 소나타가 실렸는데 세나이에 음악의 특징을 한 마디로 정리해보라고 한다면 격정과 애상의 교차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다면 과연 프랑스적 감성이란게 무엇일까? 클래식 음악, 그중에서도 특히 고음악에 관한 글을 읽다보면 이 용어가 자주 등장하지만 속시원히 풀이해주는 글은 본적이 없다. 최소한 세나이에와 르클레어의 바이올린 소나타에 준해서 설명해 보자면 다음과 같이 구분해 볼 수 있다. 대략 16-18세기 이탈리아 양식은 단조를 비극적으로 잘 활용하며, 빠른 속도를 이용해 긴박하고 드라마틱한 감정도 훌륭하게 묘사한다. 비발디의 빠른 템포와 비탈리의 비통한 선율을 떠올려 보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남유럽의 기질 그대로이다. 그리고 비극과 희극, 빠름과 느림을 적절하게 섞어 소나타 한 곡에서 인생의 희노애락을 맛볼 수 있도록 음악형식을 완성했다.
비슷한 시기 프랑스 음악은 이탈리아 소나타 양식을 수입하되 프랑스인들만의 특성에 녹여냈다. 무엇보다도 감정적 절제에서 오는 세련됨, 비통하되 울지 않고, 기쁘되 환호하지 않는, 강렬하되 그 한계가 분명히 있고, 느긋하되 힘을 잃지 않는 그 중용의 아름다움이 화려한 장식음을 통해 향수처럼 흩뿌려질때 우리는 그것을 프랑스 감성의 음악이라고 말한다. 거기다가 나는 위에 첨부한 18세기 프랑스 화가 장-밥티스트 우드리의 정물화처럼 파스텔톤의 꽃향기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싶다.
이런 관점에서 프랑스 바이올리니스트 드 스바르트의 절제되고 기품넘치는 연주는 매우 압도적이며 르클레어와 세나이에의 음악과 잘 어울린다. 과거 이름을 날렸던 자크 티보, 아르투르 그뤼미오, 지노 프란체스카티, 지네트 느뵈로 부터 면면히 이어지는 프랑스 바이올린 악파의 우아한 감성이 드 스바르트의 연주 속에 고스란히 살아있다. 애절한 감성을 어둡게 파고들거나, 이탈리아 스타일의 활기를 내보이면서도 유려하게 흘려가는 고고한 멜로디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고, 차가우면서 깨끗한 바이얼린 톤, 선율을 꾸미는 화려한 장식음 처리 등 음반을 듣고 있으면 프랑스 대저택의 거실 한켠에 앉아있는 듯 하다. 실제로 이 음반은 윌리엄 크리스티 자택에서 녹음되었다고 한다. 고요하게 메아리치는 프랑스적 서정이 더 없이 아름답게 살아있는 연주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omepRsrRMw4
두 연주자의 연주 장면
https://www.youtube.com/watch?v=Z29LcPr0rFw
인터뷰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