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p 여자의 첫 연애

Prologue (2)

by 김지투





수능이 끝나 밥 먹고 자는 시간 외에 운동만 하는 시즌이 시작되었다. 시즌에는 아침 10시부터 저녁 8시-9시까지 체육관에 모여 운동을 한다.

운동‘만’ 한다.

아 밥 먹고 낮잠 시간도 잠깐 있다.

체육관에 들리는 소리는 ‘매트 펴라. 장비 세팅해라. 누구 엄살 부리지 말고 무게 올려라 ‘ 하는 선생님의 명령소리. 찰그락 - 하는 쇳소리. 휘슬소리. 점프하고 착지하는 쿵 소리, 급정지에 운동화 고무바닥과 바닥의 끼긱대는 마찰소리. 누가 싯업대에 머리 박는 소리이다. 싯업은 소리 안 내고 유연하게 해야 잘하는 건데 … 항상 누군가는 열심히 머리를 박아댄다.

펑-하고 터지는 패딩 소리. 땀 빼려고 껴입은 패딩이 터진다. 그러면 첫눈 잡겠다는 사람들처럼 날아다니는 오릿털을 잡으려고 허우적거린다.

’ 푸후우ㅜ‘‘흡‘!’하는 밥솥이나 애니멀틱한 저마다의 기합소리도 빠지지 않는다. 냄새는 먼지냄새 쇠냄새 땀냄새… 아무튼 좀 구린내다.


하지만 그에게서는 포근한 섬유유연제 냄새가 난다.

싯업 시범을 보일 때면 쿵 소리 없이 휘리릭 한번.

가볍고 유연하게 몸통이 말린다.

애니멀틱한 기합소리 대신 ‘후~’ 한번 차분히 숨을

내뱉는다. 장비나 매트를 옮길 때도 사자가 먹이 물고 가듯 질질 끌지 않고 몸을 꼿꼿이 세워 조심히 들고 조심히 옮긴다. 미어캣처럼.

동물원 같은 이 공간에서 금방 흥분하고 소리 지를 만도 한데, 그는 항상 잔잔하다.




이런 점 때문에 나는 그가 탐난다. 그는 내가 가지지 못한 섬세함과 잔잔함을 가졌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기에 그는 남자치고 꽤 예쁜 얼굴이다. 난 그냥 남자 같은 남자가 좋은데. 그래도 뽀얀 피부에 빨간 입술은 그의 섬세한 제스처와 잘 어우러진다. 예쁜 남자 안 좋아한다는 나지만 주변에서 자기네들끼리 ‘ 저 오빠 잘생겼다 내 이상형이다 시즌 끝나면 술 먹자고 해봐라.’ 하니 나도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저 오빠랑 제일 먼저 가장 친해져서 다른 애들이랑 못 놀게 해야지 라는 생각밖에.

그 이후로 나는 그에게 열심히 말을 걸고 열심히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복도에서 마주치면 손가락으로 쿠쿠 찌르고 킥킥 웃었다. 그가 담당하는 종목을 할 때는 ‘이번엔 제대로 못 봤으니 한 번만 더 시범 보여 달라’ 하고는 움직이는 그의 몸을 마음껏 감상했다.


그의 피부는 하얗고 머리는 결이 좋은 갈색이다. 골격은 적당히, 근육은 두껍지 않은 얄상함이다. 어깨가 두툼하지는 않았지만 벌어져 있고 허리는 얇다. 손목과 발목 두께가 적당하고 손크기와 손가락도 그에 알맞았다. 그의 움직임은 삐걱대는 곳 없이 자연스럽고 반려동물미가 있다. 견, 묘가 아닌 강아지나 고양이이다.


점심시간에는 그보다 먼저 밥을 먹고 (보조강사들은 학생들보다 30분 정도 늦게 밥을 먹으러 간다.) 학원 앞 던킨에서 도넛을 사 와서 그를 약 올렸다. 아직 밥을 못 먹어 배고픈 그에게 한 입 준다만 다 하다가 그가 보는 앞에서 다 먹고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낮잠을 자러 갔다. 그리고 다음날에 맛있어 보이는 도너츠를 몇 개를 사다 주고는 한 입씩 뺏어 먹고 그를 보며 미소 지었다.

