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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Dec 23. 2024

빛담의 필름로그 -1, 을지로와 남산

 처음 시작은 언제나 두렵다. 3년 전 브런치 스토리 작가로 선정되어 첫 글을 쓸 때의 느낌이 생각난다. 


'이런 글을 누가 봐줄까?'

'브런치에는 상업 작가님들도 많다던데'


 하나 지금은 너무 긴장을 안 해서 탈이다. 긴장을 좀 해야 할 거 같은데...

여하튼, 본론으로 돌아와서, 필자가 가장 관심 있어하는 분야가 '사진 촬영' 분야이다. 촬영하는 순간만큼은 모든 번뇌에서 벗어나 오로지 '촬영' 하나에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관심이 관심을 더 크게 만든다는 말처럼, 촬영뿐만 아니라 그날의 느낌을 살려 보정하는 것도 즐겨하는 편이다. 


 이러한 나의 취미이자 특기인 사진에 대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코져 인스타그램에 주기적으로 업로드를 하는 편이지만, 그것만으로는 갈증이 해갈되지 않더라. 인스타 그램은 말 그대로 '휘발성', 나의 그날의 느낌보다는 '남의 느낌'에 맞춰 피드를 골라야 하다 보니, 오롯한 사진에 집중할 수 없는 문제가 있었다. 


 그런 필자의 생각을 읽었는지, 어젯밤 유튜브 콘텐츠 추천으로 "dustreet더스트릿포토 - YouTube"라는 채널이 눈에 들어왔다. 아주 담담히, 본인의 결과물을 유튜브로 보여주고 계셨는데, 출사를 나간 그날 본인이 느낀 사진의 질감, 그리고 선정 이유에 대해 담백히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부분이 참 인상적이었다. 


 빛담의 필름로그 매거진은, 더스트릿포토님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시작하게 된다. 

카메라를 들고 출사를 나간 후, 사진의 결과물에 대한 나의 느낌을 오롯이 남길 수 있는 아카이빙의 장소가 필요했다. 


 앞으로 출사 후, 스폿마다 내 느낌이 좋았던 사진들 몇 장을 골라 필름로그로서 남겨보려고 한다.


 을지로는 사진 취미를 갖기 시작한 2019년부터 찾아오곤 했다. 인스타 한창 초창기였던 만큼, 나는 '하트'의 노예가 되어 있었다. (지금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나름 여전히 대중의 관심이 고프다)


 항상 다시 와도, 고루하고 낯선 피사체들이 '나를 좀 찍어가주세요' 하면서 필자를 반기는 느낌이었다.

#1. 2024.12.21 을지로, SEL2470 GM2

 위 사진은 세운상가 아래에 1층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이 날은 서울에 약간의 눈이 왔었는데, 청계천과 그 주변으로는 제설이 아직 덜된 곳들이 많아 눈이 살짝 보이곤 했다. 

 가장 먼저 필자의 눈에 들어온 피사체는 바로 오른쪽에 있는 '보행자 표시', 필자는 일본을 가든 한국을 가든 저런 표지판을 참 좋아한다. 일본에서는 히라가나로 된 ここまで 혹은 止まれ 표지판을 제일 좋아하는 편이다. 한국에서는 일본과 다르게 그냥 한글 설명 없이 표지판만 있는 걸 좋아한다. 


 앞서 이야기한 표지판에 초점을 두고 찍는데, 프레임 안으로 사람 한분이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다행히 보행자의 각도가 활기차게 보일 정도로 잘 걸어주셔서(?) 나름 내 눈엔 예쁘다고 평가하는 사진이 되었다.


 심도표현은 f2.8의 최대개방으로 두고 촬영을 했는데, 표지판 부분까지만 포커싱이 되고, 그 뒷단 넘어서의 피사체들은 그다지 필자의 눈에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울러, 요새 필자는 후보정 시에 '웜톤'을 좋아하게 되었다. WB를 7000 언저리로 두고, 색조를 좌 우로 움직이며 그린 혹은 마젠타를 색조로 넣는 톤 보정을 자주 쓰는데, 이번 건은 그린 쪽으로 색조를 틀어 좌측 나뭇잎들이 도드라져 보이게 색을 보정해 보았다.




#2. 2024.12.21 을지로, SEL2470 GM2

 위 사진도 같은 날 을지로 이곳저곳을 어슬렁 거리다가 포착한 사진이다.

필자는 사실 위의 사진처럼 목공장갑을 가지고 작업을 많이 해보지는 못했다. 어려서 대학생 때, 대형마트 주류 및 음료 코너에서 근무할 때 무거운 물건을 나르는 일을 할 때 빼곤 앞선 사진처럼 무언가 만들기 위해 목공 장갑을 사용해 보지는 않았다. 지금 와서 보면 얼마나 곱게, 편하게 자라왔는지 그저 부모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저 목공 장갑을 보자, 작업자 분의 '삶의 무게'가 오롯이 뷰파인더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잠깐 휴식을 취하러 가신 걸까? 아니면 토요일이라 오늘은 휴무셨던 걸까. 일을 하러 다시 이곳에 오시면, 저 목공장갑부터 찾으시겠지. 장갑 없이는 일을 하기 어려우실 테니 말이다.


