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로 돌아오는 호흡에 대하여
오늘은 창문을 반쯤만 열었다.
닫아두면 공기가 막히고,
완전히 열면 바람이 너무 세다.
그 사이, 절반쯤
열린 창문을 통과해
들어오는 바람이
지금의 나에게는 알맞은 숨이었다.
커튼이 살짝 흔들리고,
공기가 느리게 흐르는 방.
이제는 이 정도의
움직임이면 충분했다.
이별 이후 처음으로
‘조용하다’는 말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 같다.
한때는 이 정적이
나를 삼켜버릴까 봐 무서웠는데,
지금은 그 고요 속에서
오히려 마음이 식고 있었다.
뜨거움이 식어야
비로소 제 온도를 찾는 것처럼.
커피를 내렸다.
매일 쓰던 원두였지만,
맛이 조금 달랐다.
예전보다 덜 쓰고,
향이 조금 더 부드러웠다.
아마 물이 달라졌거나,
내가 달라졌거나.
이제는 원인을 따질 필요가
없다는 걸 안다.
세상의 대부분은 몰라도
되는 일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싱크대 옆 작은 화분에 물을 줬다.
잎 끝에 맺힌
물방울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 순간, 괜히 가슴이 조용히 데워졌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만한 일도 아니지만
나에게는 충분한 ‘사건’이었다.
사소한 일에서
조금씩 살아 있다는 감각이 돌아왔다.
오후에는 바닥을 쓸었다.
먼지가 생각보다 많았다.
책장만 닦고 바닥은
대충 지나쳤던 날들이 떠올랐다.
먼지를 모으며 묘하게
마음이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생각의 조각들이 정돈될 때,
손끝의 움직임도 달라진다.
몸이 마음보다
먼저 균형을 찾는 순간이었다.
점심은 간단히 비벼 먹었다.
누군가와 함께 먹던 버릇이 사라지자
이상하게 음식의 맛이 또렷해졌다.
대화를 채우지 않아도,
조용한 식사에도 리듬이 있었다.
이제는 그 리듬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시장에 다녀왔다.
장바구니 안에는
과일 몇 개, 우유 한 통, 빵 하나.
이전에는 항상 ‘둘’을 기준으로
고르던 양이었다면,
이제는 ‘하나’의 감각이 익숙하다.
혼자라는 건 때로 단순하다는 뜻이었다.
가볍게 걸을 수 있고,
집에 돌아와도 모든 게 제자리에 있다.
그 단조로움이 평화로웠다.
저녁 무렵, 창가에 앉았다.
햇빛이 기울며
방 안이 천천히 어두워졌다.
나는 불을 켜지 않았다.
어둠이 스며드는 모습을 그대로 두었다.
예전에는 모든 걸
환히 밝혀야 마음이 안심됐는데,
지금은 어둠이 있다고 해서
무섭지 않았다.
빛이 꺼질 때
비로소 보이는 모양들이 있었다.
그건 내 마음의 모양과 닮아 있었다.
가끔은 여전히
그 사람의 이름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제는 심장이 빨라지지 않는다.
그저 오래된 노래처럼,
처음 들었을 때보다 작게 들린다.
그 소리가 아직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이제는 나를 괴롭히지도 않는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며 문득 깨달았다.
나는 여전히
슬픔의 한가운데 있지만,
그 슬픔이 더 이상
나를 정의하지는 않는다.
나는 그 안에서 밥을 먹고,
걸어 다니고, 웃을 수도 있었다.
슬픔과 삶이 함께 존재하는 법을
조금씩 배우는 중이었다.
불을 끄기 전에 메모장에 한 줄을 썼다.
“창문을 반쯤만 열어두었다.”
긴 설명은 덧붙이지 않았다.
언젠가 이 문장을 다시 읽게 된다면,
나는 오늘의 공기와 커튼의 움직임,
방 안의 느린 온도를 함께 떠올릴 것이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완전히 괜찮아진 것도,
완전히 멈춘 것도 아니다.
그냥 숨이 조금 덜 막힌다.
그게 오늘 내가 얻은 변화였다.
바람이 드나드는 창문 사이로
조용한 온기가 내 안에 스며들었다.
그 온도 하나면, 오늘은 괜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