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2장 : 불편함은 늘 농담의 얼굴을 하고
그녀의 말은 대체로 웃음과 함께였다.
그래서 더 곤란했다.
웃으며 던진 말을 다시 붙잡아 세우는 일은,
말을 한 사람보다 듣는 사람을 더 예민한 사람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아이들 사진을 함께 보던 날이었다.
키즈노트에 올라온 단체 사진을 넘기다,
그녀는 갑자기
“아, 이건 진짜 못 나왔다.”
깔깔 웃으며 화면을 확대했다.
누구의 아이인지 정확히 집어 말하지는 않았지만
사진 속 아이가 우리 아이라는 건,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알고 있었다.
“더 못 나온 것도 있어.”
그녀는 굳이 다른 사진을 찾아냈다.
웃음은 계속됐다.
애매한 감정을 가지고도 나 역시 얼굴은 웃고 있었다.
그게 가장 빠른 수습이었으니까.
아이의 얼굴을 오래 들여다본 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릴 땐 엄마 닮아서 예쁘더니,
점점 아빠 닮아 가는 것 같아.”
칭찬인지 아닌지 판단하려다 말았다.
그 말은 딱 그만큼만 남았다.
웃음 뒤에 남는, 설명하기 어려운 찜찜함으로.
그녀는 비교를 좋아했다.
하지만 노골적이지는 않았다.
항상 농담처럼 말했다.
“너는 뚱뚱한 건 아니고, 덩치가 큰 거지.”
“나도 관리 안 했으면 너처럼 됐을 거야.”
말 끝에는 늘 웃음이 붙었다.
농담인데, 왜 이렇게 기분이 나쁠까 생각하다가
그 생각이 드는 나 자신이 더 불편해졌다.
사실 그녀야말로 예민한 사람이었다.
아이들이 아프면, 누가 먼저였는지를 꼭 알아내야 했다.
어디서 옮았는지, 진원지가 누구인지.
그게 밝혀지지 않으면, 표정이 쉽게 풀리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이 혹여나 아픈데도 등원을 하기라도 할까 봐
극도로 불안해했다.
혹시 자기 아이에게 옮지는 않을지,
그날의 출석 상황을 꼼꼼히 확인했다.
아이들이 함께 노는 걸 지켜볼 때는
사소한 일에도 목소리가 커졌고,
자기 아이가 조금이라도 불리해 보이면
감정이 먼저 튀어나왔다.
그 집 아이는 늘 엄마를 불렀다.
사소한 일에도, 억울한 표정으로.
그럴 때마다 나는 긴장했다.
아무 일도 아니었는데,
순간적으로 내 아이가 가해자 쪽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함께 있으면 늘 조심스러웠다.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노는 시간이 아니라,
무언가를 감시받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나는 그 관계를 끊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끊을 이유를 아직 찾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아이 엄마들 사이에서 이 정도의 불편함은
흔한 일인지도 모른다고,
어디에나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무엇보다,
찜찜함 그 이상의 ‘결정적인 일‘이 아직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 찜찜함과 싸한 느낌을
더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
앞으로 얼마나 더 큰 피로감을 야기할 줄은 그땐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