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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고백과 너의 긴 편지
내 친구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내 손을 잡으며, 이젠 나가자고 말한다. 우리는 둘 다 너무 추웠으므로 롱패딩을 입고 있었다. 우리는 옷을 주섬주섬 입으며, 가게 점원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다시 나갔다. 가게 내부는 무척이나 따뜻한 온실이었지만, 밖으로 나가니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손을 벌려 눈을 맞았다. 나는 빨리 오라는 친구의 투정 섞인 모습을 보자 물밀듯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도대체 너는 어떤 것을 보고 있는 걸까. 내가 보지 못하는 무언가를 보고 있는 걸까. 난 너에게 온전히 다가갈 수 없는 걸까. 우리는 꽤나 오래전부터 쭉 친구 사이였다. 나는 말할 수 없는 비밀까지도 공유했다. 만약 네가 끝도 없는 어둠을 보고 있다면, 내가 그 어둠을 조금 덜어줄 수는 없는 걸까 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친구는 나에게 그럴 틈을 전혀 주지 않는다. 하지만 내 친구니까 그런 면도 이해한다. 친구는 나에게 손을 내민다. 그리고 우리는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날씨가 너무 추웠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했다. 나와 내 친구는 비슷한 보폭으로 걷는다.
사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고등학교 시절, 우리는 조금 다른 점이 많았었다. 하지만 우린 비슷한 걸 좋아했다. 그 관심사 덕분에 우리는 지금까지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둘 다 문학 작품이라던가, 미술 작품이라던가 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었다. 우리는 같이 프란츠 카프카에 관해 이야기하고,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우리는 둘 다 예술가가 되고 싶었다. 친구는 미술에 관심이 있었고, 그 미술을 제대로 배워보고픈 욕심이 있었다. 친구가 당시 가장 좋아하던 미술가는 에드바르 뭉크, 살바도르 달리, 그리고 고흐와 키스 해링. 친구는 자신이 그림을 그리겠다고 다짐한 이유를 이 미술가들 때문이라고 나에게 말하기도 했다. 그 당시, 친구는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난 고흐의 그림을 정말로 좋아해. 왜냐면 사실 그는 어렸을 때 매우 어려운 생애를 보냈거든. 사실 고흐가 살아있을 때, 고흐의 그림은 단 한 점밖에 팔리지 않았어. 그렇지만 그는 예술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았어. 그게 바로 내가 고흐를 좋아하는 이유야. 또 그의 그림의 화풍과 스타일도.”
이렇게 이야기하는 친구는 마치 만족한 듯이 밝게 웃었다. 우리는 여전히 같은 보폭으로 걷는다. 그리고 여전히 손도 잡고 있다. 하지만 너는 도대체 어떤 길을 보고 있는 걸까. 길가에는 눈이 소복이 쌓여 있고, 우리는 앞으로 한 걸음씩 내딛는다. 주머니 속의 친구의 손. 우리는 말없이 걷는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이게 내가 기억하는 이유에서인지, 나에게 무언가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중요한 것’을 알려주지 않는다. 꼼지락거리며 움직인다. 난 친구의 눈을 바라본다. 친구도 곧 눈을 바라본다. 내 친구의 마지막 모습이다.
이때 이후로 우리는 만나지 못했다. 거의 5년 동안. 그날 집에 들어갔을 때,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했었다. 아까 전에 나눈 친구와의 대화, 그리고 정적 속의 일들에 대해, 분명 무언가 나에게 이야기하지 않은 부분이 있는 것 같았다. 어딘가로 떠나버린 것 같은 느낌이, 내가 잡을 수 없는 곳까지, 이미 너무 멀리 펼쳐져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런 느낌을 느끼며, 나는 스르륵 잠이 들었다. 그리고 꿈속에서 ‘너’를 보았다. 우리는 꿈속에서 손을 잡고 길을 걷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보며 낄낄대고, 시답잖은 농담을 이어나간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하다. 갑자기 손의 감촉이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손이 사라져버린 것처럼. 이상함을 느낀 나는 친구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런데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내 친구는 그곳에 없었다.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남은 건 내 손에 남은 온기뿐. 이제 그 온기도 점점 희미해져 간다.
~편지~
20xx. 12. 27일, 눈이 내리는 날.