그는 학원에서 내가 유일하게 오빠라고 부르는 사람이었다. 한두 살 차이 나는 보조강사여도 선생님은 선생님. 다른 선생님들에게는 꼬박꼬박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깍듯하게 ‘넵.’으로 대답하면서 그에게는 단 한 번도 선생님이라고 하지 않았다. ‘넵’ 대신 ‘응 알겠어’로 대답했다. 내 장난들이 통했는지 낯을 가리고 조용하던 그가 언젠가부턴가 먼저 와서 말을 하고 편하게 대해주기 시작했다.




나는 운동을 잘한다. 하지만 그날은 컨디션 난조로 평소보다 기록이 10cm 이상 안 나오는 날이었다. 그는 내가 240cm를 넘으면 케이크를 사주겠다고 내기를 걸었다. ㅡ 보통 체육대학 실기 제자리멀리뛰기 만점이 240cm이다 ㅡ

이 공간의 사람들은 내기에 환장한다. ’ 공 몇 미터 넘게 던지면 몬스터 산다, 던킨 산다, 맥날 산다 ‘ 하는 말 한마디에 눈에 불을 켜는 사람들이다.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와 내 케이크 내기는 좀 달랐다.ㅡ 그와 나는 그닥 내기에 환장하거나 인싸 타입이 아니다 ㅡ


“ 형이 내기 건다고? 웬일이야?’ ‘형이 누나한테 케이크 산다고? 진짜 둘이 뭐 있지? ‘‘

술렁술렁했다.

“ 뛰면 케이크 진짜 사주게요?”

“ 응응! 힘내라고 거는 거야! ”.


난 그의 내기를 듣고 나서 숨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몇 분 후에 바로 240cm를 뛰었다. 사실 왜 나한테 내기를 고작 240cm밖에 안거냐 하고 싶었지만 ㅡ 나는 240cm를 그닥 어렵지 않게 뛰었다 ㅡ

그날따라 뭔가 허세 같아서 말을 참았다. 그에게 운동 잘하기만 하는 학원 여자애가 아니고 싶었고, 케이크 같은 디저트에 환장하는 평범한 여자애이고 싶었다.




여느 때처럼 학원에서 운동하던 중 그가 보이는 곳에 앉아 쉬고 있었다. 그는 아방한 파란 맨투맨을 입고 있었다. 옆에 앉아있던 친구는 나한테 갑자기 질문했고 나도 갑자기 대답했다.


“너는 첫 경험 누구일 것 같아?”

“응? 저기 파란 옷 입은애 아닐까?”

“ㅋㅋㅋ 뭐야 뭐 있지?”

“아니. 희망사항”.


대답하고 스스로 의아했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는가. 보통 남자애들이 이러지 않나. 나 여잔데, 변태인가. 나 쟤 좋아하나.




가나다군이 시험이 모두 끝나고 드디어 다른 대학입시생들보다 3달 늦은 자유를 맞이했다. 그와 만나기로 한 날은 나군 학교의 합격발표가 나오는 날이었다. 남는 점수로 쓴 학교라 루즈하게 합격결과를 확인했다. 그리고 그와의 약속장소인 시계탑으로 향했다.


‘나군 붙었어?’

‘네!’

‘축하해~’


하고 나는 긴장모드로 돌입했다.

그와 나는 술집에 갔다. 둘이서 청하 반 병과 사이다 두 캔을 마셨다. 그리고 산책했다. 판교에서 분당동까지. 약 두 시간이 걸려 우리 집 앞에 다 왔을 즘에 그는 나에게 물었다.


“나 어떤 거 같아?”


왜 물어봐? 어떤 측면에서?라는 말이 입 뒤로 올라왔다. 그래도 말참고 생각을 해보자. 하였지만 내 입이 먼저 말했다.


“좋은데? 안아줘.”


그다음 날 연필꽂이 맨 밑에 깔려있던 립밤은 그의 것이 되었고 나는 그가 립밤을 다 쓰면 리필해 주는 사람이 되었다. 그와 나는 먹고 자고 만났다. 아마 행복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함께 보내는 사계절이 한 바퀴, 나는 내 동네와 학교에서, 그는 북한이 코앞에 보이는 산동네에서 보낸 사계절이 한 바퀴 돌았다.

또다시 봄 여름을 함께 보낸 후에 우리는 헤어졌다.





라고 쓰고 싶다. 감상적이게.

하지만 그와의 연애는 마냥 예쁘고 감상적이지만은 않았다. 이 감정이 무엇인지는 이어지는 글을 보자.

그는 나를 정말 많이 좋아해 주었다. 그리고 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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