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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Oct 27. 2021

빌려달라는 거야, 달라는 거야?

판단 불가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는 항상 없다" - <본인>

"종화야, T가 연락이 올 거야, 돈 빌려 달라고"

"얼마나 필요하다는데?" "한 200?" "세상에 뭔 짓거리를 하다가 그렇게 됐데...?" "나도 잘 모르겠어.."

친구 A와 카톡을 주고받았다. A도 오랜만에 연락이 온 거라 반가웠지만, '경고 카톡' 이였던 것이다.

'얼마나 급하면 그렇게 돈을 빌려 달라고 할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 또한 나의 단기 기억에서 사라진 채, 수일이 흘렀다.


"종화야, 나 T, 전화 가능하니?"

올 것이 왔다. 분명 돈 이야기일 거야... '그래 들어나 보자' 하는 마음으로 휴게실을 가서 연락처를 찾았다.

"아직 관계는 괜찮나 보다, 연락처가 내 폰에는 있네"  두두두두 두두두두 "어~ 종화야 잘 지냈어?" 무미건조하고, 목적을 뒤에 숨긴 피상적인 인사. "응, 나야 뭐 항상 그렇지, 왜?" 나는 시간 낭비하는걸 극도로 싫어한다. 요건만 다시 물었다. "어 다름 아니라... 돈 좀 10일 정도만 빌릴 수 있을까?" 그럼 그렇지... 나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다시 직접 들으면 기분이 더 안 좋아진다. "나 외벌이고.. 돈 없지, 너도 알잖니?" "그.. 치? 그래그래" "미안하다 T야" "아니야 아니야 괜찮아" "응 다음에 보자" 하고 통화는 종료되었다.


"경험이 있습니까?"

나는 정말 평범한 삶을 살아왔다고 느낄 때가 여러 번 있는데, 그게 바로 "돈 빌려달라는 친구"가 주변에 없다는 점이다. 결국 그런 요구를 하는 사람은 사업을 하거나, 배팅을 할 가능성이 많다. 나처럼 평범하게 직장 다니면서 "육만전자에 입 벌리고 기다린다" 하는 '배팅'의 수준과는 차원이 다른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결국 돈을 빌려 달라는 사람은 '무언가'를 한 거다. 그래서 손해를 보았거나, 불확실성에 배팅을 하는 것이다. 내 주변에는 그런 사람이 없기에, 브런치에서도 이런 글감을 갖고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맨날 벌어지는 일이었으면 '그러려니' 했을 테니깐 말이다.


"사람이 중요하다"

비슷한 경우가 약 5년 전에 있었다. 같은 대학 동기 B가 나를 비롯한 많은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수도 없이 카톡을 보냈고, 전혀 공감을 얻지 못했다. "B를 어떻게 믿어, 뭐 한 게 있어야 지, 맨날 뺀질나게 도망 다니고, 힘든 거 한번 한적 없잖아?" 이렇듯 '동료'평가가 제일 무섭다. B의 평판은 이미 '미꾸라지' 같은 사람이었고, 친구들은 그를 옹호하고 격려하지 않았다. T의 경우도 문득 생각이 났다. 항상 분위기 메이커에 밝고 상냥함을 지닌 친구였다. 그와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웃었고 즐거워했고 나 또한 그러했다. "아... 그땐 그랬지" 하며 생각이 짧게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안 받아"

다시 아까 T와 전화한 느낌이 생각났다. 목소리에서 힘없음과 지침이 간절히 느껴졌다. 비록 코로나 덕에  만난 지 꽤 오래되었지만 항상 모임에 나와 동기들에게 즐거움을 주던 T, 뭔가 짠했다.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졌다. 내 통장 잔고를 보려고 했다. 하필 무선 인터넷 데이터가 어제부로 소진돼서 1MB로 연결되는데 느려 터져 죽는 줄 알았다. "잔고-432,562원" 넉넉하진 않지만, 딱히 큰 일하지 않는 나에겐 부족하지도 않은 금액이다. 카카오톡을 클릭하여 T를 검색해 대화방을 열었다. 새 거였다. 대화 좀 할걸.... 나는 멋지게 5만 원을 송금했다. 읽음 표시 숫자 1은 바로 없어졌다. "종화야..." "나 이돈 안 받아, 빌려주는 거 아냐 주는 거니까 조금이라도 기운 내라" "종화야 내가 두배로 갚을게" "야 5만 원 두배로 갚으면 안 빌리는 게 낫지, 안 받을 거니까 기운 내라" 내가 봐도 폼생폼사였다. 폰 메모리를 아끼려고 프로세스를 지우려다가 나의 증권 앱을 켜보니 "잔고-372,562원"이라고 찍혀있었다. '나도 여유 있지는 않지만, 풋, 종화, 굿잡!'이라 속으로 이야기하며 자리로 돌아가 이슈 리스트를 살펴보며 업무를 했다... 그러게, 그 사이에 또 잊혔네... 단기 기억력이 이렇게 안 좋아 큰일이다. 이렇게라도, 강제로 대학시절 즐거운 추억속으로 시간여행을 시켜준 T에게 사의를 표한다.


"T야, 나중에 모임에서 큰 웃음으로 갚아, 괜찮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길"
내일도 태양은 뜰 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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