있잖아, 난 예전부터 꼭 생각해왔어. 그게 어떤 생각이냐 하면, 내 자신을 누군가에게 완벽하게 이해시키는 게 과연 가능할까? 라는 생각이야. 지금까지 이 세계에서 살아오면서, 정말로 많은 일이 있었어. 나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사람들이 정말로 나와 함께 있는 게 맞는 걸까? 라는 생각을 하곤 돼. 그러니까, 대강 이런 거야. 어떠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누군가와 나누게 될 때, 스스로 계속 이렇게 생각하게 돼. 나는 그 이야기에 참여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에 대한 의견을 장황하게 늘어놓지. 그런데 정말로 이상하게도, 나는 그렇게 한동안 말하고 있는데도 전혀 말하고 있지 않은 기분이 들어.
그러니까 많이 말하고 있는데도 전혀 말하고 있지 않은 기분이 든다는 건, 내가 사람들과 얘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과 진정으로 얘기하고 있다는 기분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야. 내 마음을 제대로 공유하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어. 그런데 내 마음을 밖으로 꺼내 놓는 게 너무 어려워. 어떤 식으로 내 마음을 밖으로 꺼내야 하는 걸까. 내 마음속에 담겨져 있는 무언가는 실제적인 말로써 밖으로 튀어나오는 게 아니라, 내 마음속 어디 한가운데 눌려진 채로 계속 남아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러니까 말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밖으로 나오기가 어렵다는 이야기야.
계속 그렇게 느껴왔어. 그래서 나는 그런 어려운 방법을 택하는 대신에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방법을 택했지. 사람들은 그런 나를 좋아해줬어.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고 이야기해 주면서 고맙다고 말하기도 했지.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고마워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기분이 나름 좋았던 것 같아. 하지만 그게 계속해서 반복되다 보니 ‘진짜 나는 어디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너무너무 많이 들었어. 그러니까 이런 거야.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때, 사람들은 그것을 너무 가벼운 것처럼 이야기해. 나는 그게 적응이 되질 않아. 예를 들어서 오늘 회사에서 일이 힘들었다고 이야기를 한다고 해. 근데 그들은 그것을 너무나도 가볍게 이야기하고 있지. 실제로는 가볍지 않은 감정이지만 가볍게 말하는 것일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그러한 말하기 방법이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아. 나는 그게 정말로 어렵다고 생각해.
누군가와 옆에서 걸을 때도, 누군가와 함께 이야기를 한다고 하더라도, 내 마음속에 있는 어떠한 응어리진 것은 전혀 풀리지 않았어. 나는 그것을 어떻게 푸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것 같아. 만약 그것을 알았다면, 지금까지 나는 누군가에게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겠지. 하지만 나는 그러한 방법을 제대로 알 수 없어. 나도 잘 모르겠어. 내가 왜 그것을 알 수 없는지, 그런 것과 관련돼서 말이야. 그래서 나는 보다 더 편리한 방법을 찾았어. 나는 내 감정을 직설적으로 이야기하기보다는 돌려서 말하는 것에 익숙해져 갔어.
예를 들어서 오늘도 카페에서 이야기한 것 중에 나비 이야기가 있었잖아. 우리가 그 카페에 들어갔을 때 이상하게도 나비가 팔랑거리며 날아다녔지. 나는 그런 카페는 정말로 처음 봤어. 아마도 저번에 말했던 것처럼 점원의 취미인 것 같아. 어찌되었든 나는 그 나비를 보자마자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어. ‘나도 저 나비처럼 자유로워지고 싶다.’라고. 사실 실제적으로 따지면 나비는 자유롭지 않을지도 몰라. 하지만 왠지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어. 두 개의 팔랑거리는 날개, 그리고 양쪽에 달려 있는 작은 날개들. 총 네 개의 날개로 나비는 유연하게 날아다니지. 천적을 피하기 위해서 발달시킨 얇고 섬세한 날개로 이리저리 돌아다닐 수 있고, 저속 저고도 비행을 하기도 하지. 때로는 높은 곳에 날아다니기도 하고, 꽃에서 꿀을 빨아먹기도 해.
