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나누면 반이 된다고들 말하지만, 마음만큼은 나눌수록 더 커지고 깊어진다.
오늘은 휴머니튜드 2분기 수업의 마지막 날이었다. 분명 함께한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마음 한편이 이상할 정도로 허전했다. 그 감정을 어떻게든 달래보고 싶었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수강생 한 사람, 한 사람을 떠올리며 그분에게 꼭 어울리는 엽서를 고르고, 마음이 닿기를 바라는 편지를 한 자 한 자 써 내려갔다. 웃음이 늘 머물길 바라며 스마일 스티커를 붙이고, 달콤함이 긴 하루를 잠시라도 위로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사탕을 곁들였다.
이런 작고 정성스러운 행위들이 이별의 아쉬움을 조금은 걷어내주었다.
나눔이란 결국, 마음을 보내는 일이니까. 그리고 나는 믿는다.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은 기억으로 남는다.
그래서 감정은 바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른다고 낡지 않고, 반복된다고 희미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한 번 깊이 스민 감정은, 마치 오래된 잉크처럼 우리의 기억에 스며들어 삶의 고비마다 떠오르고, 위로가 되고, 다시 사람을 믿게 한다.
기억은 사건이 아니라 감정으로 저장된다는 말이 있다. 누가 무엇을 했는지는 잊어도, 그때 내가 어떤 기분이었는지는 오래 남는다. 따뜻함이 바래지 않는 건, 그것이 진심이기 때문이다.
진심은 늘 사람의 마음을 통과해 오래도록 남는다. 그리고 그렇게 남은 것들이, 언젠가 또 다른 사람을 향한 따뜻함으로 다시 흐르게 된다.
그 따뜻함이 곧, 돌봄의 시작이고 그 감정이 곧, 이 일을 계속하게 하는 이유가 된다.
그 따스함을 서로의 마음에 온전히 남기고 싶어, 하트 스티커와 별 스티커를 손에 들고 수업에 들어섰다. 하나씩 떼어 가슴에 붙이며 이름을 불러주었다.
“OO야, 사랑해.”
“OO야, 최고야.”
우리는 서로를 안아주고, 웃어주고, 다정한 말들로 감싸주었다. 그 순간 모두의 얼굴이 환해졌다. 이 수업이 그분들께 어떻게 다가갔는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휴머니튜드 수업은 대단하거나 특별한 기술을 알려주는 시간이 아니다.
돌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나의 ‘행복지수’다. 행복은 가득 차야 넘친다고 하지 않나. 그래서 사람들은 묻곤 한다. “무엇을 채워야 하나요?”, “어떻게 채우죠?”
하지만 나는 그 방법을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따뜻함을 느끼는 수업을 할 뿐이다.
무언가를 잘하려 하지 않아도 되고, 정답을 말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그저 옆 사람의 눈빛을 바라보고, 목소리를 듣고, 손을 맞잡으며 잠시 그 마음 안에 머무는 시간이면 충분하다. 마음이라는 이름의 아주 조용하고도 정직한 저장소에 남게 된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자신을 열고, 기억의 단편들을 꺼내며, 아주 오래된 감정들과 재회한다. 누군가는 말 한마디 없이 미소만으로 다가오고, 또 다른 누군가는 조심스럽게 마음을 내어놓는다.
그 다정한 순간들을 통해 우리는 안다. 마음은 기술보다 깊고, 돌봄은 설명보다 진하다. 그래서 이 수업은 ‘배움’이라기보다 ‘경험’이며, ‘감정’이다.
결국 함께 웃고 바라봐주는 눈빛과 “괜찮아요”, “기다릴게요” 하는 짧은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의 하루를 다르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이 따뜻한 수업 안에서 배운다.
수업이 끝난 뒤, 쉽게 돌아서지 못하는 수강생들의 발걸음을 보았다. 한 분씩 줄을 서듯 다가와 마음을 건넸다.
“강사님, 정말 오래 기억에 남을 수업이었어요.”
“이런 수업을 들을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또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모든 말에 나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진심을 담아 한마디만 건넸다.
“저도요.”
모두가 돌아간 뒤, 디멘시아 그룹 대표님이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해 주시며 말씀하셨다.
“강사님이 수업 후에 수강생들과 나누는 모습을 보니, 어떤 수업이었는지 알겠습니다. 해피 바이러스세요.”
그 말이 참 고맙고 감사했다. 이별의 아쉬움을 엽서와 손 편지, 스마일 스티커, 사탕 한 줌에 담아 전했던 오늘의 기억은 내 마음의 저장소에도 고스란히 넣어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