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천천히 나를 따라오기 시작한 날
그날은 이상하리만큼 평범했다.
정확히 말하면, 평범함이 낯설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서로의 이름을 부르던 사람이
이제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내 하루에서 사라져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아직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마음이 현실보다
한참 뒤에서 걷고 있었기 때문이다.
습관처럼 눈을 떴다.
불빛이 커튼 사이로 스며들고,
머리맡 휴대폰에는 알림이 하나도 없었다.
그걸 보고도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괜히 물 한 잔을 마시고,
카톡창을 열었다 닫았다.
손끝이 그 사람의 이름 위에 머물렀지만,
눌러보지는 못했다.
그게 어쩐지 마지막 방어선 같았다.
이별이라는 단어를 이해하기까지는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누군가가 떠난다는 건,
그 사람이 내게서 사라지는 게 아니라
나의 습관에서
천천히 빠져나가는 일이었다.
하루 세 번쯤 하던 연락이 사라지고,
함께 듣던 노래가 낯설어지고,
같이 가던 길이
더 이상 발걸음을 붙잡지 않았다.
그런 사소한 것들이 하나씩 사라질 때마다
나는 조금씩 현실에 가까워졌다.
그래도 여전히 마음 한쪽은 버티고 있었다.
‘이건 잠시일 거야. 다시 돌아올 수도 있잖아.’
그 희미한 기대는
마치 꺼지지 않는 조명처럼 남아 있었다.
그 빛 아래에서 나는 며칠을 더 살았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숨을 쉬었지만,
그 모든 동작이 어딘가 흐릿했다.
어느 날은 창문을 열고 한참을 밖을 봤다.
햇살이 따뜻했는데,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이상했다.
내 안에 무언가 비워진
자리가 분명히 있었는데,
그 빈자리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그냥 그대로 두었다.
그게 나를 아프게 하더라도,
비워둔 채로 두는 게
지금의 나로선 최선이었다.
점점 하루가 정리되기 시작했다.
연락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말하지 않아도 되는 감정.
그런 것들이 쌓이자
조금은 견딜 만했다.
그날 저녁, 문득 깨달았다.
이별이란 건 한 순간의 사건이 아니라
이런 ‘아무 일도 없는 날들’을
견디는 과정이라는 걸.
슬픔은 소리 내 울 때 오는 게 아니라,
모든 소리가 사라진 자리에서 천천히 스며드는 거였다.
그날 밤, 불을 끄고 누웠다.
방 안이 너무 조용해서,
내 숨소리가 낯설게 들렸다.
그래도 이상하게 편안했다.
내 안의 무언가가
서서히 현실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건 완전한 수용도 아니고,
완전한 체념도 아니었다.
그저 ‘이제는 이대로 살아야겠다’는
조용한 동의 같은 것이었다.
이별은 그런 식으로 내게 다가왔다.
폭풍처럼 밀려오지 않았고,
그저 아무 일도 없는 하루 속에서
조금씩 자리를 잡았다.
그날 이후 나는 깨달았다.
사람이 떠난 자리는
생각보다 오래 울리지만,
결국 그 울림도 서서히 잦아든다는 걸.
그리고 그 잦아드는 소리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현실의 온도를 느꼈다.
차가웠지만,
이상하게 살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