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벳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연회장 안으로 들어가자,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내 이름은 키라
난 오늘도 악녀를 연기한다. 왜 이러고 사냐고? 그야 돈 때문이지 뭐,
난 어릴 적부터 연기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난, 노예시장에서 탈출한 뒤, 곧장 돈을 벌기 위해 뛰어들었다.
첫 의뢰를 한 손님은, 당시 8살밖에 안된 나와 비슷한 나이의 또래로 보였다. 그리고 그녀는 10년어치의 비용을 건당 선불로 줄 테니, 10년 동안 자신의 의뢰를 맡아달라고 했다.
의뢰는 간단했다. 가끔씩 귀족가문의 악녀가 되어 달라는 것이었다. 덕분에 난 지금까지 모아둔 돈이 꽤 되었다. 그리고 오늘이 마지막 의뢰였다.
의뢰인은 오래간만에 만남을 청했다. 흔들리는 거대한 배 안에 있는 것은 오직 나와 의뢰 인 뿐이었다. 의뢰인은 검은 망토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입을 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겠습니까?."
"말씀하시죠"
" 아주 어릴 적 전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귀족들의 기사들이 저희 집에 들이닥쳤고, 전 아버지 어머니를 그곳에 둔 채로 그 기사들을 따라 가문의 영애가 되어야 했습니다. 가문 사람들은.... 절 가문의 영애로 오랫동안 붙잡고 있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제 진짜 가족이 아니었죠. 전 그들의 꼭두각시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전 어린 시절부터, 제 진짜 가족과 함께 살기 위해서, 인생 전부를 바쳤습니다. 그 계획을 위해, 당신에게 의뢰를 부탁했죠. 그리고 오늘부로 이곳을 떠날 예정입니다. 이 모든 걸 이룰 수 있던 것은 키라 씨 덕분입니다. 당신은 제 무리한 요구에도 마다 없이 응했죠. 그런 당신에게 이 말을 꼭 잔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내 마지막 의뢰는 끝이 났고, 난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되었다. 난 오직 돈만보며 평생을 귀족이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살아왔다.
그러나 의뢰인은 정작, 귀족 영애삶을 버리고, 다시 평민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그렇게나 높은 권력을 잡고서도, 살아있을지 모르는 어릴 적 기억 속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꿈이 있기 때문일까? 그녀의 눈빛은 확고하기 그지없었다.
마지막으로 본 의뢰인의 얼굴엔 미소를 뛰고 있었다. 난생처음 보는 부드러운 미소였다
무심코 내 삶의 허무하게 느껴졌다. 돈을 벌기에만 급급했다. 그제야 인생을 얼마나 즐기지 못했는지를 깨달았다.
내게도 새 목표가 생겼다. 가족이든 친구든 인연을 맺는 것이다. 그리고 난 지금 새 목표를 향해 가고 있다.
동지라는 말이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녹초가 될 때도, 그 사람들과 함께라면 기꺼이 인생이 즐거울 정도로 행복하다.
새로운 인연을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여태 돈만 쫒고 살았다. 그것에 후회는 없다. 그러나 가끔은 과거의 나도, 곁에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훨씬 살맛 났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 물론 난 더 이상 악녀가 아니다. 나에게 악녀의 삶을 의뢰했던, 더불어 내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던, 그녀는 지금쯤 어떻게 살고 있을까?