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담 Mar 28. 2022

홀로서기

기억하자. 지금의 이 어려움을

"실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메인 촬영에 자신이 없어서요."

"아.. 너무너무 아쉽습니다. 그러시군요ㅠ"

"네네, 다만, 메인으로 못 나가는 거지, 서브로는 저는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연출보단 사진 찍는 게 좋거든요"

"알지요, 본업도 있으신데, 다만 저희가 작은 업체라서, 일을 많이 못 드릴 거 같습니다. 죄송해요"


 올해 초부터 나는, 웨딩 스냅 일을 의욕적으로 해 나가고 있었다. 

SLR클럽을 통해 만나게 된 이실장 님, 우리 이실장 님은 촬영이 끝난 후 인근 커피숖에 데려가 나에게 정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피드백을 해 주셨고, 작은 거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웨딩 스냅과 관련된 많은 것들을 전수해 주셨다. 

 사실 웨딩 스냅과 관련된 것이지만, 궁극적으론 '인물 사진'이다. 어떻게 하면 인물을 풍경과 분위기와 조화롭게 담아낼 수 있는지, 조금이라도 고객을 예쁘게 보이기 위해서 사진가가 알아야 할 기본적인 것들에 대해 많은 가르침을 주셨었다. 그 결과, 단 기간 안에 이실장 님으로부터 사진에 재능이 있다는 말까지 듣는 최고의 수제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Small Success (brunch.co.kr)


 점차 시간이 지나며, 이 실장님은 점차 나에게 메인 촬영자로서 갖추어야 할 연출 순서, 그리고 원판 사진 팁 등을 전수해 주시며, 메인 촬영자로서의 마음가짐도 요구하시기 시작했다.  

 그것은 당연한 요구였다. 나도 이실장 님과 면접 전화에서 그렇게 해보겠다고 했던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래서 이실장 님이 나에게 그 정도로 시간을 할애하셨다고 보는 게 맞을 거 같다. 


 하지만, 정말 코앞으로 다가온 메인 촬영에 대하여, 나는 결과물에 대한 무거운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웨딩 스냅은 나의 보조적, 자아 성취를 위한 아르바이트일 뿐, 내 '본업'은 아니기 때문이다. 웨딩촬영 시 서브와 메인은 감당해야 할 부분이 너무나도 차이가 많다. 메인을 한다는 것은, 식장의 조명 공부부터, 사진 연출 순서, 그리고 사진 결과에 대한 막대한 책임감이 따르는데, 나는 지금도, 앞으로도 그러한 부분까지 감당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였다. 

 불현듯 들은 그 생각을 토대로, 이실장 님께 죄송한 말씀을 도입부의 대화 내용처럼 드리게 되었고, 이실장 님도 아쉽지만 그 결정을 존중한다고 하시며 우리의 연은 많이 희미해진 상태가 되었다.


 그렇게 한주가 흘렀다. 매주 토요일, 두려움 30, 설렘 70으로 항상 단벌신사처럼 같은 정장에 흰 와이셔츠, 그리고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넥타이를 매고, 카메라 포맷 및 세팅값 확인 후 식장을 향해 가던 나는 없었다. 다시 주말에 그저 무얼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며 집구석을 배회하는 서현 아빠로 회귀해 있었다. 


 고심 끝에, 발품을 팔아보기로 했다. 내가 이실장 님을 만났던 SLR에서, '서브' 촬영자 구인 글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래와 같은 조건을 내 세우고 구직에 임하기 시작했다.

  1) 반드시 서브 촬영일 것

  2) 수습 및 수습이 아닌, 정식 계약에 투입되는 촬영일 것

이 두 가지를 가지고 글이 올라오는 족족, 내가 촬영했던 결과물을 메일로 보내며 구직을 시도했다. 개인이 개인을 구하는 거라, 애로 사항으로는 탈락해도 '문자'가 안 온다는 것이 큰 애로사항인 거 같다. 혹여나 나도 비슷하게 사람을 구할 때가 온다면, 문자 정도는 남겨놓도록 해볼 생각이다.


 정말 연락이 잘 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서브 촬영은 메인 촬영에 비해 수요가 낮고, 공급이 많아 늘 경쟁이 치열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 또한 웨딩 서브 일을 지속하기 위한 전략이 필요하여 아래처럼 수립하였다. 

  1) 여러 업체를 컨택한다.

  2) 다 업체들 중, 먼저 연락이 온 업체의 스케줄을 받는다.

  3) 정말 최선을 다해 좋은 결과물을 남기고, 다음 계약을 이어 나간다.


 "안녕하세요, 박종화 님? 보내주신 메일 잘 봤습니다. 4월 촬영 저와 함께 하시지요"

 "오, 네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메일로 보내드린 포트폴리오처럼, 최선을 다해 결과를 만들겠습니다."


 그렇게 약 2주일 동안 SLR클럽의 데이터 베이스 디스크가 닮토록 '구인/구직' 탭에 들어가 공고를 확인하는 것이 내 버릇이 되었고, 수차례 두들긴 끝에, 오늘 현재까지 4월 1건, 5월 1건의 정식 계약을 따 오는 데 성공하였다. 

 이실장 님과 함께 나갔던 두 번의 촬영 결과가, 구직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판단한다. 그 두 번의 수습 촬영은, 내가 돈을 드리고 나갔어도 할 말이 없는 촬영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따온 계약들 이외로, 4월 5월에 한건 정도씩 더 추가로 일을 받아볼 생각이다. 그리고 위에 적어둔 나의 지속 전략에 의거, 언제나 그랬듯 최선을 다해 찍어 다른 실장님들(이 바닥에서는 작가님을 실장님이라고 부른다.)의 신뢰를 얻어, 안정적으로 일감을 받을 수 있도록 해볼 생각이다. 


 사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렇게 내가 열심히 구직도 하고, 스냅 촬영도 하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누군가에겐 단 한 번 뿐일 수 있는 인생 최고의 경사 결혼식장의 분위기와 신랑 신부의 예쁜 모습을, 내가 잘 담아내어 결과물을 드릴 때 그 희열이 있는 일이 웨딩 스냅 일인 거 같다. 


 비록, 내가 생각하는 멘토이신 이실장 님과의 조우는 당분간 어렵겠으나, 어디 가서 이실장 님께 배웠다고 당당히 말을 할 정도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한번 해볼 생각이다. 


 오늘도 자기 전에 SLR클럽 구인/구직 탭을 눈팅하러 간다. 기회는 어디서든 찾아오는 법이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자유가 좋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