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불편함이 너의 불편함이 되어선 안 돼.
[치매 돌봄이 답답하다면 한 번 읽어 보실래요?]
by
너울
Nov 23. 2023
“어머, 유치원에서 불편하지 않았어?”
“왜? ”
유치원에서 돌아온 막둥이가 겉옷을 벗자 앞뒤가 바뀌어 있는 상의 내복이 보였다.
앞으로 와야 할 부분이 등으로 넘어가 있으니 하루 종일 불편하지 않았을까 싶어 물어본 질문이다. 이 질문에 막둥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말을 듣고서야 괜한 걱정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 마음이 평정을 찾았으니 다음은 자신감을 가지고
도약하면 된다.
잠들 때까지 앞뒤가 바뀐 상태로 온 집안을 돌아다니게 내버려 두는 것이다.
난 아이 셋을 키우는 다둥이 엄마다. 가장 많은 너그러움으로 키우는 아이는 막둥이다.
아이 둘을 키워봤으니 경험이 쌓여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도 있다. 그러나 두 아이를 키워 본 경험이 만들어준 너그러움이 아니다.
요양보호사 양성 강의를 하며 치매 어르신 돌봄 방법이 만들어 준 너그러움이다.
어떤 너그러움이 만들어졌기에 앞뒤 바뀐 옷을 입은 아이를 내버려 둘 수 있었는지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치매 ‘라는 질환은
인지 수준의 저하를 가져오면서 많은 것들을 변화시켜 놓는다. 그중 한 가지가 이타적인 사고에서 자기중심적인 사고로 전환을 시킨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중심을 다시 나에게 두고 살아가려 한다. 이기적인 사랑에 대한 갈급함이 찾아오는 것이다. 치매 질환을 가진 분들이 다시 아이가 된 것 같다고 하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질환으로 오는 증상임을 조금은 이해해야 한다.
치매가 어떤 병이냐고 물었을 때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지만 내가 설명하는 것 중 하나가 ‘이기적인 사랑을 갈구하는 병’이다.
관심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어 진다. 그럼 그렇게 해주면 된다. 관심 가득 주고, 사랑 가득 주면 될 일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어려운 걸까?
내림 사랑은 있어도 올림 사랑이 없는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지구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중력이 있기에 가만히 있어도
내려 간다.
서 있는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것도 때론 어려웠던 이유다. 그런데 올라가는 것은 하염없이 잡아당기는 지구상의 중력을 이겨내는 역행이 될 때나 가능하다.
관계 안에서도 역행은 존재한다.
특히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어르신을 돌보는 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어린아이를 만나면 자연스럽게 미소와 함께 온몸의 세포가 사랑을 표현하고 싶어 한다.
무의식적인 반응이다.
그러나
노인을 만나면 무의식이 발동하지 않는다.
무의식을 의식적으로 바꾸는 행위가 역행이다. 타고난 능력이 아니라 연마를 통해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가능성은 열어둔다.
해보려는 노력의 여부가 기술자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가장 필요한 노력이 존중이다. 존중이란 있는 그대로를 봐줄 수 있는 마음이기도 하다.
치매 돌봄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문장들이 있다.
“가장 협조를 잘할 수 있는 시간을 선택하세요.”
“거부하면 다투지 말고 기다렸다가 시도한다.”
“민감하게 반응하지 말고 ”
“강요하지 말고”
문장 안에는 나와
네가 있다. 돌봄을 받는 어르신과 돌봄을 제공하는 돌봄 자가 있다는 것이다. 주체와 객체가 바뀌지 않아야 한다.
돌봄의 주체는 받는 사람이다. 그런데 우리는 돌봄 자를 주체로 놓고 착각하며 돌봄을 할 때가 있다.
치매 대상자의 옷 입기 돌봄을 할 때 기억해야 할 내용이 있다.
“앞뒤를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뒤바꿔 입어도 무방한 옷을 입게 한다.”
세상에 이런 옷이 몇 개나 있을까? 난 지금까지 살면서 니트 한 장 외에 앞뒤가 바뀌어도 무방한 옷을 만나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 말이 품고 있는 의미를 찾아보기 시작했고 지금은 이렇게 바꾸어 설명한다.
“앞뒤를 구분하지 못하고 입었다면 불편함의 주체가 누구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어르신이
불편해하지 않으면 뒤바꿔 줄 이유는 없습니다. 뒤바꿔 입고 있는 어르신을 바라보는 내 눈이 불편했던 건 아니었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돌봄 행위를 하며 내 눈에 불편함이
찾아온다면 그때는 한 번 멈춤을 해보자.
불편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잘 파악한 후에 해도 될 일이니까.
오늘도 우리 집 막둥이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뒤 바뀐 옷과 신발을 신고 활짝 웃고 있다.
난 이 모습을 보며 치매 어르신의 얼굴도 상상한다.
내가 돌봄 자인 요양보호사를 양성하는 강사지만 언젠가는 나도 대상자가 되어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때 난 이렇게 행복하게 웃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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