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내가 알아채려는 만큼만 그 모습을 보여준다.
눈에서 뇌로 전달되는 시각 정보의 처리는 뇌에게 이만저만 부담이 아니다. 제한된 시간당 처리 용량과 에너지로 인해 시시각각 전달되는 정보를 모두 신속히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무주의 맹시'는 그런 뇌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예다. 뇌는 특별한 정보를 제외하곤 다른 정보들을 일괄처리해 버리며 우리 눈이 마치 모든 것을 다 보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정보를 의식적으로 인식하지 않으면 뇌는 시각 정보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다. 사고의 틀을 만들어 늘 쉽게 쉽게 처리한다. 우리는 그 사고의 틀이라는 함정에 빠져 살아야 하며 그렇게 우리는 늘 환상과 같은 현실에서 살아간다.
대학시절 연구실에 조금 일찍 들어갔다. 어류학 연구실! 연구실 특성상 채집은 일상이었다. 특히 남학생이 귀한 과였기에 선배들의 채집에 자주 불려 다녔다. 물고기 채집은 늘 힘들었다. 그늘 하나 없는 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태양의 열기를 온몸으로 고스란히 받아야 했다. 연구실 박사님은 연신 그물을 던지며 물고기를 채집했다. 나는 채집통을 들고 다니며 잡힌 물고기를 통에 담았다. 박사님은 내가 채집한 물고기를 다 정리하기도 전에 이미 다음 사이트서 물고기를 잡아 올렸다. 어류 채집은 막노동이나 다름없었다. 여름 한나절 채집만으로 녹초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 덕에 지금도 잊히지 않는 우리 하천의 풍광을 경험할 수 있었다.
채집 과정에서 늘 신기했던 것은 박사님들의 초능력이었다. 물고기를 잡아보지도 않고 하천의 어류상을 거의 정확히 예측하였다. 또한 다리 위에서 물속을 슬쩍 내려다보기만 해도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 이름을 정확히 알아맞혔다. 내가 암만 봐도 구별되지 않는 비슷한 형태의 물고기도 그분들은 빠르고 정확히 분류하였다. 박사님이 가끔 나에게 분류키를 알려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분류는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물고기 이름은 암기하기도 힘든, 긴 학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채집 과정에서 나는 까막눈과 다름없었다. 본다고 보는 것이 아니었다.
2023년 8월 28일 월요일
월요일은 늘 운전이 힘들다. 더군다나 오늘은 대부분의 학교들이 개학한 날이어서 그런지 교통도 많이 막혔다. 공원에 도착한 시간은 그만큼 늦어졌다. 들뜬 마음으로 공원에 첫발을 내디뎠다. 발걸음이 불편했다. 운전이 길어질수록 허리가 좋지 않았다. 트렁크에서 카메라를 챙긴 후 습관적으로 시냇가를 응시했다. 모래사장 가운데 떡하니 텐트 하나가 쳐져 있었다. 텐트 창으로 낯익은 카메라 렌즈가 나와 있었다. 물총새를 찍으려고 사진작가가 텐트까지 동원한 것이었다. 촬영에 방해되지 않게 조용히 다리를 건넜다.
오늘따라 꾀꼬리가 유난히 시끄러웠다. 산 중턱으로 노란 꾀꼬리 두 마리가 숲에서 나왔다가 금세 숲으로 들어가 버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선을 그곳에 고정했다. 또 한 마리가 나왔다가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너무 멀어 사진에 담기는 힘들었다. 차로 돌아오는 길에 텐트 쪽을 바라보았다. 렌즈가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물총새가 사냥하는 바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 녀석이 사냥에 열심이었다. 잠시 후 텐트에서 작가가 몸을 털며 나왔다.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작가는 "사진을 찍었어요!"라며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작가님, 산에는 파랑새도 가끔 날아와요. 한 번 찍어보세요."라며 새로운 정보를 알려주었다.
2023년 8월 29일 화요일
아침부터 물총새 두 마리가 바쁘게 날아다녔다. 둘은 서로 경쟁하듯 사냥터를 드나들었다. 오늘도 모래사장에는 사진작가의 카메라가 물총새를 따라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다리 위에는 SUV 한대도 정차해 있었다. 망원렌즈가 장착된 카메라를 든 또 다른 사진작가가 보였다. 하지만 그 사람은 모래 위에 쳐진 텐트를 보더니 이리저리 살핀 후 금방 자리를 옮겨 가버렸다.
