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자: 파올로 판돌포 (비오라 다 감바), 아멜리 슈멩(비올라 다 감바), 안드레아 부카렐라(포르테 피아노, 하프시코드), 토마스 보이센 (류트)
레이블: 글로싸 (Glossa)
오래 전에 비올라 다 감바라는 악기가 있었다. 현대 첼로가 등장하기 전 첼로의 조상격이 되는 악기로 비올 부류에 속하는 악기다. 과거에는 음역에 따라 여러 종류의 비올이 있었는데 낭만주의 시대 이후 오케스트라가 발달하고 음량이 큰 악기들이 요구됨에 따라 점차 인기를 잃고 그 자리를 현대 첼로에게 넘겨주었다. 하지만 고음악, 고악기 부활 운동이 있던 20세기 중반 여타 고악기들과 함께 비올도 다시금 주목받으면 여전히 고음악 연주의 필수 요소로 활발하게 연주되고 있다.
비올 중에서도 비올라 다 감바는 16~18세기 음악에서 저음역을 담당하던 악기로 첼로 정도의 크기에 다리 사이에 끼고 연주했다. 감바는 '다리'를 뜻하는 말인데 그 시기에 바로크 첼로라는 악기가 별도로 있었으니 첼로와는 또 다른 악기였다. 비올라 다 감바의 음색은 첼로와 유사하지만 그 보다 음량이 작고 현의 떨림이 적은 샤프한 소리를 내 실내악 연주에 알맞다. 고즈넉한 울림의 잔향이 좋으며 차분하고 명상적인 소리가 특징이다. 프랑스의 마랭 마레, 생트 콜롱브, 포크레이, 독일의 바흐, 텔레만 등 비올라 다 감바를 위한 곡들은 주로 바로크 시대에 걸쳐 많이 작곡되었으며 작은 규모의 실내악 연주에 많이 애용되었다. 우리에게는 프랑스 영화 <세상의 모든 아침>으로도 잘 알려진 악기이다. 비올라 다 감바는 독주악기로서 뛰어난 매력을 가지고 있어 아담하고 소박한 음악의 정취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는 악기였다. 특히 저음의 매력이 침잠하듯이 울리는 명상적인 곡에서 비올라 다 감바의 매력이 최대한으로 발휘된다. 이러한 악기의 매력을 가장 풍부하게 담아낸 작품이 지금 소개하는 칼 프리드리히 아벨의 <비올라 다 감바 소나타>이다.
비올라 다 감바를 연주하는 아벨. 게인즈버러 작품이다.
독일의 음악가 칼 프리드리히 아벨(1723~1787)은 비올라 다 감바 연주의 명인이었고, 요한 세바스찬 바흐에게 음악을 배웠다. 이 음반은 비올라 다 감바를 다루는 아벨의 뛰어난 감성이 집약된 음반으로 비올라 다 감바가 주선율을 연주하고 베이스 반주로 류트, 하프시코드, 바로크 첼로 등이 따라 붙는다. 아벨은 풍부하고 밝은감성의 음악을 들려주어서 노력하며 애써 들어야하는 여느 바로크 음악보다 감상이 훨씬 쉽다. 나는 아벨의 곡을 들을 때마다 반복적으로 그런 인상을 받았는데, 그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보면 일단 악상이 자유롭고 그것을 표현하는 악기의 표정이 살아있으며 선율이 노래하듯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이는 비단 나만의 의견이 아니었던 것 같다. 아벨이 런던에서 활동할 시 그의 초상화를 그렸던 화가 토마스 게인즈버러는 `아벨은 연주하는 악기에 충만한 감정을 싣는다`고 칭송했다. 아벨이 감상적 악상을 다루는 솜씨를 빗대어 이 음반 제목도 <감상적 여행-비올라 다 감바 소나타>라는 로맨틱한 제목을 얻은것 같다.
그의 곡들이 여느 바로크 작곡가들의 곡보다 대중적이고 듣기 편한 이유는 아마도 시기적으로 아벨이 활동하던 때가 바로크 시대의 끝과 고전주의 음악의 시작을 알리는 지점이어서 그렇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바로크 음악의 형식화된 특성을 넘어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낭만적인 선율과 로맨틱한 표현이 등장하는 아벨의 곡들은 다정다감하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비올라 다 감바의 까칠하게 현을 긁는 마찰음, 잔향에 풍기는 고아함에 아벨의 서정적인 선율선이 더해져 명상적이고 잔잔한 음악의 아름다움은 바로크 시대를 넘어서는 음악이라는 느낌을 준다. <시실리아노> 같은 곡이 그렇고, 각 소나타의 아다지오 느린 악장의 곡이 그렇다.
이 음반에서 비올라 다 감바를 연주한 이탈리아 출신의 연주자 파올로 판돌포는 비올라 다 감바 명인으로 비르투오적인 테크닉과 선율을 쉽게 풀어내는 솜씨로 르네상스, 바로크 레퍼토리에서 뛰어난 녹음을 다수 남겼다. 판돌포는 곡의 멜로디를 정확하게 짚어서 때로는 달콤하게, 때로는 비르투오적으로, 때로는 차분하게 악상에 깃든 감각을 명쾌하게 드러내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특히 아벨의 곡들은 반주 악기와 대화하듯이 노래를 주고받듯이 구성된 부분들이 많은데, 마치 말을 하듯이 프레이즈를 연결해 연주하는 판돌포의 기교는 속삭이는 듯한 아름다움이 있다. 판돌포의 연주 스타일은 풍부한 감성을 자랑하는 아벨의 작품과도 매우 잘 어울려 음반의 첫곡에서 부터 끝곡까지 쉬지 않고 듣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