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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라 장 Dec 20. 2021

코비드 코모리 #4

여보, 전역은?

코비드 코모리: COVID-19와 히키코모리를 합친 합성어로,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반 강제적으로 집 밖을 나가지 않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여보, 전역은?


 원래의 계획은 이러했다. 내가 미국에서 공부를 하는 동안 남편은 군 복무 기간을 채우고, 그다음에 결혼을 하고, 같이 열심히 준비해서 미국으로 이민을 가기로.


  하지만 예기치 못한 상황은 폭풍처럼 몰아닥쳤고, 우리는 예상보다 조금 빨리 부부가 되었으며, 계획에 없었던 군 생활을 함께 겪어 나가게 된 것이다. 아마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활기찬 생활을 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별 수 없이, 강화된 방역 수칙과 규제 앞에서는 출퇴근 가능한 군인에게도 집콕만이 최선일뿐이었다. 전 세계 사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겪고 있는 재난을 '왜 내게 이런 일이'라는 식의 개인적인 아이러니로 받아들이기도 좀 애매한 상황. 오랜 장거리 연애 끝에 온 신혼 생활은 행복했으나, 한창 달려 나가고 싶은 시기에 집 안에만 갇혀있게 된 건 충분한 변수였다.



  옷방 한쪽에는 상당히 많은 양의 군복이 나열되어 있다. 계절별로, 상황별로, 같은 디자인의 옷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옷걸이와 서랍장을 점령해갔다. 살면서 밀리터리룩을 이렇게 가까이 자주 볼 날이 올 줄은 몰랐지만 계속 보다 보니 눈에 익고, 적응도 되고, 어떻게 빨아 널어도 구김 없이 금세 마르는 실용성에 감탄하는 날도 종종 있었다. 내가 직접 군부대를 드나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집 밖을 나가도 군인 집 안에 들어와도 군인이 있는 나머지 마치 간접 군생활을 하고 있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집 안에 갇혀있는 건 훈련이요, 함께 버티는 나날들은 전역 날짜만을 기다리는 군인들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함이렷다(해탈).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아도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똑같은 풍경의 일상 속에서 꽤나 큰 기쁨이 되어주었던 건 저녁식사 시간이었다. 나도 남편도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옮겨 다니는 생활을 길게 해서인지, 함께 식탁을 차리고 도란도란 시간을 보내는 일이 남다르게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오늘 저녁 뭐 먹을까?" 퇴근하는 남편을 기다리는 나도, 퇴근하고 돌아오면 기다리는 사람이 생긴 남편도, 낯설지만 싫지 않은 몽글몽글한 기분을 느끼며 함께하는 군생활을 조금씩 견뎌나갔다.


  '그런데 여보, 전역은?'

시간은 참 빠른 것 같으면서도 느리게 지나갔다. 우리는 각자의, 또한 서로의 시간을 견디다 가끔씩 버거운 날이 오면 "군대가 잘못했네."라고 괜한 탓을 돌리며 기운을 차렸다. 꼭 거쳐야 하는 일이긴 했지만 힘든 것도 사실이었다. 달리 생각해 보면 지금처럼 우리가 바깥 신경 덜 쓰고 온전한 둘 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기회도 흔치 않았다. 다만, 그간의 시끄럽고 분주했던 삶과 달리, 이곳은 너무(많이) 조용하고, 고요하고, 적막했다(이것은 마치 시간과 공간의 방).



  각자의 길이 있고 자리가 있었던 우리 두 사람은 군 안에 머무르는 긴 시간 동안 잦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어야만 했다. 살면서 갈고닦아 온 '나'라는 사람의 색깔과 성격, 태도들은 전혀 다른 환경 안에서는 그다지 필요치 않는 요소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남편이 군 안에서 먼저 그것을 겪는 동안 나는 늦게 시작한 타지 생활에서 1차 혼란을 겪고, 둘 다 유부남 유부녀가 된 이후 함께 맞이한 생활 속에서 2차 국면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그 곤란한 상황을 이제는 혼자가 아닌 둘이 함께 겪는다는 것이 이전보다는 훨씬 낫다는 점이었다.


  전역 후에는 둘 다 원래의 가던 길로 다시 들어서야 한다. 건강하게, 씩씩하게. 아마 그러기 위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들은 슬럼프에 빠지지 않게 서로를 잘 다독이는 일과, 함께하는 저녁시간을 화기애애하게 유지하는 일, 질 좋은 숙면, 그리고 적당히 기분을 달래 줄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 일단은 이렇게 시작을 해 보는 거지. 그래. 그러다 보면 전역이 다가올 거야.




#코비드코모리, #코로나, #히키코모리, #낯선마을에서의50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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