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이 되어서야 대답한 질문 하나
60년을 넘게 살고도 대답하지 못한 질문이 하나 있다.
“넌 누구니?”라는, 너무 짧지만 묵직한 물음이다.
우리는 대개 이 질문을 건너뛴 채 살아간다.
누군가의 남편으로, 누군가의 아버지로, 혹은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맡은 역할로 자신을 설명하며 하루를 채운다. 나 역시 그렇게 살아왔다. 수만 번의 명함을 건네며, 그 안에 적힌 이름과 직함으로 나 자신을 대신 설명해 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루의 끝에서 거울 앞에 서면 그 모든 설명이 무력해졌다.
거울 속의 사내와 단둘이 마주 앉는 순간마다, 나는 늘 낯선 이방인이 되곤 했다. 그가 누구인지 말해줄 언어가 없었다. 나를 정의하는 말들은 언제나 삶의 바깥에서만 맴돌았지, 정작 나 자신에게는 닿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아침이었다.
습관처럼 일어나 세수를 하다 말고, 문득 고개를 들었다. 젖은 얼굴 위로 조명이 내려앉은 거울 속에는, 내가 아닌 낯익은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오래전 세상을 떠나신 나의 아버지였다.
깊게 패인 미간의 골, 눈가에 잔잔히 번진 주름의 결,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할 때 살짝 일그러지는 입매까지. 거울 속에는 내가 닮기 싫어했고, 그래서 애써 외면했던 얼굴이 있었다. 동시에, 마음 한편에서 늘 그리워하던 얼굴이기도 했다. 순간 심장 근처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아버지가 나였구나.’ ‘아니, 내가 아버지였구나.’
문득 거울 속 아버지의 어깨를 바라보게 되었다.
어릴 적 내 눈에 그 어깨는 늘 태산처럼 넓고 단단해 보이기만 했다. 세상의 모든 비바람을 막아줄 수 있을 것 같은 어깨였다. 그런데 오늘 보니, 그 어깨가 유난히 작고 고단해 보였다.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아버지는 저 어깨로 얼마나 많은 시간을 견뎌냈을까. 말없이, 티 내지 않고, 그저 ‘아버지답게’ 버텨온 시간들을.
지금의 나는 어떤가.
삶의 무게가 버거워 휘청거릴 때마다, 나는 늘 혼자라고 생각했다. 나만 이 길을 처음 걷고 있는 것 같았고, 누구도 대신 들어줄 수 없는 짐을 홀로 지고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거울 속의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는 이미 그 무게를 먼저 견뎌낸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흔적을 내 얼굴 속에, 내 표정 속에 남겨두고 가셨다. 마치 이렇게 말하듯이.
“이 길은 나도 걸어봤단다. 그러니 너무 겁내지 마라.”
그제야 깨닫는다.
삶은 단절된 개인의 시간이 아니라, 이어져 흐르는 하나의 강물이라는 사실을. 아버지는 당신의 시간과 선택, 좌절과 성실을 내 몸이라는 그릇에 담아두고 떠나셨고, 나는 이제 그 그릇을 들고 다음 세대라는 바다로 향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누군가의 과거이자, 동시에 누군가의 미래다.
그래서 오늘을 어떻게 사느냐는 생각보다 중요해진다. 내가 무너지지 않고 지켜낸 오늘 하루의 태도가, 언젠가 내 자식이 거울 앞에 섰을 때 마주할 얼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얼굴이 부끄럽지 않기를, 적어도 “잘 버텨왔구나”라는 말 한마디를 건넬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나이 듦은 약해지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내 안에 아버지를 품게 되는 일이자, 내 자식의 미래를 조금 앞서 살아보는 경험이며, 더 많은 삶의 굴곡을 이해하고 껴안을 수 있게 되는 ‘확장’의 과정이다. 예순 해가 지나서야 나는 비로소 “넌 누구니?”라는 질문에 작은 대답 하나를 내놓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내 아버지로부터 흘러와, 내 자식에게로 이어지는 성실한 생의 통로다.
오늘도 나는 거울 속의 아버지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건네며 집을 나선다. 내 아버지가 그러하셨듯, 나 또한 누군가의 정직한 과거가 되기 위해 오늘이라는 시간을 성실히 채워낼 것이다.
“넌 누구니?”
“나? 난 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