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량한 세상에 색칠놀이
어째서 신격화된 존재에게만 후광이 붙는 것일까?
물론, 그만큼 대단해서라는 간단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 대단한 것이 무엇인지의 문제도 단순한가?
사실상 이 질문에 예스가 나온다면 애디슨은 전구를 만들지 않았으면 천재가 아니다 같은 허무맹랑한 소리다.
애초에 대단함이라는 것은, 단순히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이제 질문은 던질 대로 던졌으니 탐구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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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후광과 신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것이니. 후광부터 알아보자.
기본적으로 후광은 해당 대상이 대단하다는 것을 표현한 빛이고
단서가 없는 지금 앞전의 요소들로 이야기를 풀어봐야 되풀이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든다.
의문의 답은 새로운 요소를 찾고,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러니 일단 빛의 본질을 알고, 그것을 이용하여 복잡한 사유를 끌어내야 하지만 빛이라는 요소는 너무 광대하고 강열한 존재이다.
그래서 답이 갈리겠지만, 글의 한계상 다 다룰 수는 없으니 화자로써의 답을 가져와본다.
아마 신격화된 존재들이 후광이라는 대단함의 표식을 등지고도 빛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해하기 쉽게 생각해 보면 후광이 비치는 것처럼 노을 등 지고 서있으면 잘 안 보이기 마련이다.
특히나, 안 보이는 것만큼 돋보일 수도 없다는 것이 핵심이고, 그 핵심을 비틀어버리기에 신격화된 존재들에 붙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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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담, 어떻게 어째서 비틀 수 있었는가?
그것은, 아마 빛을 등지고 빛나지 않는 것을 품는 신의 자비로움에서 나오는 것이다.
왜냐면, 평범한 인간이나 짐승은 태양을 등지겠단 선택을 쉬이 하지 못하기 때문에 저 마음이 특별한 것이고
자신이 만든 세상이니 빛을 등질지언정 우리를 감싸 안아준다. 그리고 그 마음보다 따스하고 대단한 게 뭐가 있을까?
아무리 인간이 어렵게 얻을 수 있는 마음이라도, 그것 또한 신이 앞장서서 해줌으로 우리에게 시범을 보인 것이다.
그러니 나는 후광을 넣은 이유에 더한 것은 없다고 본다만, 신격화된 존재들에게만 붙는 이유라면 이 풀이에는 한 가지 흠이 존재한다.
여기서의 이야기대로면, 신은 우리에게 후광이 붙는 법을 가르쳐줬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가 후광이란 빛이 비치는 것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래 결국 우리도 그 가르침을 가지면 후광을 가질 수 있다는 게 되어버린다.
이 흠을 지금 꺼내는 것이 갑작스러운 도약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이것은 위에 쌓아온 이야기들을 꿰뚫는 과정이니 조금만 더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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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인간에게는 후광이 붙을 수 없는가?
이 질문은 이야기를 잃기 전이라면, 우리는 신의 티끌만큼 닮는 것조차 안된다 생각해서 당연한 질문일 거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않는가?
우리는 이 글에서
신이 보여준 모범을 따르면, 우리는 아주 조금이나마 신에게 다가갈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앞에 모든 질문의 답이 되어 말해준다.
저 질문들은, 사실 틀린 것이다. 우리는 후광을 가질 수 있다.
그저 가질지 아닐지는 개인의 차이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