 비록 심도는 f2.8 렌즈의 최대 개방을 선택했지만, 주 피사체 뒤 배경에 여러 공구들의 형태가 흐릿하게 나와있어 느낌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울러, 요새 수평 연습도 하고 있는데, 주 피사체는 '대각선'으로서 수평이 이루어져 있지만, 사실 필자는 뒷 배경 금속 다이 쪽에 수평을 맞추어 '의도된 수평'이었음을 표현코져 하였다.



 

#3. 2024.12.21 을지로, FUJIX100 VI


 위 사진은 길을 걷다 우연히 발견하는 피사체의 기분이 좋았던 사진이었다.

이 날은 눈이 살짝 왔던 날이라 땅이 젖어있었고, 그만큼 땅의 질감이 좀 더 돋보이던 하루였었다. 

을지로에서 필동으로 이동하던 순간, 내 눈에 들어온 '30'이라는 피사체. 사진의 위쪽을 보면 알겠지만 원래는 도로였던 듯하다. 하지만 무슨 사연에서인가 위에는 가구 조립업체가 길을 막고 영업을 하고 있었고, 그 덕에 나는 '30'이라고 땅에 쓰여있는 피사체를 담아낼 수 있었다.


 후지로 사진을 찍는다는 건, 아직까지 소니로 찍는 것보다 불편하다. 필자 손에 몇 년 동안이나 익은 소니카메라 여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후지 X100VI모델은 손이 큰 필자가 쓰기엔 그립감이 많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올해 말 후지필름을 들인 건 참 잘한 일인 거 같다. 후보정을 할 필요가 없이, 적절한 필름톤으로서 'JPG머신'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찍고 나서 뷰파인더를 바라보며 결과를 확인했을 때, 흡사 어느 독일의 길거리에서나 볼 수 있는 필름룩을 발견한 거 같다 좋았던 장면이었다.



#4. 2024.12.21 남산 가는 길, FUJIX100 VI

 촬영 날, 목적지는 정해두지 않았었다. 그저 오늘 만큼은 맘 가는 대로, 발길 가는 대로 가리라고 다짐하고 있었는데, 내 발길은 자연스레 '남산'으로 향했다. 충무로 역에서 남산타워까지 이어지는 예쁜 버스에 탑승하고 보니, 내국인은 나 혼자였다. 그 버스는 외국인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들은, 내가 해외에 간 것처럼, 스마트폰 등을 이용하여 남산을 오르는 길을 녹화하곤 하였다. 나 또한 그들과 함께 해외에 여행온 듯한 묘한 느낌을 받으며 버스는 힘차게 남산을 오르고 있었다.


 평소, 버스 손잡이를 유심히 보는 편이다. 

 필자가 출근할 때에도 버스 손잡이의 흔들림을 보며 묘한 감성을 갖는 편인데, 이번에 탄 관광버스의 손잡이 색깔이 참 예뻤다. 

 보통은 손잡이가 모두 '단색'이라 사진을 찍어도 밋밋한데, 이번엔 빨 파 녹, 3 원색으로 이루어진 손잡이들이었다.


 첫 컷은 앞서 보여드린 사진의 맨 우측, '파란색' 손잡이에 포커싱을 맞췄었는데, 다소 공간감이 없는 밋밋한 사진처럼 출력이 되었다. 

 결과물이 마음에 다소 들지 않았던지 나는 두 번째로 가운데 '빨간색' 손잡이에 포커싱을 두고 촬영에 임했다. 

 첫 번째 시도보다 내 느낌에는 공간감도 살고, 무엇보다 후지필름의 '필름 시뮬레이션'의 결과로써 나온 색감이 참 좋다고 느껴졌다.


 비록, 배경에 여러 관광객들의 '기쁜 표정'이 함께 보였으면 더욱더 좋았겠지만, 모든 일들이 내 맘대로 이루어지진 않지 않겠는가. 


 그래도 이 필름의 느낌이 참 좋아서 필름로그에 꼭 담아야지 하고 마음먹었던 장면이었다.




#5. 2024.12.21 남산타워, FUJIX100 VI

 버스는 힘차게 달려 남산타워에 도착했다. 

그곳은 많은 관광객들로 붐볐고, 생각보다 눈이 많이 안 녹아 예쁜 설경까지도 볼 수 있었다.


 필자는 풍경 사진가로서, 예쁜 광경을 담기 위해 피사체를 찾아보았지만, 사실 그렇게 예쁜 장면을 담지는 못했던 거 같다. 남산타워 1층 주변을 돌아보고, 집에 가려는 순간, 앞선 사진이 내 눈앞에 다가왔다. 


 마치 이곳에 내가 다녀갔다는 것을 남기고 싶어 하는 손자욱인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다행히, 손자욱 주변으로 눈이 흐트러지지 않게 보존되어 있어 나는 셔터를 눌러 캡처해 두었다.


 내가 원하던 남산타워의 설경들보다, 원하는 장면을 얻지 못하고 내려오는 우연의 길 위에 이런 장면을 담을 수 있어 하산하면서도 기분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결국, '우연'히 담는 피사체들이 내 마음에 더 들었다.

을지로를 다니며 낡은 간판을 찍는 것이나, 남산타워의 멋짐을 표현하는 사진들보다, 그것들을 찍으러 가는 와중, 혹은 돌아가는 와중에 내 눈에 들어온 예쁜 피사체들이 내 마음에 더 와닿았던 필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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