나는 왜인지 그런 나비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어. 물론 본능적으로 그렇게 행동하는 걸지도 모르지. 인간보다 동물은 생존이라는 것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테니까 말이야. 물론 그 사실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어. 하지만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런 나비가 너무도 부러웠어.
내가 얘기하는 거 잘했잖아. 돌려서 이야기한다고, 잘한다고 말했잖아. 나는 돌려서 이야기하는 방법을 택했어. 나는 왜인지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게 너무 어렵게 느껴지거든. 그래서 내가 너에게 그렇게 얘기한 거야. 나비의 영혼, 저승과 이승의 이야기, 그리고 나비의 진화 메커니즘에 대해서. 나는 나비처럼 어딘가 계속 떠나고 싶었어. 왜냐면 나는 나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했거든. 내가 나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도 내 감정에 대해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너무 많이 들었어. 나는 무의식적으로 타인에 대해 이야기할 때, 타인이 반응하는 것이 너무 무섭게 느껴졌어. 그 반응이 긍정적일 수도 있고 때로는 부정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은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것을 맞닥뜨리는 건 생각하는 것과는 정말로 다르다고 느껴졌어.
너는 정말 좋은 친구고, 내가 내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도 그것을 모두 받아들여 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 그런데도 내 스스로 그게 너무 무섭게 느껴져서, 너에게 말하지 못했던 거야. 나도 마음 같아서는 너에게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하고 싶었어. 우리는 소중한 걸 공유한 사이니까 말이야. 처음 고등학교 때 널 보았을 때, 그리고 너와 함께 취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 나는 처음으로 구원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지금까지는 나의 관심사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들만 사람들과 해왔으니까 말이야.
이렇게 다른 이야기를 할 때마다 느꼈던 감정은, ‘타인과 이야기하는 게 이렇게 따분하고 재미없는 건가?’라는 생각이었어. 하지만 적어도 그런 생각은 너와 이야기하면서는 모두 다 사라진 것처럼 바뀌었어. 내가 개인적으로 흥미를 느끼는 예술가들, 그런 것들을 너와 함께 이야기하면서 ‘세상에는 나 말고도 예술에 관심이 있고, 창의력이 넘치는 작품에 흥미를 느끼며, 심지어 그것을 직업으로 삼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어.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것에는 지금까지 전혀 관심이 없었거든. 전부 다 자신의 커리어나 돈과 관련된 일밖에는 생각하지 않았어. 심지어는 나의 부모님도 그랬어. 부모님은 나에게 공부하라고 하셨지. 나를 위해서 하신 말이라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그 말이 그때는 너무 부담스럽게 느껴졌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고, 하기 싫은 것만 해야 하는 그러한 삶 말이야.
내가 내 감정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하는 건 아마 어렸을 적부터 이런 영향이 컸다고 생각해. 난 항상 같이 있으면서도 더 빈 느낌이 들었고,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했을 때의 비참한 기분을 느끼면서 살아야 했지. 그리고 나는 그런 삶의 방식에 익숙해졌고, 그런 방식이 내 전부인 것처럼 느껴졌어. 이 이상도 이하도 없는 삶처럼. 하지만 그런 불안한 상황에서 너라는 사람을 만났고, 너와 함께 내가 좋아하는 작품과 작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난 정말로 너에게 구원받은 것처럼 느껴졌어. 너는 모를지도 모르겠지만, 난 너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 그래서 너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싶기도 해. 하지만 아직까지는 내가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아.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던 거야.
말도 없이 떠나서 미안해. 사실 언제 돌아올지는 잘 모르겠어. 나는 미국으로 갈 거야. 너와 함께 보냈던 추운 겨울밤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안겨주었어. 나는 그러한 추억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만 같아. 그곳에서 너와 함께 이야기했던 이 세계의 구조와 그 안에 살아가는 예속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나를 정말로 흥미롭게 만들었어. 난 조금 더 공부를 하고 싶어.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속박되어 있던 과거의 시절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무언가를 해볼 수 있다는 확신을 얻고 싶어. 잘 될지 안 될지는 잘 모르겠어. 그렇지만 너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어. 항상 고마웠고, 만약에 돌아오게 된다면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만약 내가 다시 돌아온다면, 그때는 나의 있는 그대로를 너에게 순수하게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할게.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정말로 행복할 거야.
2022.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