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3장 : 선을 넘은 건 그녀였지만, 물러난 건 나였다.
그날은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기로 한 날이었다.
실내에 작은 풀과 장난감이 있는 공간을 빌렸다.
아이들은 들떠 있었고, 어른들은 잠시 긴장을 풀었다.
누군가는 아이들 먹을 걸 챙기고, 누군가는 사진을 찍었다.
나는 잠깐 화장실을 다녀오느라 자리를 비웠다.
내가 돌아왔던 그때,
어쩐지 공간의 공기가 달라져 있었다.
아이들은 조용했고,
그중에서도 내 아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몸이 굳은 채로 서 있었다.
눈은 열려 있었지만, 어디를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먼저 들렸다.
“내가 좀 혼냈어.”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
방금 전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기도 전에
이미 설명은 끝난 것처럼 말했다.
“근데 내가 좀 너무 했나?”
그 말이 이상하게 들렸다.
질문처럼 말했지만,
이미 스스로를 용서한 사람의 어조였다.
무엇 때문에 혼냈는지 물었다.
그녀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고
내가 자리를 비우기 전 상황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고작, 아이들끼리 장난감을 두고 실랑이가 있었다거나
서로 물을 조금 튀겼을 거라는 추측을 할 뿐이었다.
5살 아이들이 놀다 보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더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내 아이를 불렀다.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눈만 깜빡였다.
그제야 상황이 선명해졌다.
그녀는 아이에게 괴성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고 했다.
자비 없는 어른의 분노를,
내 아이에게 그대로 던졌다.
그 순간,
나는 드디어 이 관계를 끝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분명했다.
난 표정 없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더 이상의 말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온 뒤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사과였다.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메시지는 길었고,
자기반성과 후회로 가득 차 있었다.
자신이 얼마나 과했는지
얼마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는지,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말이 반복되었다.
나는 읽고 또 읽었다.
여전히 타오르는 분노는 있었지만,
이 작은 공동체 안에서
완전히 등을 돌리는 일에 대한 피로가 먼저 떠올랐다.
아이를 데리고
매번 다른 길로 돌아다니는 상상을 했다.
마주칠 때마다
설명해야 할 표정들을 떠올렸다.
결국,
관계를 끝내지 않았다.
용서했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괜찮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다만,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겠다는 선택을 했다.
그 선택이
상대에게는 어떤 의미로 읽히는지,
나는 그때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갈등을 넘긴 것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를 정리한 것이 아니라,
조금 뒤로 미뤄둔 것이라는 사실을
그때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
그녀는 조심스러워졌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그래서 더 헷갈렸다.
사람은 정말 변할 수 있는 걸까.
아니면,
상황에 맞게 얼굴을 바꾸는 걸까.
나는 그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다음 장면으로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