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원고, 너무 전문적인가?" 혹은 "내용이 너무 가벼운가?."
이러닝 원고를 쓰다 보면 반드시 마주하게 되는 피드백입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내 글솜씨에 대한 자책이 아니라, 내가 지금 어떤 '판'에서 뛰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이러닝의 세계에는 크게 두 가지의 명확한 생존 전략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사업주 과정은 1c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설계도를 짜는 것과 같습니다. 제가 주로 수행하는 '사업주 훈련 과정'은 기업이 직원 교육을 실시하고 국가로부터 훈련비를 환급받는 구조입니다. 여기에는 강력한 규칙이 존재합니다. 바로 '학습 목표의 달성'입니다.
사업주 과정의 원고는 에세이가 아닙니다. 철저히 계산된 '매뉴얼'이어야 합니다. 한 회차 25분을 채우기 위해 한글 7장, PPT 25장을 꽉 채워야 하는 이유는, 국가에서 정한 훈련 시간을 1초라도 어겨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 원고의 생존 전략은 지식의 나열보다는 ‘역량 강화' 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이걸 배우면 현장에서 당장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답을 주지 못하는 원고는 낙제점입니다. 특히 간호사 대상 과정이라면, 실제 임상 지침(Protocol)과 법적 근거가 원고의 뼈대가 되어야 합니다.
교양 및 단일성 강좌는 5분 안에 승부를 보는 '스토리텔링' 기술을 요구합니다. '환급'이 목적은 아니고 학습자의 '흥미'와 '만족'이 최우선입니다. 30회차의 장기 과정보다는 5~10회차의 짧고 강렬한 호흡이 많습니다.
원고 집필 노하우는 '분량'보다 '몰입' 이 중요합니다. 굳이 한글 7장을 채울 필요가 없습니다. 핵심만 찌르는 10분의 영상이 30분의 지루한 강의보다 낫습니다. 지식보다는 작가만의 고유한 경험과 '인사이트'를 녹여내는 것이 핵심입니다.
생존 전략으로는 첫 1분에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학습자가 "아, 이건 내 이야기인데?"라고 느낄 수 있도록 친근한 구어체와 사례 중심으로 원고를 구성해야 합니다.
특히 제가 겪었던 30차시 장기 과정은 집필 자체가 하나의 마라톤입니다. 1회차부터 30회차 까지 일관된 톤을 유지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저는 이때 '모듈식 구성' 이라는 노하우를 발휘했습니다. 30개를 통으로 생각하면 숨이 막히지만, 5개씩 묶어 '기초-심화-실전-응용'으로 단계를 나누면 호흡을 조절하기가 훨씬 수월해집니다. 도서관에 쌓아둔 책들을 보며 내가 지금 마라톤의 어느 지점을 지나고 있는지 체크하는 것, 그것이 250시간의 서바이벌을 견디게 한 힘이었습니다.
이러닝 개발자 2년 차에 깨달은 진리는 하나입니다. 세상에 '무조건 좋은 원고'는 없습니다. '그 교육의 성격에 딱 맞는 원고' 가 있을 뿐입니다. 사업주 과정의 엄격한 형식에 갇혀 답답해하기보다, 그 안에서 어떻게 하면 학습자의 역량을 1%라도 더 끌어올릴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 그것이 제가 18년의 경력을 '디지털 원고'로 치환하며 배운 생존의 기술입니다.
이제 성격에 맞는 원고가 준비되었다면, 우리는 가장 치열한 현장으로 가야 합니다. 바로 뜨거운 조명과 차가운 카메라 렌즈가 기다리는 '촬영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