어제 산에서 들리던 꾀꼬리 소리의 기억을 쫓아 등산로로 걸음을 옮겼다. 산기슭에는 나비들이 가을이 오기 전 바쁘게 먹이를 찾아 날고 있었다. 가시 달린 파란 밤송이는 덩치를 키우며 가을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산책 내내 꾀꼬리 소리만 듣고 만나지 못해 아쉬움으로 가득 차 돌아오던 길, 등 뒤로 꾀꼬리 울음소리가 명확히 들렸다. 눈을 들어 높은 나무 끝자락을 응시했다. 노란색의 작은 점 같은 것이 보였다. 카메라로 최대한 당겨 보았다. "우와, 찾았다! 꾀꼬리!" 움직임을 최대한 줄이려 숨까지 죽여가며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멀리서 그 녀석과 조우했다.
2023년 8월 30일 수요일
비가 내렸다. 옥연지 호숫물이 많이 불어났다. 유입되는 물살은 빨랐다. 흙탕물로 물속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나뭇가지에 앉은 물총새는 온몸으로 내리는 비를 맞고 있었다. 물총새는 흙탕물로 변한 물을 하염없이 내려보고 있었다. 물총새는 어찌할 줄 몰랐는지 시냇가 너머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2023년 8월 31일 목요일
아침까지 비가 조금씩 내렸다. 흙탕물은 소리를 내며 옥연지로 몰려들었다. 구름은 낮게 내려와 비슬산에 걸려 있었다. 산 능선을 따라 구름은 강물처럼 흘렀다. 작은 달팽이가 느릿느릿 촉촉해진 세상을 기어가고 있었다. 우산을 쓰고 산책을 했다. 모든 것은 차분히 내려앉은 조용한 아침이었다. 저녁에는 구름 사이로 블루문이 떴다.
2023년 9월 1일 금요일
송해공원에 평소보다 일찍 도착했다. 교통이 원활한 금요일이었다. 이틀간 내렸던 비는 그쳤다. 하지만 구름은 파란 하늘 아래 낮고 짙게 깔려 있었다. 산으로 오르는 산책길 초입은 여전히 축축하다. 빗물이 흐르면서 콘크리트 포장길에 이끼가 생겼다. 미끄러우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에 내딛는 발걸음이 조심스러웠다. 길을 오르면서 예전 파랑새가 앉았던 나뭇가지를 바라봤다. 딱따구리 한 마리가 사냥하느라 정신없었다. 먹이를 찾아 고목나무의 줄기를 오르내렸다. 조금 더 산을 올라 지난번에 꾀꼬리가 앉았던 나무를 바라보았다. 잘 보이지 않았지만 노르스름한 점이 보였다. 최대한 줌으로 당겨 보았다. 꾀꼬리였다. 자세히 보니 두 마리가 한 나무에 함께 앉아 있었다. 그 녀석의 울음소리가 선명하게 내 귀를 뚫고 들어왔다.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렀다.
산에서 내려와 시냇물을 따라 시선을 옮겨 보았다. 불어난 물로 인해 물총새가 예전보다 좀 더 먼 거리까지 날아다니고 있었다. 이제 물총새는 예전보다 훨씬 쉽게 눈에 잘 들어왔다. 차에 타기 전 혹시나 "파랑새를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먼 산을 한 번 쓱 바라보았다. 이때 눈에 들어온 것은 산 중턱 나무에 보이는 노란 점들이었다. 망원렌즈로 당겨보았다. 꾀꼬리였다. 한 나무에 세 마리가 함께 앉아 있었다. 그 옆 나무의 가지 끝에도 한 마리가 더 앉아 있었다. 하루에 7마리씩이나 관찰하다니!
물총새와의 만남이 늘어날수록 그 녀석의 행동 습성을 알게 되었다. 내가 인식하게 된 만큼, 아주 작은 물총새의 행동에도 그 녀석을 쉽게 찾아낼 수 있게 되었다. 꾀꼬리도 마찬가지다. 언제 어디쯤 꾀꼬리가 나타날지 예상할 수 있다. 지난여름 내내 숨바꼭질에서 늘 술래였는데 이제 나는 더 이상 술래가 아니다.
송해공원의 계절이 바뀌고 있다. 여름 철새인 파랑새는 더 이상 송해공원을 찾지 않는다. 한 동안 내 앞을 날아다니고 있을 때, 그 존재를 일찍 알아챘어야 했다. 너무 늦은 인식으로 나에게 더 이상의 만남은 허락되지 않았다.
세상에는 많은 것이 늘 자기 방식으로 존재한다. 내가 그것을 인식하고 보려 할 때 비로소 나는 알아볼 수 있게 된다. 자연은 늘 조금씩 그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