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전세를 스친 사람의 전셋집 노트> 2화

검색창에 ‘전세’를 처음 쳐 본 날

by 헬레나

계산기를 닫고 나서,

가장 먼저 켠 건 휴대폰이었다.


검색창에 ‘전세’ 두 글자를 쳐 넣었다가

괜히 멈칫해서 지우고,

다시 ‘전세’라고 쳤다.


그동안 내 삶에서 전세는

늘 “남의 이야기”였다.


부모님 도움을 받거나,

신혼부부 대출을 받거나,

아예 내 월급 테이블과는 상관없는 사람들의 얘기.


나는 늘

“나는 그쪽 라인은 아니고, 그냥 월세 라인이지”

라고 스스로 선을 그어놓고 살았다.


그 선을 내 손가락이 처음 넘어간 하루였다.


검색창에 ‘전세’라고 치는 순간,

관련 검색어들이 쏟아졌다.


전세 대출, 전세 자격, 전세 조건,

깡통전세, 보증보험,

LTV, DSR, HUG…


내 머릿속엔 이미 매달 나가는 월세와 공과금 1년 치,

그리고 앞으로 살 것 같은 연수까지 대충 곱해 본 계산이

잔상처럼 남아 있었다.

그 위로 낯선 영어 약자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쏟아져 들어왔다.


어디서부터 봐야 하지.


정보는 너무 많고,

지금 당장 알아야 할 건 의외로 단순했다.


“나 같은 사람도 전세를 할 수 있나?”

“할 수 있다면, 어느 정도까지가 현실적인가?”


질문을 조금 줄여 보기로 했다.


먼저, 동네.

통근은 중랑구가 고정이다.

조금 넓게 잡아도

광진구, 강동구 정도까지.


그 이상은

‘집을 구하는 동안 내 몸이 먼저 나가떨어질 거리’였다.


나는 어디까지나

예민한 위장을 달래가며 출근해야 하는 사람이고,

새벽 운동을 하고,

퇴근하고 집에 와서 밥을 해 먹어야 하는 사람이다.


“집만 좋아지면 되지”라고 말하긴 쉽지만,

나한텐 집과 동선이 세트다.

집과 위장, 집과 허리, 집과 체력도 세트다.


그래서 검색창에

‘○○구 전세’, ‘○○역 도보 10~15분 전세’

이런 단어들을 하나씩 붙여넣었다.


생각보다 집은 많아 보였다.


사진 속 집들은 멀끔했다.

햇빛이 잘 들어오는 것처럼 보이는 거실,

요즘 스타일의 주방,

베란다에 널어둔 이불까지 예쁘게 찍힌 집도 있었다.


스크롤을 내리다 보면

“여기로 이사 가면, 아침에 이쪽 창으로 햇살이 들어오겠네”

같은 상상이 저절로 따라왔다.


거실에 식탁을 어디에 둘지,

주방 옆에 작은 선반을 놓을 수 있을지,

냉장고를 문 열기 편한 방향으로 둘 수 있을지.


통장 잔고는 그대로인데,

머릿속 집 구조만 점점 넓어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단순하게 생각했다.


“지금 월세 + 공과금 내는 돈이랑

전세 대출 이자랑,

큰 차이만 안 나면 되는 거 아닌가.”


숫자를 맞춰보는 건

나름 익숙한 일이었다.


암 표준치료가 끝나고,

약값·검사비·생활비를 맞춰보면서

계산기를 두드리던 시간들이 이미 있었다.


“어차피 매달 나가는 돈이라면,

조금만 더 보태서 전세를 해도 괜찮지 않을까?”


머릿속에서 월세와 전세가 슬쩍 같은 라인에 서기 시작했다.


물론, 그 뒤에 이어지는 말이 있다.

“…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건 나중에 할 얘기다.


당시의 나는

전세가율도, 깡통전세도,

보증보험도 제대로 몰랐다.


단지,

2022년 3월 이후 몇 년을 월세로 버텨오던 사람이

처음으로 검색창에 ‘전세’를 쳐 보고,


사진 속 괜찮아 보이는 집들을 보면서

“나도 저런 집에 살 수 있을까?”

조심스럽게 꿈을 꿔보기 시작한 시점이다.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워서도 눈을 감으면

포털에서 봤던 집 구조들이 떠올랐다.


“이 집은 현관에서 바로 거실이 보이는 구조네.”

“여긴 주방이랑 거실이 분리돼 있어서 조용하겠다.”

“여긴 침실 창이 너무 도로 쪽이라 시끄러울 것 같은데.”


아직 발품 한 번도 안 팔았는데,

머릿속에선 이미 집을 여러 번 이사 다녀 본 사람처럼

평면도를 고르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집이 예쁘다고

다 괜찮은 집은 아니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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