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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Aug 26. 2023

형님, 도박에 빠지면 인생 조져요

차 사장, 내가 한국 가면 바로 보내줄게, 응?

 몇 달 전이기는 하지만, 디즈니 플러스에서 방영한 <카지노>라는 드라마를 즐겁게 본 기억이 있다. 

사실 그 드라마의 메인스트림만 쫓아가면, 조금 숨이 막히고 너무 진지한 드라마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주인공과 <호구>의 스토리를 넣어 작품이 크게 무미건조하지 않게 만든 부분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극 중 <호구>는 중소기업 대표로 나오고, "매사에 신중"해서 본인은 절대 돈을 잃지 않고, 도박에도 빠져본 적이 없는 인물로 나온다. 

 주인공역을 맡은 최민식 배우는 그 만의 게임판에 이 <호구>를 밀어 넣어 결국 모든 재산을 다 탕진하게 만들고, 심지어 <호구>가 최민식 배우 탓을 하지도 않게 만드는 장면을 보고, 저게 나의 케이스라면 어떨까...? 나는 저런 상황에서 도박에 빠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에 대해 생각했었는데, 작품을 볼 당시의 내 생각은 [Nope]이었다. "절대 도박에 빠지지 않는다"라고 자신만만해하고 있었다. 


 이 근거 없는 자신감의 원천은, 나는 '시드머니'가 없기 때문에, 넣을 돈도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글을 끝까지 읽어보면 알겠지만, <호구>처럼 전재산 다 털릴정도로 심각한 상황까지 몰려 글을 작성하는 것은 절대 아니고, 결국 우리네 인생 모든 것이 [수업료] 지불 아니겠는가.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메가스터디 1타 강사에게 바치는 수업료 정도 떼이고, 이 '도박'판에서 나올 수 있었다.


경제적 자유(?) (brunch.co.kr)가 이 글의 첫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방금 내가 썼던 글을 보고 소름 돋았다. 이번에 문제 된 부분이 바로 <#도박==미국주식> 부분이기 때문이다.

저 글을 썼던 당시는 투자금 대비 큰 이득을 실제로 봤었다. (과거형인 게 슬프다)

 그래서 저때로 돌아간다면, 미국주식만 딱 털면 완벽했을 거 같다는 슬픈 생각에 방금 잠겼었다.


 그때 이후, 나는 유튜브를 통해 <서학개미>와 관련된 영상을 많이 찾아보게 되었다.

채권은 이미 수익률이 거의 정해져 있고(그만큼 안정적이라는 이야기), 연금계좌에 들어가 있는 ETF상품들의 경우 수익이 나더라도, 세금문제로 지금 당장 돈을 인출할 수 없으니 '재미'로만 보면 미국주식이 가장 즐거운 일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미국주식의 하락장이 이렇게 매운 할라피뇨 소스일 줄은 몰랐다는 것이었다.


 수익을 보고 난 뒤, 귀신같이 미국장은 상승기류에서 하락으로 변경이 되었다.(그걸 <호구>인 나만 몰랐다.)

나름 분할매수를 한다고 돈 2~3만 원씩 유명한 M7주식(Magnificant 7)에 대해 조금씩 하락할 때마다 넣곤 했는데, 시드머니가 슬슬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채권을 건드릴 수는 없으니, 결국 주식 포트폴리오중에 상승하던 주식들을 빼서, 하락하는 주식에 조금씩 넣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재앙의 시작이었다.


 7월과 8월이 되면서, 미국주식의 하락은 더욱더 가팔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재미로 돈을 벌기 위해 시작했던 주식이지만, 점차 미국 본장에 대응한다는 스스로의 명분하에, 새벽잠을 설치기 시작했다. 게다가 출근해서도 집중하기가 사실 어려웠다. 미국주식은 데 이마켓+프리장 등을 통해 사실상 '24'시간 동안 사고팔 수 있는 코인과 다를 바 없는 시장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나중에 나이 들어 폐지 안줏을려면... 투자를 해야지'라는 대의명분으로, 대형 기술주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했었다. 

 하락이 지속될수록, 몸과 마음이 점점 더 지쳐갔고, 가뜩이나 요새 회사에서도 하반기 업무를 위해 여러모로 할게 많은 상황에 더해, 근래 흥미를 갖고 하던 달리기, 그리고 주말 부업까지 곁들이는 와중에, 평일 새벽잠을 설치는 일이 비일비재 해지다 보니, 달리기를 많이 해 체력이 좋아졌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정신적으로 많이 피폐해진 거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후 추가된 나의 데일리 루틴이라면, 매일 10시 30분이 되면, 소파에 앉아 불을 끄고, 내가 산 종목의 추이를 보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건 완전 도박 중독자랑 다를 바가 없었네... 싶다. 

 


 이번주 목요일, 엔비디아라는 미국 최대 주도주의 실적발표일이 예정되어 있었고, 나는 이때 손해가 난 주식들의 이익률을 한방에 만회하리라 다짐하게 되었다. 미친 무빙을 통해 과감하게 채권을 팔아버리고, 그 돈을 모두 엔비디아에 매수를 했고, 정말, 물을 떠놓고 제사하는 심정으로 오르기만을 기원했다. 


 오, 정말 올랐다. 수요일 그렇게 매수한 엔비디아 주식이 목요일 데이마켓장까지 해서 총 10%의 이익이 나있던 게 아닌가? 그때 정말 끊었어야 했다.. 역대 최대실적이니 더 오를 걸로 스스로 배팅한 것이었다. 거기서 차익실현을 한 뒤, 다시 몇 퍼센트 이익 먹겠다고 들어간 게 화근이었다. 


