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 시계는 오늘도 똑딱 인다.

[치매 돌봄이 답답하다면 한 번 읽어 보실래요?]

by 너울

공이 가득 담긴 바구니를 들고 나오는 놀이지도사가 있다. 이 사람을 보자마자 어르신들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창가 쪽으로 걸어간다.


창문을 열기 위함이다.


어느 누구도 어르신들에게 창문을 열어 달라는 부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어르신들은 공을 들고 나오는 놀이지도사를 보자마자 창문을 열었을까?

놀이지도사는 공놀이를 시작하기 전에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창문을 열어 환기하는 일이었다. 이 활동을 규칙적으로 하다 보니 어느덧 치매를 가진 어르신들도 놀이지도사의 행동을 예측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예측이 가져다주는 가장 큰 효과는 혼란을 경감시키고 정서적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사람은 예측이 안 되면 불안하고 불안하면 공격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치매 어르신도 마찬가지로 예측할 수 없을 때 파괴적인 행동(울고, 분통을 터뜨리고, 욕설하고, 때리고 물고, 꼬집는 등의 신체적 폭력)을 더 할 수밖에 없다.

은행에 가면 순번을 알려주는 번호표 기계가 있다. 그 기계는 사람의 공격성을 감소시키는 진정제 역할을 한다.


번호표에 찍힌 대기인원이 20명이다. 업무소요시간을 5분 정도로 가정했을 때 총 100분 정도가 걸린다. 이렇게 예측이 가능해진 것이다.

예측이 가능하니 심리적 불안을 가라앉힐 수 있고 공격적으로 바뀌기보다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선택을 고민하게 된다.

시간을 기다렸다가 업무를 보는 사람이 있고, 차후 방문을 기약하며 돌아가는 사람이 있고, 잠시 외출을 했다가 되돌아가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어느 한 사람도 소리를 지르며 불만을 토해내는 사람은 없다. 어떤 선택이든 결정권이 자신에게 있었으니 결과에 대한 책임도 내 몫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처럼 예측이 가능할 수 있도록 돌봄을 제공하면 정서적 안정감과 함께 선택에 대한 만족감도 얻을 수 있다. 더불어 돌봄으로 인해 발생하는 가족의 스트레스도 덜어 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잔존기능을 파악해 보는 것이다. 치매를 가진 어르신도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이 꽤 많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사소하게 바라보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다.

잔존기능을 찾았다면 그 기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대상자에게 맞는 일정표를 만들어야 한다.

일정표이지 시간표가 아니다. 시간을 정해 놓고 그 시간에 꼭 해야 하는 부담감 대신 하루 동안 해야 할 일의 목록을 작성하여 언제든지 변동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결과 중심이 아닌 과정 중심의 태도를 가진 돌봄자 라면 충분히 할 수 있다. 혹 아직도 결과 중심으로 돌봄을 하고 있다면 빨리 과정 중심으로 태도의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아이 돌봄을 하는 경우에는 돌봄 시간과 성장이 비례한다. 돌봄을 제공하면서 누워있던 아이가 서게 되고, 선 아이는 걷게 된다. 성장의 결과물을 빠르게 만날 수 있다.


그러나 노인 돌봄은 다르다. 아무리 열심을 다해 돌봄을 제공한다고 하더라도 최고의 결과물은 상태유지뿐이다. 기능의 향상이나 완전한 회복을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런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면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과정에서도 너그러움은 동행이 될 것이다.


계획은 지키기 위해 세우는 것이기는 하지만 때론 지켜지지 못한다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규칙적인 일상생활을 일정표로 만들어 반복적으로 실행하면서 습관을 만들어 가야 한다.


지켜지는 날은 감사함으로 지켜지지 않는 날은 희망을 담아 다시 도전하며 또 가야 한다. 이렇게 습관을 만들어 가다 보면 어느덧 몸에 각인 되어 있는 날만 만나게 된다.


난 그 각인을 몸시계라고 부른다.

이 시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자. 치매 어르신의 몸시계는 오늘도 똑딱이며 흘러갈 것이다. 그 시계의 똑딱임을 모른 체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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