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억총량제에 대하여
살다 보니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내 삶의 가치는 과연 무엇으로 증명되는가. 누군가는 통장의 잔고로, 누군가는 명성으로 그 답을 대신하려 애쓸 것이다. 하지만 나는 문득 이런 상상을 해본다. 저승의 문턱, 염라대왕이나 옥황상제 앞에 섰을 때 그들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통행세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그것은 부나 명성이 아니라, 생의 페이지마다 꾹꾹 눌러 담은 ‘추억의 부피’가 아닐까. 그것도 가능한 한 질 좋은 추억으로 채워야 통과할 수 있는, 꽤 깐깐한 기준 말이다. 이름하여 ‘추억총량제’다.
이 제도 아래에서는 성공을 위해, 혹은 부를 축적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이들이 오히려 꾸지람을 듣는다. 반면 남들이 보기엔 대단할 것 없는 기억일지라도, 그 안에 깃든 온기를 또렷하게 간직한 이들은 환대를 받는다. 소소한 순간일수록, 타인을 따뜻하게 보듬거나 곁을 내준 기억일수록 더 높은 점수를 받는 저승의 법칙이다. 문득 내 추억의 장부를 들여다본다. 화려한 장면은 많지 않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유난히 빛나는 페이지들이 있다.
포대기 속의 우주, 엄마의 온도
아주 어린 시절, 소슬한 바람이 불던 어느 오후였다. 어머니는 나를 업고 이웃집 마실을 가셨다. 찬 공기에 아들이 감기라도 걸릴까, 포대기를 꼼꼼히 여며주시던 어머니. 포대기 틈으로 스며들던 바깥 공기는 분명 서늘했지만, 내 등을 감싸던 어머니의 체온은 말로 다 못 할 만큼 뜨끈했다.
그것은 단순한 신체적 온기가 아니었다. 세상이라는 낯선 곳에서 내가 완벽하게 보호받고 있다는 안도감, 생애 처음으로 느낀 ‘사랑의 물성’이었다. 6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어도, 그 등의 감촉은 여전히 내 영혼의 가장 따뜻한 구석에 남아 있다. 추억총량제가 있다면, 이 기억 하나만으로도 내 장부의 기본값은 이미 채워졌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50년째 갚지 못한 생명의 빚
또 다른 페이지에는 조금 아릿한 기억이 적혀 있다. 열 살 무렵, 강가에서 물놀이를 하다 수영 솜씨가 미숙해 깊은 곳으로 빠져들었던 날이다. 허우적거리며 ‘아, 이렇게 죽는구나’ 싶던 찰나, 이름 모를 한 형의 손이 나를 붙잡아 끌어올렸다.
너무 놀라고 어리둥절한 나머지, 고맙다는 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 미안함은 5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내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형이 바랐던 보상은 인사가 아니라, 그가 건져 올린 이 생명이 세상에서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쌓으며 살아가는 것이었음을.
그날 이후의 삶은, 어쩌면 그가 내게 건네준 ‘덤’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 열심히 누군가를 사랑하고, 순간을 아끼며 살아야 했다.
당신의 장부에는 무엇이 적혀 있습니까
추억총량제는 우리에게 조용히 경고한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손에 쥔 금덩이가 아니라, 마음속에 남은 장면들뿐이라고.
오늘 당신의 하루는 어땠는가. 우리는 흔히 ‘경제적 자유’나 ‘성공의 총량’은 필사적으로 채우려 하면서도, 정작 삶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할 ‘추억의 부피’는 종종 미뤄두고 살지 않는가. 숫자를 늘리는 데만 급급한 나머지, 정작 추억의 장부를 비워두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
훗날 옥황상제 앞에 서서
“나는 이런 따뜻한 등을 가졌었고,
누군가에게 이런 귀한 생명을 선물 받았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기억이, 독자 여러분의 장부에도 가득하길 바란다.
우리는 모두, 추억을 채우기 위해 이 땅에 잠시 들른 여행자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