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뮤지시앵 드 루브르(les musiciens du Louvre). 이 음반을 연주한 오케스트라의 멋스러운 이름이다. 번역하면 '루브르의 음악가들'이라는 뜻이다. 루브르 미술관이 한때 프랑스 왕궁으로 사용되었으니 프랑스 정통 음악, 프랑스 바로크 음악 연주의 권위있는 오케스트라의 의미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흥미롭게도 지휘자 마르크 민코프스키는 그의 나이 19세에 이 오케스트라를 조직했다. 그는 일반적인 지휘자 코스를 밟지 않고 야전에서 프랑스 바로크 레퍼토리를 지휘하다가 메이저 음반사에 데뷔하며 그 명성을 굳히게 된 독특한 이력의 지휘자이다. 지금은 프랑스 바로크 음악 해석의 권위자 중의 한 명으로 존경받고 있다. 이 독특한 지휘자의 최고 히트작이 지금 소개하는 라모의 음악을 담은 <상상의 교향곡>이다.
이 음반의 주인공인 장-필립 라모(1683-1764)는 루이 14세의 궁정악장이었던 장-밥티스트 륄리(1632~1687) 이후 프랑스 최고 작곡가로 여겨지며 오페라 <카스토르와 폴룩스>, <다르다뉘>, <이폴리트와 아리시에> 등 30여편의 오페라, 발레 음악을 남긴 대작곡가이자 베르사이유의 궁정악장이었다. 하지만 무대음악 이외 독립적인 관현악곡은 남긴 게 없고, 그 시대에는 오늘날 의미의 교향곡이라는 장르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음반의 제목은 <상상의 교향곡>이다. 왜일까?
라모의 오페라 <이폴리트와 아리시에> 공연 장면
지휘자 민코프스키는 재미있는 시도를 했는데 라모의 오페라나 발레음악에 나오는 관현악 파트를 선별해 하나의 교향곡처럼 엮고 '상상의 교향곡'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라모는 화성학에 관한 책 <화성론>을 쓸 정도로 음악이론에 정통했으며 대담하고 두터운 화음의 웅장한 효과, 불협화음의 위협적인 분위기, 흥겨운 춤곡의 리듬 등 까다롭고 극적인 관현악법을 구사했다. 그 대담함이 매우 현대적이고 아방가르드할 정도. 라모는 오케스트레이션에 해박했지만 독립적인 관현악곡은 남기지 않았고 오직 극음악을 통해서 그의 작법을 감상할 수 있을 뿐이었다. 만약 그의 작품 중 관현악 연주곡만 모아 연주한다면 라모의 진면목을 단숨에 감상할 수 있지 않을까? 아마도 민코프스키는 그런 기대를 가지고 '상상 속의 교향곡'을 구성한 것 같다. 물론 라모가 이런 형식의 교향곡을 의도하거나 작곡한 바는 없다. 하지만 민코프스키의 참신하고 놀라운 아이디어는 그 이전에 누구도 생각해 보지 못한 시도였고 그 결과물은 감상자를 프랑스 바로크 관현악의 세계로 단숨에 끌어들이는 마법같은 음반을 만들어 내며 평단의 만장일치 찬사를 이끌어냈다. 일종의 라모 종합선물 셋트 같은 음반이 탄생한 것이다.
라모의 음악을 현대적으로 포장한 민코프스키의 해석도 참신하다. 음반의 처음을 시작하는 오페라 <자이스>의 서곡은 저 멀리서 들려오는 웅장한 북소리로 문을 연다. <레 보레아드>의 '콩트르당스'는 현악기가 격렬하게 움직이고, <다르다뉘>의 '첫번째 탐부랭'의 빠른 템포와 조바꿈은 아슬아슬하며, <우아한 인도>에서 '야만인의 춤'은 흥겨운 리듬으로 가득 차 있다. 오페라 <플라테> 중 '폭풍'은 오케스트라 전체가 호랑이처럼 포효한다. 11번째 곡 <6중주 협주곡>은 오페라, 발레가 아닌 기악곡을 오케스트라로 편곡한 것인데, 웅장한 베이스음과 공격하듯이 불어대는 관악기의 박력이 대단하다. 민코프스키는 라모 음악의 큰 스케일을 더 극적으로 확장하고 마치 영화음악처럼 커다란 음영과 진폭으로 연주해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거의 400년 전의 음악이지만 연주회장에서 되살아난 라모의 오케스트레이션은 혁명적이고 광폭한 에너지는 매우 현대적이다. 마치 변화무쌍한 영화 사운드트랙을 듣는 듯한 기분도 든다.
하지만 화려하기만 하면 프랑스 오페라 아니다. 서정비극이어야 프랑스 오페라다. 륄리 이후 프랑스 오페라는 서정비극의 전통을 확립했다. 넘쳐흐르는 선율과 화성 속에서 숨어 찰랑거리는 창백한 온도, 우울한 감성이 뒤를 돌아보게 하는 선율. 오페라 <레 보레아드>의 '폴림니의 입구'는 피아노로도 자주 연주되는 차분한 곡이며 주선율이 한없이 녹아내리며 적적함으로 마음을 가득 채운다. 라모의 오페라는 매우 요란하고 뜨겁지만 오케스트라 음향은 굉장히 가늘고 차갑다. 현악기의 떨림을 억제하고 잔향을 적게해 현 소리 그대로를 건조하게 내기 때문이다. 또한 악절을 레가토로 길게 이어가기 보다는 끊어서 리듬감있게 친다. 하프시코드의 반주도 물론 차가운 소리다. 노래하는 이가 소프라노라면 그 소리의 온도감은 더 차가워 진다. 그 소프라노가 떨림이 없는 맑은 소리를 내면 더 차갑게 느껴진다. 그 노래 속에 서정적인 감정이 배어있다면 프랑스 바로크 성악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살려낸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프랑스 오페라의 백미는 이 차가운 소리와 결합된 격렬한 오케스트라이다. 루브르의 음악가들은 그 점을 탁월하게 재현해냈다.
이 음반에는 실리지 앉았지만 라모의 오페라 <카스토르와 폴룩스> 중 '준비된 슬픔이여, 창백한 불꽃이여'의 쓸쓸한 아리아를 듣고 있으면 거대한 우주 속에서 애처롭게 노래하는 외로운 새 한마리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 새가 아리아의 제목 그대로 '창백한 불꽃'이 되어 라모의 음악 속에서 타오르는 듯 하다. 참 불꽃 같으면서도 얼음같은 음악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