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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판도 Jul 13. 2024

식당의 탄생

43. 귀인들

  오늘의 마스터낙지가 있기까지 여러 방면에서 도움을 주셨던 은혜로운 스승들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잠시 콧수염의 안부를 전하자면,

녀석의 넉살머리에 말문이 막혀 버렸습니다. 어쩜 저 같은 인간보다 월등히 더 사회생활을 잘하는지...

  며칠 전 브레이크 타임에 우연히 마주친 녀석의 모습은 정말 놀랍기 그지없었습니다. 녀석은 고양이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사람도 아니지요. 그럼 대체 놈의 정체는 뭘까요? 그렇습니다. 녀석은 바로 요물이었습니다. 덜 떨어진 인간을 가지고 노는 요망스러운 짐승말이죠.


  콧수염은 저희 마스터낙지의 바로 길건너편에 있는 고깃집 입구에 발라당 누워 있었습니다. 누가 보면 그 집에서 10년도 넘게 키운 개냥이로 보일 정도로 말입니다(엊그제까지만 해도 녀석은 분명히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순도 백퍼의 길냥이였음에 틀림없습니다). 길 가던 사람들이 너도 나도 휴대폰을 꺼내어 사진을 찍는 광경이라니. 정말 대단한 놈입니다(녀석을 꼬셔 마스코트로 만든 고깃집의 조련사도 대단한 분입니다).


  한편 고맙게도 녀석은 이번 한 주 동안 저를 강제 노역에 동원하지 않았습니다. 녀석이 철이 들었나 봅니다(자연스러운 배변 활동을 가로막은 이기적인 인간을 용서해 준 걸까요?). 아무튼, 감사. 헤헤.




  


  최고의 스승은 책입니다.


  세상에는 스승이 참 많습니다(막상 급하게 도움이 필요할 때면 모두 숨어 계셔 답답하기도 하지만요). 따져 보면 가르침을 주는 존재는 인간만이 아닙니다. 저의 경우, 가장 우러러 모시는 스승은 바로 책입니다. 그들은 잔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때리지도 않고 욕을 하지도 않습니다(다만 나쁜 책도 있으니 가려 읽어야 합니다). 그저 묵묵히 삶의 지혜를 배우라 합니다. 길을 잃어 헤맬 때면 하늘의 별처럼 바다 위의 등대처럼 제대로 된 길을 알려줍니다.


 갑자기 떠올랐는데, 예전에 '사장의 마음'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도서관에 가서 읽을 만한 책을 찾다 손에 잡힌 책인데 제목을 본 알바생 녀석은 '알바의 마음'부터 읽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너스레를 떱니다. 너 자신을 알라 했으니 사장이 사장의 마음부터 이해해야 알바의 마음도 알 수 있다고 되받아쳤지요.

 

  그동안 요식업과 관련된 책을 제법 많이 읽었습니다. 때론 실망도 컸고 때론 공감하며 무릎을 치기도 했습니다. 배울 것이 많은 책은 수도 없이 반복해서 읽었지만 어떤 책은 몇 줄 읽지 않고도 낚였네 혀를 차면서 덮어 버린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세상에는 좋은 책도 많지만 이런 책은 대체 왜 출판을 했을까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는 책도 있습니다.


  저는 요식업과 관련된 책을 읽을 때 저만의 기준이 있습니다. 그 기준은 아주 간단합니다. 저자가 식당이나 카페를 직접 운영해 본 경험이 있느냐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남의 이야기를 짜깁기해서 펼쳐 놓는 사람의 이야기는 아무래도 신뢰가 가지 않습니다. 당연히 그런 사람들은 깊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그런 가짜 전문가들이 넘쳐납니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그런 가짜들을 신봉하는 자영업자들이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다들 아시듯이 요즘 들어서는 새로운 스승이 등장했습니다. 유튜브를 포함한 온라인의 다양한 SNS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됨 없이 인간을 가르치고 깨우치게 만듭니다. 모르는 것을 알려 주고 잘못을 일깨워 줍니다. 가장 주목할 만한 존재는 단연코  AI입니다. 물론 스승이라 말할 수 없고 조력자라고 부를 만하네요. 문제는 잘못 쓰면 그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역효과를 초래한다는 것이죠.






