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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en Oct 27. 2024

합법적 자유 시간

  남은 시간 2분. 계단을 2개씩 뛰어올라간다. 카드를 개찰구에 빠르게 찍고 2번 출구를 향해 뛰어간다. 다시 계단을 2개씩 뛰어올라가니 신호등 초록불이 깜박이고 있다. 또 다시 뛰어 중간 승강장에 도착한다. 지도 어플과 좌우를 살피며 숨을 고른다. 저 멀리서 들어오는 파란버스 152번이 보인다.

  숨을 고르며 버스에 탄다. 오늘도 역시 기사님 바로 뒷자리는 비어있다. 얼른 그 자리에 앉는다. 삼각지역을 지나 한강대교를 건너 노들섬을 향해 달려간다. 한강대교를 가기 직전 마지막 신호등에서 나는 얼른 이어폰을 낀다. ‘학원가는 길’ 제목의 플레이리스트를 누른다. 타이밍 좋게 노래가 시작되고 초록불이 되었다. 인디 음악과 함께 노을 지는 한강을 본다. 정신을 놓고 음악과 함께 한강을 바라보며 멍을 때린다. 그렇게 있다 보면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든다. 

  ‘달리는 버스인데 왜 한 장면만 보이지?’

노을이 지고 있다는 건 직장인들의 퇴근길이 시작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한강대교에서 버스가 멈추었다. 학원 수업 시작 시간이 점점 다가온다. 괜한 마음에 이어폰은 다시 넣어두고 학원 교재를 꺼내 읽어본다. 학원이름이 크게 쓰여 있는 책을 쳐다보는 옆 사람의 시선이 느껴진다. 책장만 연달아 빠르게 넘겨본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넘겨도 버스는 진전이 없다. 안되겠다 싶어 책을 다시 가방에 넣고 암기 자료를 꺼낸다. 개념 하나, 둘 외우다 보니 눈 앞에서 한강이 사라진다. 남은 정류장은 5개, 그리고 학원 시작까지는 30분이 남았다. 다시 나는 이어폰을 꺼낸다. 이번에는 신난 아이돌 음악을 듣는다. 노량진 공무원 학원가를 지나고 신림역도 지나간다. 창 밖에 보이는 초등학생들을 보며 괜히 내 초등학교 시절도 떠올려 본다. 아까 외운 개념들도 다시 생각해본다. 외운 거 중 하나가 생각이 안 나지만 굳이 책을 꺼내 확인하지 않는다. 버스가 00주민센터를 지나가면 가방을 다시 맨다. 하차 벨을 누른다. 학원 앞 정류장에 도착했다. 수업 시작하기 5분전이다. 서둘러 학원으로 들어간다. 

 버스에서 1시간은 특별하다. 그 시간동안은 아무것도 안해도 누가 뭐라고 할 수 없다. 자리에 앉아서 조용히 내가 무엇을 하든지 누가 간섭 할 수도 없다. 일이나 공부를 집중해서 하기에도 애매한 상황이다. 그렇지만 음악을 듣거나 창 밖을 바라보고 멍을 때리는 건 달리는 버스에선 너무나 쉬운 일이다. 집에서 학원가는 길은 지하철만 타면 50분이면 가지만 버스로 중간에 환승하면 1시간이 걸린다. 그럼에도 나는 버스를 탄다. 60분의 합법적 자유를 누리게 위해 오늘도 나는 집에서 10분 일찍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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