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이유 없는 일에 마음이 간다

방향도 이유도 없는 손끝의 기록

by 서녘

요즘 나는 글을 쓰는 이유를 모르겠다.


어떤 날엔 글이 쓰고 싶어서 쓰고,
어떤 날엔 그냥 손끝이 저절로 움직인다.


처음엔 기록을 남기고 싶어서 시작했지만,


그 목적은 어느새 희미해졌고

지금은 그냥 ‘쓴다’는 행위만 남았다.


처음엔 나도 이유를 찾으려 애썼다.


“이 글을 왜 쓰는 걸까?”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일까?”

“앞으로 무언가가 되기 위해서일까?”


하지만 그런 질문에 답을 내리지 못했다.


이유는 점점 중요하지 않아졌고,

중요한 건 그냥 쓰고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아무 이유 없는 일이라는 게

처음엔 조금 불안했다.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내가 하는 일이 가치 없어 보일 때가 많았다.


누군가에게 보여주지도 않을 글,

목적 없이 흘러가는 문장,
어디에도 닿지 않을 생각들.


이런 것들을 쓸 때마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의심이 찾아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글일수록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읽으면 마음이 오래 남았다.


의도하지 않고 쓴 문장이

오히려 나를 가장 잘 설명하고 있었고,


어딘가 갈피 없는 글들이

지금의 나를 제일 정확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아무 이유 없는 일들이 결국 나를 만든다는 것을.

사람은 이유를 찾아야만 안심한다.


왜 시작했는지,

왜 이 길을 걷는지,

왜 지금 이걸 하는지.


하지만 그 이유가 너무 분명해지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식는다.


정답이 보이는 일은 오래하지 못하고,

끝을 알고 있는 길은 금세 지루해진다.


글쓰기도 그렇다.


무엇을 위해 쓰는지 모르고 쓰는 시간,
그저 감정에 이끌려 쓰는 문장,


하루를 끝내며 적어보는 짧은 생각들.


그것들은 대부분 처음엔

하찮고 쓸모없어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 모든 것들이 모여 내가 되고 있었다.


어쩌면 인생에서 진짜 중요한 것들도

그런 것들일지 모른다.


분명한 이유가 있어서 하는 일보다,


이유를 설명할 수 없어도 멈출 수 없는 일.


아무 목적도 없는데 자꾸 마음이 가는 일.


그런 것들이

결국 가장 깊은 곳까지 나를 데려간다.


나는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글을 쓰는 동안,

내가 쓰는 게 아니라

글이 나를 써내려가는 것 같다고.


손끝이 머리보다 먼저 움직이고,

생각보다 감정이 먼저 흘러간다.


그럴 땐 방향이 없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무엇을 향해 가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무의식적인

움직임 속에서

나는 오히려 나 자신을 마주한다.


글을 쓴다는 건 결국,

나를 계속 마주하는 일이다.


의식적으로 쓰려 하면 말이 막히고,
잘 쓰려 하면 오히려 아무것도 쓸 수 없다.


그저 쓰겠다는 마음만 남았을 때,

문장은 저절로 나온다.


그리고 그 문장이

어디로 갈지 모른다는

사실이 오히려 안심이 된다.


어떤 날은 한 문장도

쓰지 못한 채 하루가 지나간다.


어떤 날은 글이

쏟아지듯 흘러나오기도 한다.


그 모든 시간들이 합쳐져서

내 글의 세계를 만든다.


생각해보면 삶도 똑같다.


모든 날이 중요한 건 아니지만,

모든 날이 필요하다.


쓰지 못한 날도,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던 시간도,


결국엔 다 내 안의 한 조각이 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쓴다.


무엇을 쓰는지 모르겠고,

어디에 닿을지도 모르지만,


그저 이 행위 자체가

나를 앞으로 이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쓰는 동안 나는 멈춰 있지 않다.


한 글자 한 글자가 내 안의 풍경을 만들어간다.


아무 이유 없는 일들이 결국 나를 만든다.


아무도 모르는 순간들이 쌓여서 내가 된다.
쓰는 이유를 몰라도 괜찮다.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오래 쓸 수 있다.


끝을 모르는 길이라서,

오히려 더 멀리 걸어갈 수 있다.


아무 이유 없는 일들이,

결국 가장 멀리까지 데려다준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