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제품에 붙여진 여성이름들
주말 오후, 주방 가득 매콤하고 구수한 냄새가 차올랐다. 새해를 맞아 아내와 둘이 앉아 만두를 빚기로 한 날이다. 만두 빚기의 핵심은 만두소 재료의 물기를 얼마나 완벽하게 제거하느냐에 달려 있다. 아내는 비장한 표정으로 다용도실 구석에서 자그마한 기계 하나를 꺼내 왔다. 수십 년간 대한민국 주부들의 든든한 조력자였던 탈수기, 일명 ‘짤순이’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김치의 수분을 사정없이 뽑아내는 기계를 멍하니 지켜보다가, 문득 가슴 속에 묵혀두었던 사소하고도 분석적인 질문 하나를 툭 던졌다.
“여보, 근데 왜 저 기계 이름은 하필 ‘짤순이’일까? 물기를 꽉 짜는 건 힘이 많이 드는 일이니까, 힘 좋은 남자의 성을 따서 ‘짜돌이’라고 부르는 게 더 낫지 않아?”
나름대로 논리적인 추론이라 생각하며 아내를 보았다. 하지만 돌아온 아내의 대답은 내 논리를 단숨에 증발시켰다.
“짜는 건 여자들이 잘해. 왜, 당신도 이번 기회에 제대로 한번 짜줄까?”
아내는 예의 그 싱긋 웃는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그 순간, 탈수기 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물기를 뱉어내던 김치들의 처지가 남 일 같지 않게 느껴졌다. 서늘한 깨달음이 등줄기를 스쳤고, 나는 얼른 고개를 숙이고 만두소를 하릴없이 뒤적이기 시작했다.
‘순이’들의 시대와 ‘돌이’들의 부재
그 이름 하나에, 한 시대의 역할 분담이 숨어 있었다.
사실 우리 가전사(史)에는 수많은 ‘순이’들이 있었다. 짤순이뿐만이 아니다. 과거 한 가전회사는 로봇 청소기에 ‘신데렐라’라는 이름을 붙여 출시하기도 했다. 먼지를 싹 쓸어버린다는 ‘싹쓸이’ 같은 힘차고 강력한 이름 대신, 굳이 재를 뒤집어쓰고 바닥을 닦던 동화 속 여인네의 이름을 빌려온 것이다.
왜 그랬을까? 과거 가사 노동은 전적으로 여성의 몫이었다. 기계는 그 노동을 대신해 주는 고마운 존재였지만, 동시에 ‘집안일은 여자가 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자연스럽게 굳혀 주는 장치이기도 했다. 기업들은 기계를 차가운 금속 덩어리가 아닌, 말 잘 듣고 꼼꼼한 ‘여성 조력자’로 포장하고 싶어 했다. ‘짜는 것’이나 ‘닦는 것’처럼 섬세함과 인내를 요하는 작업에 여성의 이름을 붙임으로써, 그 고된 노동력을 당연시했던 시대의 시선이 이름표에 고스란히 박제된 셈이다.
권력이 된 농담, “당신을 짜줄까?”
하지만 아내의 농담은 그 고정관념을 단번에 뒤집어버렸다. 이제 아내에게 ‘순이’라는 이름은 순종적인 노동의 상징이 아니다. 오히려 남편을 긴장하게 만드는 유쾌한 권력이자, 가사 노동의 주도권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해학적인 선언에 가깝다.
“내가 너를 짤 수도 있다”는 그 말속에는, 더 이상 ‘순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묵묵히 희생하지 않겠다는 당당함이 담겨 있었다.
시대는 변했고 가전제품의 이름도 변하고 있다. 요즘 나오는 가전들은 ‘짤순이’나 ‘신데렐라’ 대신 ‘워시타워’, ‘오브제’, ‘비스포크’ 같은 무미건조하거나 추상적인 이름을 단다. 가전이 이제 특정 누군가의 대역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 모두가 사용하는 공용의 도구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변화일 것이다.
짤순이는 가고, 파트너가 남다
나는 아내의 서늘한 농담에 슬며시 만두피를 집어 들며 대답했다.
“아니, 당신 손목 아프니까 이제부터 내가 ‘짜돌이’가 되어볼게. 내가 다 짤게!”
우리는 함께 만두를 빚었다. 내가 물기를 짜면 아내가 만두소를 완성했고 함께 만두를 빚었다. 기계의 이름은 여전히 짤순이였지만, 그 버튼을 누르는 손길은 더 이상 성별을 가리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짤순이’들이 이제 그만 은퇴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누구 한 사람의 희생이 아니라, 서로의 수고를 덜어주려는 다정한 손길들만 남기를 바란다. 오늘 우리 집 부엌에서 오간 작은 농담처럼, 살림의 고단함이 웃음으로 덜어지는 풍경이 더 많아지기를, 조용히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