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가지를 쳐낸 노장의 위엄

비우고 덜어내어 본질에 도달하는 과정

by 박동환


소설가 김훈은 산문집에서 “기름에 겉도는 듯한 고독을 사랑하라”고 썼다. 세상이라는 뜨거운 국물 속에 기어이 섞이지 않고, 제 모양을 유지하며 둥둥 떠 있는 기름 한 방울. 그것은 고립이 아니라, 타인과 세상에 함몰되지 않으려는 자의 치열한 자기 증명이다.

최근 화제가 된 ‘흑백요리사’ 속 후덕죽 셰프를 보며 나는 그 '기름 같은 고독'의 실체를 목격했다. 요리 경력 57년, 일흔일곱의 노병. 그가 젊은 셰프들 사이에서 칼을 잡는 모습은 단순히 노익장의 과시가 아니었다. 그것은 군더더기를 모두 덜어내고 오직 본질만 남은 '간결함의 위엄'이었다.


곁가지를 쳐낸 자의 간결함

작금의 시대는 '더하기'의 시대다. 수만 가지 레시피가 알고리즘을 타고 흐르고, 화려한 플레이팅과 자극적인 기법들이 대중의 눈을 현혹한다. 하지만 후덕죽의 음식은 달랐다. 그는 굳이 설명하려 하지 않았고, 굳이 화려해지려 애쓰지 않았다.

그의 태도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이가 대수냐"며 툭 내뱉는 퉁명스러운 한마디. 거기엔 어떠한 권위 의식도, 장황한 자기변호도 없었다.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불 앞에서 사투하며 그가 배운 것은 어쩌면 '어떻게 더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뺄 것인가'였을지도 모른다. 본질에 집중하기 위해 불필요한 자존심과 기교라는 곁가지를 모두 쳐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서늘한 간결함이었다.


당근 지옥에서 마주한 본질의 미학

그 간결함이 경이로움으로 변모한 순간은 소위 '당근 지옥'이라 불린 미션에서였다.

젊은 요리사들이 당근을 변형하거나 해체하는 기상천외한 요리 기법을 고민할 때, 그는 묵묵히 중식의 기본인 '면'과 '장'을 응시했다. 당근으로 면을 뽑아 짜장면을 만들겠다는 발상은 무모할 정도로 정공법이었다. 전분기가 없는 당근으로 면의 질감을 구현하는 것은 기술을 넘어선 '식재료와의 대화'가 필요한 영역이 아닐까 싶다.

그는 당근을 깎고 다듬으며 식재료가 가진 본연의 당도와 수분만을 추출해냈다. 화려한 양념이나 장식은 없었다. 오직 당근이라는 본질을 끈질기게 파고들어, 우리가 알던 짜장면의 형식을 빌려 전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냈다. 그것은 레시피의 홍수를 비웃는, 57년 불과 사투를 벌이던 내공과 몸에 새긴 숙련도가 빚어낸 '단순함의 극치'였다.


섞이지 않기에 더욱 선명한

우리는 늘 세상과 섞이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하며 살아간다. 유행에 뒤처질까 봐, 신세대의 감각을 따라가지 못할까 봐 곁가지를 덕지덕지 붙이며 자신을 치장한다. 하지만 후덕죽이라는 대가는 말한다. 억지로 섞이려 하지 말고, 차라리 기름처럼 겉도는 고독 속에서 자신만의 농도를 지키라고. 그의 음식은 독보적이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다. 그것은 그가 77년이라는 생의 시간 동안 수많은 유혹과 흔들림 속에서도 자신의 궤도를 이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곁가지를 쳐낸 줄기 끝에 맺힌 열매는 작지만 단단하고, 그 맛은 무엇보다 선명하다.

노장의 현역이 보여준 정진(精進) 앞에, 나는 '나이가 든다는 것'이 비우고 덜어내어 결국 가장 나다운 본질에 도달하는 과정임을 배운다. 그의 성적표가 무엇이든 그것은 중요치 않다. 이미 그는 자신의 삶이라는 솥 안에서, 누구와도 섞이지 않는 가장 고귀한 기름 한 방울로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 06화짤순이는 왜 늘 '순이'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