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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년 Feb 07. 2022

결혼준비의 시작

1. 양가부모님께 인사드리기


나에게는 만난지 햇수로 7년, 결혼한지 1년이 되어가는 동갑내기 남편이 있다. 웅구로 칭하겠다.

친구의 소개로 알게되었는데 만나면 만날수록 좋아지는게 신기했다.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대학교 CC로 시작해서 서로의 취준생 시기, 퇴사, 이직 등을 함께 겪어오며 20대의 대부분을 같이 보냈다.

그 과정의 8할은 중장거리 연애였고, 취업 후 차를 사기 전까진 항상 KTX역과 지하철역 근방에서 데이트를 하곤 했다.

서울-부산의 장거리까진 아니었지만 매번 도시 이동을 해야만 만날 수 있었고, 힘든일이 갑자기 생겨서 얼굴을 당장 보고싶을 때 바로 만날 수 없다는 등의 이유로 서로가 지쳐가고 있었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면 나는 남자친구가 있는데도 동네에서 저녁에 편하게 만나는 커플들이 너무 부러웠다.

그러던 찰나, 남자친구였던 웅구가 정규직이 되었고 이제는 저 도시에서 정착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내가 먼저 결혼을 추진하게 되었다. 그때가 2019년 말, 내가 28살이었으니 요즘으로 치면 빠른 편이긴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웅구의 반응이 적극적이지 않았다.

아 내가 결혼할 정도로 좋지는 않은건가? 하는 마음에 섭섭함이 가득 밀려왔는데, 알고보니 어머님께서 아들의 사주 등을 이유로 당장의 결혼 진행을 탐탁치 않아 하시는거였다. 그리고 그때의 웅구는 부모님과의 갈등을 만들고 싶지 않아 했다. 그래서 대화도 피했었기에 자세한 부모님의 의사는 알 수 조차 없었다.

나와 부모님의 관계는 독립적이고 서로 간섭하지 않으며 경제적으로도 알아서 하자는 주의인데 반해, 웅구는 부모님께 나에 비해 자주, 기계적으로 안부 연락을 드렸고 경제적으로 약간의 간섭이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결정할때 나는 스스로 결정하고 부모님께 통보하는 식이라면, 웅구(보다는 사실 시부모님 생각)는 조언을 구하거나 허락을 받아야한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양가 모두 경제적으로 넉넉치 않았던 것을 제외하곤 각자 가정의 분위기나 의사결정 방식이 너무 달랐던 것 같다.


그래도 결혼 인사를 드리면 마음이 바뀌실 줄 알았다.

그런데 뵙자마자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결혼은 웅구 서른살 되는 해에 하라고 통보를 하셨다. 웅구가 빠른 년생이라 웅구가 서른살이면, 난 서른한살.. 2022년 초를 말씀하시는 거였다.

가장 주된 이유는 사주였다. 사주에서 무조건 서른살 넘어 결혼하라 했다며, 웅구가 어릴때부터 줄곧 생각해왔다고 하셨다.

그러고도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가 힘든 이유를 여러가지 대셨다. 며느리 오기 전에 리모델링을 해야하고, 그냥 우리 아들 서른전까진 끼고 살고 싶기도 하며, 우리 가족을 보러 자주 오지도 않았지 않니, 더 친해질 필요가 있다, 정 그러면 혼인신고부터 하고 같이 살아라, 왜 너희가 먼저 결혼식 하고싶은 시기를 정해놓고 어른에게 통보냐 등의 말씀들..

내 귀에는 다 내가 마음에 안든다는 식으로 들렸다.

아니, 본인의 귀한 아들과 결혼할 이 세상의 어떤 여자도 마음에 들지 않으셨겠지.

이유가 뭐가됐건, 결혼 당사자는 신랑 신부이고, 우리가 결혼하고 싶은 시기가 있는데 저런 것들을 준비하시는데 무려 3년이란 시간이 필요하신가 싶었다. 심지어 아버님은 옆에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듣고 계신걸까 궁금하기도 했다. 어머님이 이 집안의 서열 1위라는게 느껴졌고 나를 이 공간에 앉혀놓은 남자친구가 너무 답답해졌다.

심지어 경제적으로 의존해야하는 상황도 아닌지라 더욱 답답했다.


저때부터 내 인생 최대 암흑기가 왔다고 느꼈다. 전체적 인생 계획이 틀어져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 동안 참으로 많은 지인들이 나를 결혼식에 초대했고 내 여동생, 심지어 사촌동생들도 나보다 먼저 결혼식을 올렸다. (요즘 결혼안한다고 하는데 내 주변은 전혀 그렇지 않다.)

결혼식 참석할 때 마다 무슨 감정인지 모르겠는데 그렇게 눈물이 난다. 남편도 항상 서글퍼진다고 했다.


헤어져야할까 생각도 했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 제 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헤어지라고 쉽게 말하겠지만 남편이 너무 따뜻해서 그럴 수가 없었다.


사실 그 사이에 남편은 부단히 노력을 했다. 남편이 장문의 카톡을 남기고 전화를 드려보고 찾아가서 대화도 시도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액션을 취한 뒤 돌아오는 것은 극도의 스트레스와 억울함 뿐이었다.


3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혼인신고만 하고 산지 1년이 다 되어가고, 결혼식은 아직 올리지 않았다.

나는 그 때 이후로 시가 식구들을 만난 적이 없다. 솔직히 지금 나의 삶은 평화롭고 행복하다.

가끔은 그런 생각도 한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지만 고부 갈등이 아직 만연한데 나는 시어머니와 안 보고 사니 행운인걸까? 하는 생각.

다시 잘 지내기로 한다면 어머님을 뵐때 마다 내가 그 동안 느껴왔던 원망, 억울함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어떻게 다스릴 수 있을까, 잘 다스려질까? 하는 생각.

그냥 무조건적으로 그 분을 이해하기로 하고 앞으로 일어날 좋은 일들만 생각하기로 하면 내 삶은 정말 행복할 수 있는걸까? 하는 생각.


남편이 2년간 부모님과 교류가 없다가 이번 설에 혼자 다녀왔다. 결혼식을 원하는 대로 진행하라 하셨다고 한다. 이번 해에는 작년까지와는 다른 일이 펼쳐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동안 남편의 멘탈도, 나의 멘탈도 많이 강해지지 않았을까 싶은데 모르는 일이지. 무장을 단단히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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