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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임수술, 네가 할래, 내가 할까?

셋째를 막둥이로 끝내기 위한 결단

by 심연
불임 수술도 같이 진행하시겠어요?


둘째 출산 전에 들었던 그 질문을, 셋째 수술 동의서 작성 시 또 들었다.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불임수술은 난관결찰술로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길을 봉쇄해 영구적으로 임신을 막는 피임 방법이다.


그때도, 지금도 내 대답은 "아니요"였다.


둘째 출산 때는 난임부부라, 그런 수술 절차 없이도 자연임신은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고, 이번 셋째 때는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남편이 당연히 정관수술을 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출산 일주일 정도 남은 시점에 남편은 정관수술을 망설였다. 이유는 아플 거 같아서였다. 임신 중반 때만 해도 '불임수술은 본인이 해야지' 했던 사람이 지금은 생각해 본다며 태도를 바꿨다. 어안이 벙벙했다.


'아프면 얼마나 아프다고, 수술 시간도 고작 10분이라는데... 난 세 번의 시험관 시술에, 세 번의 제왕절개 출산까지 했는데 그것도 못해주나?'하고 따져 묻고 싶은 말이 한가득이었지만, 그 순간엔 말을 삼켰다.


정관수술이 아플 거 같다는 사람에게 '그게 뭐가 아프냐고' 따져 묻는 게 크게 의미 없게 느껴졌다. 아픔은 상대적인 거고, 수술대에 올라가는 건 내 몸이 아닌, 남편의 몸이기 때문이다. 수술을 원치 않는 사람에게 강제로 나를 위해 해달라며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그의 반응에 서운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다른 집들은 다 남편이 수술한다던데, 우리 집 남편은 이를 두고 망설이고 있으니 말이다.


10분밖에 안 걸린다던데, 대체 그 정관수술이 뭐길래!




주변 기혼 언니들과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은 입모아 대부분의 남자들이 정관수술을 하는 걸 꺼려한다고 했다. 아내가 비뇨기과 예약 잡고, 손잡고 가지 않는 이상, 제 발로 씩씩하게 병원으로 향하는 남자는 드물다며 말이다. '정관수술 한다... 한다...' 해놓고 막내가 열 살이 될 때까지 못한 경우도 많다고 했다.


얘기를 종합해 보니, 여자들이 간단한 시술정도로 치부하는 그 수술이 남자들에게는 큰 상징성이 있어 보였다. 게다가 우리 남편은 죽은 줄만 알았던 본인의 정자가 셋째 자연임신 성공으로 살아났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더더욱 바로 떠나보내기가 섭섭했을 것이다. "남자들 은근 겁쟁이야~"라는 언니의 표현에 피식 웃음이 났다.


사랑하는 겁쟁이를 위해 용감한 내가 나서기로 했다. 요즘은 난관결찰술도 수술 예후가 괜찮다고 하고, 어차피 제왕절개로 개복하는 김에 겸사겸사 할 수 있으니 효율성 측면에서도 좋아 보였다. 남편은 본인이 하는 것도 망설였지만, 내가 하는 것도 미안해했다. 사실 그 태도만으로도 섭섭함의 반은 사라진 것 같았다.


진료실 문 밖을 나서며 난 왜 처음에 그의 태도에 실망하고 섭섭해했을까 생각해 봤다. 그랬더니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1. '난 출산도 했는데, 넌 날 위해 정관수술도 못 해주니?' 하는 생각


사실 이 정의는 처음부터 오류가 있었다. 이 정의가 맞으려면 내가 했던 시험관 시술과 출산이 모두 남편을 위해 했던 어쩔 수 없는 희생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세 번의 시험관 시술과 출산 모두 나와 남편 다 원했기 때문에 한 것이었고, 이것은 남자는 원해도 할 수 없는, 여자만 할 수 있는 숭고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임수술 역시 한쪽의 희생이 아닌, 부부 모두 동의해야 가능한 것이다. 누가 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부부 상황에 맞는 효율적이고, 안전한 방식이다. 만약 내가 자연분만을 했다면, 아마 불임수술은 수술 절차가 간단한 남편이 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왕 제왕절개로 개복하는 김에 내 선에서 한 번에 끝낼 수 있으니 우리 상황에서는 난관결찰술이 좀 더 맞았을 뿐이다.


2. '정관수술 = 아내를 향한 사랑'이라는 생각


정관수술이 남자들에게 큰 상징성이 있다 보니, 이를 한 남편들의 아내 사랑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관수술'이 남편의 사랑을 확인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매일 새벽마다 아내를 위해 설거지를 다 해놓고 출근하고, 주말엔 가족을 위해 약속을 잡지 않는 남편도 그 나름의 사랑 표현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정관수술을 망설였다는 이유로 남편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섭섭한 이유를 생각해 보고, 그것에 대해 반론해 보니 '내 지옥은 나 스스로 만들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불임수술을 누가 할 것인지는 하나도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우리 가족계획의 시작과 끝을 제대로 정하고, 앞으로 어떻게 잘 살지 생각하는 게 더 중요한 것이니 말이다.


오늘 출산 전 마지막 진료를 받으며 수술동의서를 재작성했다. 이제 4일 뒤면 우리 셋째가 태어나고, 이 아이는 우리 집 귀한 막둥이가 된다.


진료실을 나오며 남편에게 "당신의 소중이를 지켜줬으니, 날 귀인으로 생각해야 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오늘은 왠지 그 정도 생색은 내도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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