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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텐 Sep 24. 2021

사랑의 오르페우스- 영국의 옛 노래

16~17세기 잉글랜드의 노래


바로크 클래식 음반 소개 


음반명: 잉글랜드의 오르페우스

연주자: 엠마 커크비 (소프라노), 야콥 린드베리 (류트)

레이블: 비스 (BIS)



영국의 민요는 서민들의 정서가 담긴 노래지만 상류 문화인 클래식 음악에도 영향을 주었고, 민요를 바탕으로 한 예술가곡도 여럿 창작되었다.  소박하고 로맨틱한 정서는 현대에 와서도 싱어송라이터들이 포크 음악으로 변환해 부르거나 또 여러 나라로 퍼져 번악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우리만 해도 어릴 때 불렀던 노래 중에 영국 민요 1-2개(올드랭 사인 등)는 충분히 찾아낼 수 있다. 그만큼 영국이라는 나라는 민요적 자산이 풍부한 나라이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웨일즈 모두 각자의 노래를 가지고 있기에 그 음악적 자산은 더 풍요롭고 다양한데 음반 <잉글랜드의 오르페우스>는 16-17세기 영국의 노래가 가진 예술적 풍부함에 대한 음반이다.


영국의 헨리 퍼셀(1659-1695), 존 다울런드(1563-1626)의 노래를 영국의 소프라노 엠마 커크비(1949~  )가 불렀다. 퍼셀, 다울런드, 커크비. 음반 제목 그대로 '잉글랜드의 오르페우스' 3명이 주역이며, 스웨덴의 류트 연주자 야콥 린드베리가 고악기인 류트 반주를 맡았다. 다울런드는 아일랜드인지 런던인지 출신지가 불명확하지만 1612년 이후 잉글랜드 왕실의 류트 연주자로 활동하며 수많은 노래를 남겨 예술 가곡의 선구자가 되었고, 류트 반주의 노래를 많이 남겨 리라를 켜며 노래하던 오르페우스의 이미지와도 오버랩되는 음악가다. 헨리 퍼셀은 영국 바로크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로 프랑스, 이탈리아에 비해 이렇다 할 음악가가 없었던 그 당시 영국에서 가장 빛나는 작곡가였다. 영국의 바로크 음악을 독창적으로 완성시켜 '영국의 오르페우스'라고 불리기도 했다. 우리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소프라노 엠마 커크비는 고음악 분야에 큰 업적을 남긴 소프라노로 그녀의 청아한 음성은 '오르페우스' 그 자체이다. 

 

16-18세기 유럽에서 유행한 악기 류트. 기타와 유사한 음색을 지녔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음유시인 오르페우스가 리라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면 나무와 동물들까지 감동시켰다고 한다. 음반의 표지를 보면 오르페우스의 노래를 사슴이 곁에서 듣고 있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는데 아마도 옛 필사본이나 기록 등에서 찾은 삽화처럼 보인다. 커크비를 오르페우스에 비교할 수 있을까? 그도 그럴 것이 커크비의 청량한 목소리는 시원한 물과 같아서 한번 들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강한 인상을 남긴다. 맑고 투명한 목소리로 한 시대를 풍미한 커크비는 종교음악을 비롯한 바로크 성악곡을 탁월하게 소화했고, 떨림이 전혀 없는 크리스털처럼 단단하고 해상도 높은 눈부신 음색으로 천상의 노래를 가장 잘 재현한 가수라 평가 받는다. 


영국 가곡의 황금기를 연 존 다울런드는 엘리자베스 1세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가로 류트를 반주삼아 부르는 세속적인 노래인 에어(Ayre)를 많이 남겼다. 그의 에어는 서정적이면서도 어딘가 센티멘털한 감성을 담고 있는데 영국의 노래를 대표하는 음악으로 자리 잡았다.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풍습을 그리거나 애조 띤 선율로 사랑의 아픔을 혹은 짝사랑하는 마음을 그리는 소박하고 로맨틱한 감정을 노래에 담았다. 다울런드는 1597년 류트 반주가 붙은 노래집 <Book of Songs  I(1597)> 을 첫 출판했고, 이후 <Book of Songs II(1600)> 와 <The Third and Last Book of Songs III(1603)>의 노래집, <A Pilgrim Solace>(1612)까지 총 4권의 노래집을 냈다. 소개하는 <잉글랜드의 오르페우스> 음반에는 이 네 권의 노래집에서 선별한 노래와 류트 솔로곡을 담았다.


나는 다울런드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서양음악사의 전형적인 흐름, 그 큰 강물길에서 벗어난 독창적인 지류, 작은 시냇물과 같은 음악이라는 생각이 든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주류 가창 양식과 다른 에어를 만든 영국은 음악 뿐만 아니라 미술 역시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들이나 북유럽의 거장들의 작품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엘리자베스 1세의 초상화가 니콜라스 힐리야드(1547-1619)의 세련되고 장식적인 세밀화 <구애자>를 보면 그 시기 잉글랜드의 문화적 분위기를 알 수 있다. 우아하게 차려입고 나무에 기대서 있는 댄디한 청년은 막 사랑을 속삭일 듯한 우아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장미꽃과 함께 서 있어 더 달콤한 연인의 향기가 나는듯 하다. 단단한 데생, 입체적 채색의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도 아니고, 세밀한 묘사를 강조한 북유럽의 사실적인 그림이 아니라 장식적인 표현과 우아한 선을 매력적으로 사용한 세밀화로 17세기 영국에서 유행한 미니어쳐 포트레이트 장르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이런 초상화는 선물이나 구애의 마음을 전달할때 사용되곤 했다. 


