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한 세상을 행복하게 푸는 기술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휴대폰 알림부터 확인하는 게 다반사다.
이메일, 페이스북, 카카오톡, 인스타그램, 밴드까지…
우리는 하루 종일 수많은 정보를 삼키며 살아가지만,
이상하게도 점점 더 피로해진다.
몸의 피로는 잠시 쉬면 풀리지만,
마음의 피로는 도무지 쉴 틈이 없다.
현대인은 네 가지 피로 속에서 산다.
하루 종일 스크린을 마주하는 디지털 피로,
끝없이 쏟아지는 정보에 질리는 콘텐츠 피로,
넘쳐나는 선택지 속에서 결정을 미루는 풍요 속 피로,
그리고 끊임없이 비교하고 연결되며 지쳐가는 관계 피로.
이 네 가지 피로는 결국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이웃과 가족, 그리고 사회로부터
조금씩 거리를 두게 한다.
피로는 단순히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잠시 ‘왜 살아가고 있는가’를 잊은 상태다.
철학자 한병철은 『피로사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더 이상 타인에게 착취당하지 않는다.
이제는 스스로를 착취하며 사는 피로사회에 살고 있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는데 우리는 스스로를 꾸준히 혹사한다.
이 역설이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이미 그 피로의 한가운데 서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 끝에 나는 작은 조어(造語)를 만들어보았다.
‘피로를 푼다(解疲)’와 ‘행복하다(happy)’를 합친 말, 해피(解疲).
조금은 말장난 같지만, 나에겐 꽤 진지한 제안이다.
피로를 푸는 삶이야말로 진짜 행복에 이르는 길이 아닐까.
해피는 단어가 아니라 삶의 태도다.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고,
연결보다 단절의 시간을,
효율보다 여백의 미학을 선택하는 용기다.
얼마 전 한 전시회장을 찾았다.
작품 사이사이 넓게 비워진 공간이 인상적이었다.
처음엔 ‘왜 이렇게 허전하지?’ 싶었지만,
곧 그 여백이 내 마음을 편안히 채우는 걸 느꼈다.
아무 소리도, 어떤 설명도 없는 그 공간에서
오히려 생각이 또렷해졌다.
그날 알았다.
여백이란 비워내는 순간에 비로소 나를 회복하게 하는 힘이라는 걸.
하루에 한 시간쯤은 스크린을 끄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자.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려 애쓰기보다 꼭 필요한 사람에게 따뜻하자.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피곤하면 잠시 멈추자.
그리고 일상에서 벗어나 대자연의 품에 안겨보자.
이게 내가 말하는 ‘해피하게 사는 법’이다.
해피(解疲)는 거창한 철학도, 대단한 깨달음도 아니다.
그저 내 안의 피로를 알아차리고, 그 피로를 부드럽게 풀어주는 일이다.
피로를 푼다는 건 곧, 나를 회복하는 일이다.
오늘 하루, 당신은 얼마나 해피(解疲)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