 결국 그다음 날 이익분을 모두 반납했다. 게다가 나머지 들고 있던 주식들도, 모조리 다 떨어져서 주식창에는 빨간색이라고는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나마도, 더 손해 나기 전에, 몰빵 했던 엔비디아 주식을 빼서 조금이라도 막을 수 있었던 게, 다행스럽다고 해야 하나...?


 오늘 새벽, 정말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사실상 나에게 주어진 돈으로 풀배팅을 해봤고, 천당과 지옥을 오가며 얻은 이익은 없었다. 


(악) 차무식 : 형님, 형님 빚져서 하신 것도 아니잖아요. 그리고 조금 있으면 다 오릅니다. 제가 이번에 정말 재밌게 모실테니, 조금만 기다려 보시죠

(선) 차무식 : 형님, 도박에 빠지면 인생 조져요. 형님 거울 한 번만 보세요 이게 사람새낀가. 저는요, 형님 이렇게 망가지는 거 보고 싶지 않아요. 그만 좀 하세요 형님! 제발 좀!


 두 차무식이 내 마음속에서 저런 대사를 외치고 있었다. 진짜 둘 다 맞는 이야기였다.

내가 투자한 주식이 지금은 떨어져 있지만, 소위말해 <잡주>를 산건 하나도 없었기에 내 포트폴리오를 그대로 두면서, 남은 시드머니를 분할 매수를 한다면, 향후에는 반드시 이익을 가져갈 것이라는 건 지금도 믿음에 변화가 없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새벽까지 나의 긴장이 올라가면서, 정말 [쉴 시간]이 사라지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이것은 결국 '기분이 태도가 되는' 결과까지 이어져 그다음 날 업무에도 슬슬 지장이 가는 모양새였다. 


"여보, 나, 주식 다 정리하려고, 여보계좌로 다 밀어 넣으려는데"

"오... 잘 생각했어. 안 그래도 힘들어 보이더구먼, 많이 잃었니?"

"음.. 조금 잃었고, 앞으로도 더 잃을 거 같은데... <나 스스로가 통제가 안돼> 이미 빠져버렸나 봐. 손 털어여겠어 여보"

"잘 결정했어. 쉽지 않을 텐데 본전생각하면"


 오늘은, 고객사들 대부분이 하루 쉬어가는 날이라, 나 또한 그간 적립해 둔 시간을 활용하여 와이프와 오전에 데이트를 하자고 이야기했었다. 안타깝지만 이 데이트의 제안 시점은, 주식이 올랐던 그 시점이었다. 


 그 이야기를 하고, 지하철에서 모두 매도버튼을 눌렀다. 이미 큰 메인스트림 주식은 정리가 되어있어서 크게 타격은 없었지만, 잔잔바리들이 몇천 원에서 몇만 원 사이로 손해가 났었지만, 그냥 모두 매도버튼을 눌렀다. 


"주식을 다 매도하고 청산버튼을 눌렀는데, 금액이 아직 들어오지도 않은 게 있어서 이건 다음 주까지 줄게"

"재주도 좋다... 나 몰래 이런 돈 어떻게 만든 거야? 월급은 거의 다 갖다 준 걸로 아는데..."

"뭐... 주말에 부업하고, 월급 중에 일부를 또 안 쓰고 모아서 여기다 투자하긴 한 거야"

 

 와이프는 내가 굴리던 시드머니를 확인하더니 조금 많이 놀란 모양이다. 그렇게까지 많진 않았는데, 그래도 내가 월급의 대부분을 생활비로 가져다 준걸 알고 있어서, 이 돈이 어떻게 모였는지는 꽤나 놀랐던 모양이었다. 


 나는 분명 어제까지 <도박 중독>이었다. 잠깐 해본 결과 느낀 바로는, 도박중독은 끊을 수가 없다. 스스로 말이다.

내가 그 돈을 지금도 보유하는 결정을 했다면, 아마 또 더 많은, 이번엔 <대학교 한 학기 등록금> 수준의 수업료를 지불하고 한탄했을지도 모르겠다. 


 분명, 와이프는 투자를 잘하지는 못한다. 예금 적금 위주로 움직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들처럼 빠르게 재산을 증식하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돈을 잃지는 않게 되겠지.


 백세시대, 재테크가 필요하다며 언제나 투자해야 한다며 목소리 내는 유튜브 채널들의 의견들과는 정 반대의 선택을 나는 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내가 나의 그간 운영되던 시드머니를 모두 와이프에게 보낸 이유는, <도박 중독>에 빠졌던 '나'를 위함이다. 이건, 내가 스스로 끊을 수가 없는 수준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행동의 결과로 인해 지금 자정이 될 무렵까지 브런치를 쓰고 있는 내가 <행복>하다.

아마 어제까지는 불 꺼진 거실방 소파에 앉아 음침하게 스마트폰을 보며 장탄식을 하고 있었을 나였다.

이렇게 소중한 일상을 다시 찾게 되어 지금이 더 기분이 좋은 거 같다.


 재테크도 중요하지만, 나의 건강이 더 중요하다. 잃은 수업료는 다시 어떤 식으로든 메우면 되고, 남들 재산 증식 속도에 비하면 더디겠지만, 그럼에도 앞으로는 <잃지 않고> 한 발씩 나아갈 생각이다. 


 결국 내 마음속에는 이렇게, 오늘에서야 악한 차무식은 사라지고, 선한 차무식만 남게 되었다.


"아이고, 우리 형님 이제야 철들었네. 야 얘들아, 형님 가신단다. 마지막으로 공항 모셔다 드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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