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없어도 잘만 살아지더라.

[치매 돌봄이 답답하다면 한 번 읽어 보실래요?]

by 너울

“어린아이가 한 몸에 포개진 그 육체”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을 집필한 김지수 작가님은 치매 어르신을 보며 이렇게 표현했다. 정말 공감되는 문장이다.

그런데 어린아이를 돌보듯 치매 어르신을 돌봐야 하는 것이 가족들을 매우 힘든 상황으로 끌고 갈 때도 있다.


요양보호사 표준교재에서는 신경계질환(치매, 뇌졸중, 파킨슨) 은 옆에서 지켜보는 보호자도 매우 힘든 상황이므로 정서적으로 지지해 줘야 한다고 표기되어 있다.

“괜찮아진다.” “시간이 약이다.” 이런 말은 위로 보다 오히려 독으로 작용한다. 치매는 시간이 지나면서 악화를 가져오는 질환이지 건강을 되찾을 수 있는 질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서적 지지를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내가 16년 동안 강의 하며 찾아냈던 힌트를 풀어가며 발칙함(치매 어르신을 돌보지도 않은 사람이 무엇을 안다고? 이런 질문에 과감히 반기를 드는 행위다.)을 이어가 보려고 한다.

돌봄은 시간과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

자립능력을 잃어버린 인간을 온전히 돌본다는 것은 우울증의 침입에 수시로 시달릴 수밖에 없다.

출처:Unsplash


가끔 돌봄을 하다가 동반 자살을 선택하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는 이유와 비슷하다.


요양보호사를 노인학대 신고의무자로 법에 명시한 것은 가족에 대한 은근한 감시를 하라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하루에 3~4시간의 돌봄을 하는 요양보호사 보다 더 많은 시간의 돌봄을 제공하는 가족이 돌봄 스트레스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나는 과감히 말한다.


“가족을 집에서 내 쫒으세요.”


요양보호사가 출근해서 어르신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이미 가족은 외출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이런 가족이 있는 집이 학대의 위험성으로부터 안전한 집이다.


가족은 요양보사를 믿고 어르신과 잠시 이별을 선언해야 한다. 단순히 가족의 힐링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너 없어도 돼.”라고 말하는 어르신의 자립성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내가 없어도 불안하지 않고, 내가 없어도 불편하지 않는 마음이야 말로 믿음이 전제되어 있는 온전한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가족이 어르신의 모든 상황을 주시하고 있는 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에서 이런 구절을 만났다.

독소처럼 쌓이는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세요?

처음엔 자전거를 탔어요. 얼마 전부터 요양보호사가 하루 세 시간 오는데, 그 틈을 타서 30~80킬로미터를 냅다 자전거로 달렸죠.
달리며 노래도 불러요. 지금은 세 시간 동안 송내역 광장에 나가서 <벼룩시장> 배포 아르바이트를 해요.

어머니 반찬값, 제 담뱃값도 벌고 바람도 쐬는 거죠. 치매 어머니와 산 9년 후회 안 해요. -요리블로거 정성기 편


이 글의 주인공인 스머프 할배라 부르는 정성기 작가님의 문장에서 나는 어느 정도 확신이 들었다.


내 발칙함을 옹호하는 옹호자가 있구나!


요양보호사가 방문하는 세 시간 동안 거침없이 집 밖으로 나와 자전거도 타고, 아르바이트도 한다.


이런 결단이 독소처럼 쌓이는 부양의 스트레스를 어느 정도 해소해 주고 있기에 9년이라는 시간 동안 치매 어머니를 돌 볼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의문 아닌 확신을 던져본다.


그리고 치매어머니와 정성기 작가님이 온전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아들이 외출하기로 결단한 3시간 동안 어머니는 이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 너 없어도 돼."


치매대상자와 가족의 온전한 관계를 대변하는 말이다. 가족에게 과감히 치매대상자로부터의 이별을 선언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제공해 주어라.


그것만이 돌봄에서 만나게 되는 스트레스를 정화시키는 정서적 지지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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