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것들을 바라보던 시간
언제부턴가 나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 되었다.
대화가 사라진 자리에서는,
공기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물컵을 내려놓을 때 어떤 울림이 나는지를 유난히 크게 느꼈다.
이별 이후의 방은 너무 조용했다.
처음엔 그 고요가 참 낯설었다.
누군가의 웃음이 배어 있던 공간이
이렇게까지 공허해질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내가 앉아 있던 자리에 아직도
그 사람의 온기가 남아 있는 듯했고,
커튼 사이로 바람이 드나드는 소리만이
그 방 안의 유일한 움직임처럼 느껴졌다.
나는 괜히 컵을 닦고,
서랍을 열었다 닫고,
전등 스위치를 몇 번이나 눌러보았다.
무언가가 여전히
‘살아 있는 듯’ 느껴지길 바라면서.
하지만 아무리 그 자리를 채워보려 해도
결국 남는 건 ‘없음’의 감각이었다.
이별은 그런 거였다.
누군가를 잃는 일이라기보다,
그 사람이 차지했던 소리의
자리가 비워지는 일이었다.
말소리, 웃음소리, 전화벨,
그리고 그 사람이 내 이름을 부르던 소리.
그 모든 게 하나씩 사라질 때마다
내 마음의 온도도 조금씩 내려갔다.
그 차가움이 꼭 나쁜 건 아니었다.
그저 조용했다.
불 꺼진 방 안처럼,
누군가 떠난 뒤에도 계속 흘러가는 시간처럼.
하루는 그렇게 갔다.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나는 마치 같은 하루를 복사하듯 살았다.
새로운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전화도 오지 않았으며,
식탁 위에 놓인 컵은 매일 같은 자리에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커피를 마시다 문득
그 컵을 내려놓는 순간이 있었다.
그 소리가 이상할 만큼 선명했다.
딱, 하는 작은 울림 하나가
방 안에 가만히 번졌다.
나는 그 소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물은 이미 다 식어 있었다.
김도, 향도, 따뜻함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차가움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편안했다.
불안도, 미련도, 잡념도
그 식은 물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그때 알았다.
사랑이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은
기억을 잊을 때가 아니라,
그 기억을 바라보는 마음이 조용해질 때라는 걸.
그 사람의 이름이 떠올라도
이젠 가슴이 아프지 않았다.
목소리를 떠올려도 울지 않았다.
그저 오래된 사진처럼,
빛이 바랜 장면을 보는 기분이었다.
슬프지 않고, 다정했다.
나는 식은 물을 천천히 들여다봤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그 ‘없음’이 이상하게 나를 안심시켰다.
사랑은 그렇게 식어가는 게 아니라,
조용히 제 온도를 찾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날 이후로 나는 가끔,
컵을 내려놓을 때의 그 소리를 떠올린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나는 그 소리가,
이상하게도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