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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Apr 27. 2022

리더 할 사람?

 지난주, 사내 인트라넷 공고로 '본인 상' 글이 올라왔다.

참 안타깝다. 비록 얼굴도 모르고, 뭐하시는 분인지 모르지만, 한창 열심히 일하실 나이에 돌아가셔서 이런 공고 글을 볼 때마다 새삼 건강한 내 몸에 감사하며 산다.


 사실 그냥 본인상이 있었구나 하고 평소와 같이 무심하게 일을 하다가, 식사 후 사내 게시판 글을 보는데 아까 본인 상을 당하신 분이, 그룹장 직위, 보직간부셨던 것을 알게 되었다. 글쓴이 께서 함께 일하시던 분이시거나, 알던 분이셨나보다, 고인은 평소 보직간부 다는 것을 몇 번이고 거절하셨다고 한다. 이유야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권한은 없고, 책임만 있는 위치"이지 않을까라고 생각이 든다.

 어찌 되었건, 고인이 되신 그 그룹장께서는 직위에 오른 후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던 모양이다. 물론 직위를 달아서 그 원인으로 유명을 달리하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고인의 업무 스트레스를 더 가열하게 만들었을 것으로 나는 확신한다.


 "지난번 본인상 당하신 그분이.. 직위 다신지 한 달 정도 되신 분이라고 하네요. 업무 스트레스 이야기도 있던데.."

 "솔까말, 누가 그룹장 달고 싶어 하겠어요. 부하직원들에게 싫은 소리 한번 못하는 문화인데..."

 "진짜 요새는 부장 진급도 다들 마다하고, PM도 하기 싫어하고, 부서장도 기피하고... 참 어려워지네요"


 윗 문단에서 언급한, '본인 상'과 관련된 내용에 대해 나와 함께 일하는 또래 동료들과 나눈 대화이다. 상사들과 나눈 대화가 아닌 점에 주목하자. 그만큼 이제는 조직의 리더라는 자리가, 영광스럽고 누구나 달고 싶어 하는 자리가 아니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회사의 리더는 그저 후배들에게 기분 나쁘지 않게 이야기해주는 스킬이 많은 사람이 인정을 더 받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입사 초창기에는 매우 엄하게 혼도 내고, 많은 부분들을 질책하면서 성장시켜 주시는 선배들이 많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그런 분들은 주변에 남지 않고, 그저 '허허허' 좋은 이야기 해주는 선배들만 남게 된 거 같다.


 개인적으로는 '서로 상처될까 봐 상대방 눈치 보는 수평적인 문화' 보다는, 조직 구성원들의 동의를 어느 정도 구했다는 가정 하에, '눈치 보지 말고 할 말은 하는 문화'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말로는 수평적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함께 일을 하는 동료들의 눈치를 보며 자기 평판을 관리하는 것일 뿐, 이미 마음속으로는 안 좋은 맘들을 다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다. 화를 내는 것이 아닌 토론을 자주 하며,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일할 때 오해를 줄여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 관리만 해도 이토록 어려울 텐데, 보직간부는 성과도 내야 한다.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결국 하기 싫은 일을 누군가에게 시켜야 하는데,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잘해주리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결국 구성원들의 눈칫밥을 먹으며 할 말 못 하는 리더로서 가슴앓이를 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일을 시켜도 원하는 결과가 나온다는 보장은 없다. 참 그래서 리더라는 자리는 어렵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내가 일하면서 봐온 보직간부에 대한 생각이다. "권한은 없고, 책임만 있는 위치"


 "아 귀찮아 죽겠네, 오늘 회사에서 리더 직무자 관련 온라인 교육한다는데"

 "엥? 그러면 또 '동료들 마음 잘 읽어라' '상처받지 않게 잘 타일러라', '역지사지해라' 이런 거 가르치는 거 아녀요?"

 "수업 듣고 진짜 그런 교육 하는지 알려줄게"


 내가 사 원 때 선임이시던 선배 동료와 나눈 이야기였다. 여담이긴 하지만 시간이 정말 빠르다. 이제 그분은 어느덧 부장 진급까지 2년 만을 남겨두고, 나 또한 예전 직급체계로는 1년만 더 있으면 차장 진급 연차다. 아직도 이분은 내 전화기에 'OOO 선임님'으로 저장이 되어있으신 분인데... 벌써 이런 교육을 들으시다니 시간이 참 빠르다고 생각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오후에 그 선배가 다시 나에게 말씀을 주셨다.

 "네가 한 말이랑 비슷하게 수업이 나오네 ㅋ"

 "거 봐요 ㅎㅎㅎ"

 

 리더가 아랫사람 눈치 봐서 어떻게 일을 하나 싶다. 분명 싫은 소리도 해야 하고, 억지로 끌고 가기도 해야 하는데... 점점 더 이런 소프트한 분위기로 가는 것이, 마냥 좋은 일일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아직도 잔존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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