  저는 혼자 노는 걸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콧수염과는 딴판으로 사교성이 부족합니다. 더구나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자체가 귀찮을 때가 많습니다. 어울리는 과정에서 에너지가 소모되는 것도 질색입니다(저도 이런 제가 싫어요).


  그런 제가 20여 년을 영업직으로 직장에서 근무를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런데 식당이란 것이 정말로 혼자서는 성공하기 어려운 업종 중의 하나입니다. 제가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저 혼자서 아무리 죽을힘을 다해서 노력을 해도 현상 유지만도 어려운 것이 식당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마찬가지이지만 식당을 꾸려 나가려면 사람 됨됨이가 좋아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사람이 많이 모여듭니다. 부족해 보이면 먼저 나서서 도와주고 사람이 딱해 보이면 그냥 외면하지 못하고 베푸는 조력자가 많은 거죠. 개업 후의 손님과 주변 상인들과의 관계도 중요합니다. 그들 또한 숨어 있는 조력자가 되어 제가 풀지 못하는 어려운 난제들을 손쉽게 해결해 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매출이 저조할 때에 키다리 아저씨처럼 매장에 나타나 매상을 올려줄 수도 있습니다.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라면 모든 엔젤들의 도움을 기꺼이 받을 일이라 생각합니다.






  조력자의 단계를 벗어나 귀인의 실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저희 부부가 창업 단계에서 고민을 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낙지볶음의 소스였습니다. 일반 가정집에서야 어머니의 손맛으로 고추장 듬뿍 넣고 다른 밑간 재료를 적당히 섞어 낙지를 볶아도 맛이 일품일 겁니다. 그러나 돈을 받고 파는 식당에서는 정해진 레시피가 있어야지 어머니의 손맛만을 믿고 대충 음식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낙지볶음은 단순히 메뉴의 하나이기 이전에 마스터낙지라는 식당 전체의 명운을 좌우하는 대표 메뉴입니다. 따라서 일반 개인 식당이라면 기술 전수라는 명목으로 비싼 비용을 치르고 소스 레시피를 배워야 하고, 프랜차이즈 식당이라면 본사로부터 비싸게 사입해야 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스터낙지의 경우, 식당에서 알바를 할 때 주방 이모가 시험 삼아 만든 소스를 가지고 영업을 시작하려 하였습니다. 당연히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비싼 소스를 살 형편은 못 되었고 테스트에서도 반응이 그리 나쁘지 않아(지인들이 차마 말을 하지 못했던 거임) 밀고 나가려 했죠. 그때 때마침 등장한 귀인이 시중의 프랜차이즈 낙지업체의 그 귀하고 비밀스러운 소스 레시피를 한 푼도 받지 않고 알려준 것이었습니다(홍사장님 고맙습니다.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그리고 그 소스는 지금까지 아주 잘 쓰고 있습니다.






  또 한 명의 귀인을 꼽으라면 당연히 둘도 없는 제 베프를 들겠습니다. 친구는 개업 당시부터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준 고마운 사람입니다. 더구나 그는 오랫동안 요식업에 종사하여 사업 운용 전반에 걸쳐 해박했을 뿐만 아니라, 음식 평론가에 버금갈 만큼 음식에 대한 조예가 깊었습니다. 또한 일본의 고독한 미식가와 견줄 만큼 음식을 사랑하는 미식가이기도 했습니다.

  친구는 메뉴를 완성하는 과정에서 아주 구체적으로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지금은 없어진 메뉴이지만 '바사삭 고구마해물파전'을 더욱 맛있게 업그레이드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습니다. 반죽에 밀가루보다 입자가 거칠고 오돌토돌한 세몰리나를 첨가하여 씹히는 맛을 높인 것이 바로 그의 조언 덕분이었습니다. 파전 표면에 특별한 재료를 뿌려 바삭한 파전으로 업그레이드된 것 또한 그의 덕분입니다. 즉,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바사삭 고구마해물파전은 바로 그의 조언 덕분에 더욱 맛있는 요리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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