힐리야드,  <구애자>,  1590년경   


이 그림에는 '고귀한 사랑이 괴로움을 가져온다'는 라틴어 문구가 적혀있는데, 다울런드의 많은 노래들이 센티멘털한 사랑의 감정을 다루었듯이 16세기 잉글랜드에서 연애는 문학, 미술, 음악의 유행하는 소재였던 것 같다.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49>의 한 구절도 다음과 같이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여, 계속 날 미워해도 좋다, 이제 당신 마음 알았으니

당신은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는 자를 사랑하는구나, 나처럼 사랑에 눈먼 자가 아니라

 


다울런드의 수많은 노래들의 가사들을 일일이 소개하기엔 지면이 부족하지만 대표적인 노래 제목을 보면 <다시 내게 오세요, 사랑이여>,  <그녀가 나를 용서해 줄까>, <나의 여인이 우는 것을 보았네>, <내 슬픔에 귀 기울여줘요> 등 서민적인 사랑의 감정을 다루고 있다. 대부분 노래들이 위의 셰익스피어 소네트와 같은 연애, 힐리야드의 그림과 같은 로맨틱한 정취를 담고 있다. 아마도 그것이 16-17세기 잉글랜드인들의  취향이었던 것 같다. 그런 대중적 감수성에 주목해 팝가수 스팅도 자신의 창법으로 다울런드의 노래를 부른 음반을 내기도 했는데, 다울런드의 감수성이 비단 옛 시대의 감성 코드만이 아니라 21세기에도 보편적인 사랑의 감정을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오르간 연주자였던 헨리 퍼셀(1659-1695)은 오페라와 성악에서 뛰어난 성취를 보여준 오르페우스였다. 퍼셀의 노래는 마치 연극을 하는 것 처럼 말하듯 구사하는 영어가 아름다우며, 영어를 음악적으로 가장 완성도 높게 사용한 작곡가였다. 또한 오페라 <디도와 아이네아스>처럼 드라마틱하고 깊은 감정을 드러내는 노래로 많은 인기를 얻었는데, 언어와 음악을 완전하게 구사할 수 있었던 퍼셀은 영국의 오페라 양식을 완성한 대가로 평가받고 있다. 음반에 실린 노래에서 그 아름다움을 찾아볼 수 있다. <Fly swift, ye hours, Z.369>의 절규하듯 외치는 노래는 마치 무대 위에서 과장된 몸짓의 연기를 하는 배우를 보는 듯하다. 그의 유명 오페라인 <인도의 여왕>의 아리아를 소프라노와 류트 연주로 편곡한 곡은 고아한 류트 반주에 얹힌 감정적인 아리아가 참 멋스럽다. 류트는 주로 고음악 연주에만 사용되는 옛악기이지만 기타와 유사한 소리, 담백한 음색이 매력적이며 '가이야르 gaillard' 같은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춤곡을 연주할 때는 통통 튀는 현의 리듬이 매우 찰지게 들린다. 현대의 기타리스트들이 류트곡을 종종 연주하기도 한다.  


퍼셀의 오페라 <디도와 아이네아스> 한 장면


퍼셀 역시 20세기의 본 윌리엄스나 벤저민 브리튼과 같은 영국의 작곡가들이 했듯이, 영국 전역의 민요에 세밀한 관심을 보였고 지역의 토착적 감수성을 창의적으로 활용했다. <Old Batchelor>의 민요조 감성, 그리고 두 곡의 아일랜드 & 스코틀랜드 스타일의 음악까지, 오페라에서 민요까지 아우르는 퍼셀의 음악적 관심이 흥미롭다. 음반의 마지막 곡, 근심을 달래고 위안을 바라는 <오이디푸스, 테베의 왕>의 구슬픈 노래는 오이디푸스의 고통을 통해 우리에게 되려 안식을 주는 조용하지만 내적 격렬함으로 가득 찬 노래다. 퍼셀의 위대함은 이런 드라마틱한 노래에서 발휘된다.


마지막으로 이 음반의 스웨덴의 한 교회에서 녹음되었다. 교회의 궁륭 사이로 울려 퍼지는 커크비의 목소리 끝에 약간의 잔향과 에코가 있고, 류트 반주는 교회 홀 속에서 크게 울리며 명확하게 들린다. 높고 텅 빈 교회 공간의 덩어리감이 소리에서 그대로 전해져 마치 현장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 한 뛰어난 녹음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GzYUrHkcL6Y

퍼셀의 곡을 연주하는 엠마 커크비와 야콥 린드베리 


https://www.youtube.com/watch?v=_WxxNZYn138

엠마 커크비와 야콥 린드베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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