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처럼
어린 시절, 지금처럼 책이 많지도 않았을 때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는 왜 이리 재미있던지!
할머니 곁에 누워서 듣던 옛날이야기와 성경 이야기가 왜 그리도 쏙쏙 들어왔을까? 그때는 잘 몰랐다. 그냥 읽을거리도 볼거리도 없던 시절이라 그랬겠지.. 했는데.
그 이유를 알게 된 건 내가 어른이 되고 엄마가 된 후 우연히.
일본에서 살 때 오사카 나니와구 도서관에서 책 읽어주기 자원봉사를 할 때였다. 자원봉사자 중 은퇴하신 할머니 자원봉사자가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여유롭게 천천히 읽어주셨다. 한편 나는 빨리 아이들에게 다음 장면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했다. 은퇴하신 할머니의 속도가 느려서 아이들이 이야기를 지루해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오히려 아이들이 몰입하면서 잘 듣고 있는 모습을 보고 놀라고 '뭐지'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나도 아이들이 잘 듣도록 조금 속도를 늦추어 보려고 했지만 맘대로 되지 않았다.
도서관 자원봉사 리더에게 "나는 왜 자꾸 빨리 읽게 될까요?"하고 리더에게 물었다. 리더는 답을 안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은퇴하신 분들은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생활 자체가 여유롭다 보니 책을 읽을 때도 느긋하게 읽어주세요."
그러면서 자신의 올케 이야기를 꺼냈다. 올케가 시집올 때는 무척 느리게 행동하는 사람이었는데, 직장생활, 가정생활, 출산 후 육아까지 하면서 삶의 템포가 빠르게 변했다고 한다.
"사람의 생활 패턴에 따라 성격이나 행동이 변하는 것 같아요. 李さん이 지금 한창 아이 셋을 키우고 있으니 식사, 청소, 아이들 돌봄 등 계속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잖아요? 그러다 보니 책도 빠르게 읽게 되는 거예요."
'なるほど(그렇구나).' 너무나도 이해가 쏙 되는 설명이었다.
이 이치를 요즘 나는 다시 체험하고 있다. 나는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딸들이 중고생일 때, 뭔가 급했다. 가르치는 학생들이 영어를 잘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약간은 엄하게 지도했던 것 같다. 못하면 무섭게 야단도 쳤다. 말도 빨랐다. 실력을 키운다는 미명하에 학생들을 다그친 것은 아닌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우리 딸들이 영어를 잘했으면 하는 감정이입이 되었던 걸까.
그런데 딸들이 모두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가 변했다. 조금은 너그러워졌다는 것을 나 스스로도 느낀다. 물론 학생들의 실력을 키우는 것을 뒷전으로 했다는 뜻은 아니다. 직접적인 육아가 끝나다 보니 내 생활에 여유가 생겼고, 나도 조금은 느긋하게 주위를 볼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일본 도서관의 자원봉사자 할머니의 템포가 떠올랐다.
할머니의 템포만큼은 아니지만, 빠르게 움직여야 했던 시절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학생의 불안한 눈빛, 작은 성취, 느린 성장. 급하게 다그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다.
할머니는 알고 계셨겠지. 나보다 먼저 그 길을 걸으셨으니, 느긋함이란 게으름이 아니라 삶이 주는 선물이라는 것을. 시간이 쌓여 얻게 되는 여유라는 것을. 나도 언젠가 손주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게 된다면, 할머니의 그 템포로 들려줄 수 있겠지. 올 때까지 기다리며, 천천히, 느긋하게, 아이들이 마음껏 상상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